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스-피아트 [630596] · MS 2015 (수정됨) · 쪽지

2018-12-18 18: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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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을 보는 이유, 성적을 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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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을 보는 이유 혹은 성적을 보는 이유는 제 생각에는 아주 간단합니다.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보통 학벌 혹은 성적이 문제가 되는 것은 상급 학교에 진학하거나 직업을 찾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보통 좋은 학교나 좋은 직장은 가고 싶은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학교나 회사는 선발과정에 쏟을 수 있는 시간과 비용이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나름 공신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학력과 성적이라는 지표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가장 좋은 선발 방법은 불러 놓고 몇 주 정도 함께하면서 이런 저런 질문도 하고 미션도 줘가면서 어떻게 해결하는지 보는 것입니다. 저 학부 다닐 때 교수님들께서도 늘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원자들이랑 한 시간 정도만 앉아서 대화해볼 시간만 있어도 수능이니 내신이니 그런 거 볼 필요 없다.’ 충분히 자질을 판단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저 같은 경우만 해도 저희 팀에서 일하실 조교 2-3분을 모시기 위해 올해만 해도 한 100분 가까이 인터뷰했습니다. 저희야 나름 시간도 많고 좋은 인재를 모시는게 중요하고 일년에 겨우 두 명 정도를 뽑는 것이기 때문에 한 분에게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로펌이나, 컨설팅 펌 같이 일년에 소수의 인원을 선발하고 인력이 해당 조직의 핵심 경쟁력인 경우에도 인턴을 시켜본다든지 아니면 면접은 8차에 걸쳐보는 등의 시간과 비용을 투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엔 그렇지 않습니다. 수 십대의 1의 경쟁률은 기본이고 수 백대 1의 경쟁률을 찍는 경우가 많습니다. 뽑는 인원도 수 백, 수 천 명이기 때문에 일일이 만나고 역량을 평가할 방법이 없습니다. 몇 년 전에 삼성에서 대학별로 인원을 할당해서 총장이 추천하라는 제도를 추진해서 논란이 된 적이 있었는데, 이에 대한 평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어떠한 문제의식에서 이러한 제도를 추진했는지는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제도를 추진하는 것이 사회적 반대에 부딪혔기 때문에 대부분의 대기업은 서류 등으로 1차적으로 거르고, 2차적으로 인적성평가(필기시험)을 하고 마지막으로 면접, 토론 등의 방법을 통해 선발하고 있습니다. 


대학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정시는 수능 점수 줄세우기니 좀 다르지만 수시는 기업의 선발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D외고 내신 4.5인 학생과 일반고 내신 1.5인 학생 중에 누가 더 학업능력이 뛰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대학들은 입학생 중에 위에 언급한 수치와 비슷한 내신을 가졌던 학생들이 대학에서 어느 정도 수학능력을 보였는가를 참고하여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시 전형에서 수능최저등급을 반영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시간이 없어 지원자의 역량을 충분히 검증할 수 없기에 갖춰 놓는 안전장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논술에서 최저를 없앤 한양대나 내년 연세대 같은 경우엔 나름 논술로 충분히 변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경제가 안 좋아서 그런지 올해 유난히 로스쿨 진학시의 학교를 보는지, 어느 학과가 유리한지, 취업할 때 특정학과가 메리트가 있는 지와 같은 질문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상대방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분명합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 상급학교에서 선발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두 요소는 수학능력과 그 학생을 가르쳐서 시장에 내놓았을 때 경쟁력이 있을 지입니다. 기업의 경우에는 분명하게 문제해결력입니다. 모든 스펙은 수학능력, 경쟁력, 문제해결력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로스쿨 진학 시 00학과가 메리트가 있나요? 당연히 없습니다. 뽑는 사람 입장에서 별로 중요하게 생각 안 합니다. 이 학생이 와서 공부를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지 학부에서 뭘 배웠는지에 대해 크게 관심 없으십니다. 학벌이 중요한가요? 당연히 고려할 것입니다. 리트와 학점으로 비슷한 정량적 점수가 나온 경우, 뽑는 사람입장에선 당연히 이른바 서열이 높은 곳에 위치한 학교에서 다른 학교에서와 같은 학점을 받은 학생이 학업능력이 낫다고 평가할 것 같습니다. 

취업과 관련하여, 인사담당자분들과 얘기해보면 회사에서는 크게 공대냐 인문계냐는 투입할 수 있는 직렬의 구분이 있기 때문에 차이가 있지만 같은 인문계 내에서는 크게 의미두지 않습니다. 일부 직렬의 경우 경영적 지식이 필요해서 지원자체에서 제한을 두는 경우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학교에 같은 학점이면 비슷하다고 판단합니다. 위와 같은 선발 방식은 흙 속의 진주를 놓칠 수 있는 위험이 분명히 있습니다. 제 주변에만 해도 학교와 상관없이 굉장히 뛰어난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선발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있을 지 없을 지 모르는 진주 찾겠다고 흙을 다 뒤질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이러한 방식에 대한 가치 판단은 개인의 몫이지만 일단 있는 대로 받아들이고 그에 맞춰서 준비하는 게 중요합니다.


요즘 과에 대한 고민이 많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합격가능성은 다른 맥락의 문제이니 차치하고, 본인의 적성과 흥미에 맞지도 않는데 단순히 취업에 유리하거나, 본인 생각에 무언가를 하는데 유리할 것 같아서 선택하는 우를 범하시지 않으셨으면 하는 생각에서 이렇게 장황한 글을 썼습니다. 진학, 취업 시에 유불리는 아주 미미한 것이고 4년간 혹은 그 이상의 기간동안 함께할 전공은 삶의 질과 대학생활에 아주 큰 차이입니다. 이제 어느 정도 대학 라인은 이런 저런 방법을 통해서 파악하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그 학교에서 원하는 과를 선택하시되 가서는 수학능력이나 문제해결력을 보여줄 수 있는 지표들을 스스로 개발하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분수에 넘치는 조언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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