ᅠ조합ᅠ [776917] · MS 2017 · 쪽지

2018-12-18 2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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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훈련병의 이야기.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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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2학기 종강기간이 가까워지는 추운 날씨가 다가오면, 내 자존감이 바닥을 찍었던 그 때가 생각난다. 훈육이라는 이름 하에 인간보다 못한 존재가 되었던 진주에서의 6주가 말이다.


2학년을 마치고, 소위 '남들 다 가는' 군대를 가야 되었을 때, 나는 3개월의 기간 보다는 더 좋은 시설과 문화를 보고 공군에 지원했다. 그리고 요즘 군대는 군대도 아니라는 주위의 말과 함께, 진주에 있는 공군 훈련소에 입소하게 되었다. 


 

그곳에 처음 들어갔을 때, 생각보다 열악했던 환경에 적잖은 당황을 했던 기억이 난다. 땀에 찌들어 온갖 냄새가 나던 군장과 이리저리 찌그러진 수통, 발 디딜 공간도 없이 다닥다닥 붙어자던 생활관... 군화를 신을 때마다 군화 안에 지네가 들어있는지 확인해 봐야 했고, 심지어 화장실 변기가 너무 막혀있는 나머지 변기 밖에다 변을 보는 훈련병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거칠었던 조교들의 훈육이었다.


 

1000여명이 감기에 걸려 마스크를 끼고 있는데 기침을 하지 말라고 하지않나, 코앞에서 악을 쓰며 소리를 지르지 않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사소한 실수를 가지고 폭언을 하지않나. 군인으로 정신을 개조한다는 의도를 누가 보아도 넘어서는 훈육에 훈련병들은 정신적으로 지쳐갈 수 밖에 없었다. 과도한 훈육에 자살을 시도한 훈련병이 있었을 만큼, 훈련병들은 조교의 말 한마디에 그들 자신을 포기해야 했다.


 

그중에서 나를 특히 괴롭히던 조교가 있었다. 소대 전체가 잘못을 했어도 그 중 나만을 불러내 엎드리게 하였고, 작은 빈틈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나를 감시했다. 그 어떤 반발조차 불가능했던 환경 속에서, 내가 받을 수 있는 도움은 소대원들의 따뜻한 위로밖에 없었다. 심지어 39도가 넘는 고열로 수진을 신청하고자 했을 때도, 그 조교는 나를 비웃으며 '운동부족이니 동기부여를 받으면 나을거다' 라며 엎드려뻗쳐를 시킨 후 어딘가로 사라지기도 했다. 빈 복도에 혼자 엎드려 있다보니, 나는 이 현실이 너무 억울했다. 국가를 위해 군대에 왔는데, 나의 인권이 무시당하는게 분하고 억울해서 눈물이 나왔다. 나는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여기에 있을까. 나는 겨우 이런 대우밖에 받지 못하는 사람이었던가. 


 

부들부들 떨리는 팔에 감각이 없어질 때 쯤 돌아온 조교는, 자기가 깜빡 잊었다면서 "그러게 왜 아파서 이런 일을 겪냐", "몸이 그렇게 비실비실 하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겠지" 라 말하며 나를 비웃었다. 그리고 약 한번 먹으면 나아질 거 가지고 왜 꾀병을 부리냐고 하며 나를 군의관에게 데려갔다. 거기서 나는 3일동안 항생제를 맞으면서 죽은듯이 누워있어야 했다.


 

그러다 어느덧 수료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쯤 되니 조교들도 훈련병들과 진솔한 이야기도 나누고, 장난도 치며 많이 부드러워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동안의 처사가 이해되지 않았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나는 조교들이 있는 통제실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똑똑똑'


"들어가도 좋습니까?"


 

"들어와."


"필승! 000훈련병, 조교님께 용무."


"뭐야?"


"조교님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해."


"도대체 왜.. 저에게 그렇게 하셨던 겁니까?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받고, 군가도 누구보다 크게 불렀습니다. 남들 다 열외하고 피하려 할 때 소대원들에게 피해주지 않으려고 끝까지 버텼습니다. 조교님이 주시는 동기부여도 제 잘못이라 생각하고 말없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대체 왜 저를 그렇게 괴롭히셨던 겁니까?"


 


조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군인은 절대로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던 조교는, 고개를 숙인채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숨이 막혔다. 조금만 더 참을걸 그랬나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며칠만 더 버티면 이 생활도 끝일텐데, 어차피 이 사람들을 내가 다시 볼 일은 없을텐데.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그 이유를 듣지 못하면 바닥까지 떨어진 내 인간이란 이름은 영원히 이곳 진주에 박혀있을 것 같았다.


 


'나는 당당해.'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조교가 고개를 들었다.


 


 


 


 


 


 


 


 


 

"..........그치만...이런 행동이 아니면...훈련병짱...내게 관심도 없는걸!


 


"손나 바카나!! 그럴리가 없잖아! 넌 자랑스런 대한민국 공군 훈련소 조교라구....그리고.. 꽤나 멋지고 말이지..


 


"에에...? 혼또....?


 


"쓰..쓸데없는 소리하지말고 점호나 받으러 가자고..!"


 


그러더니 갑자기 숨어있던 다른 조교들이 모두 일어나서 환호하며 경례를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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