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NaAglyYFnP6vH [730913] · MS 2017 (수정됨) · 쪽지

2018-11-25 01: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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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판 떠나는 사수생의 일기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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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비 활동도 별로 안했었고 생윤 질문글 몇개 올리고 댓글 몇개 단게 다였네요. 다사다난했던 지난 4번의 수능이었고 후회없이 임했기에 후련하게 떠나려고 합니다. 

그냥 며칠전에 생각정리하면서 일기를 썼는데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부족한 글솜씨지만 보시는분들의 앞길에 행복한 일만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네번째 수능을 치룬 나에게,

수능을 본 모든 수험생들에게,

그리고 수능을 볼 모든 수험생들에게.



시험장에서 나오면서 느꼈던 그때의 허무함과 황량함은 아직 생생하다. 한 사람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낸다는것, 흔히 말하는 ‘사람구실’하면서 살아간다는게 이리도 버겁고 두려운일이었는지. 새삼 내 앞에 생생히 다가왔다. 이렇게 ‘사는것’이 아닌 ‘살아낸다는게’ 정말 맞는것일까. 세상 사람들은 다 이렇게 각자의 순간을 견뎌내고 있는것일까. 문득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이 내 목을 조른다.


그 흔한 드라마들의 엔딩을 장식하는 bgm은 없었다.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없었다.

미친듯이, 치열하게 한가지 목표만을 보며 달려온 이 시간이 끝나도, 내 삶은 늘 그래왔듯이, 이렇게 계속 흐르겠지. 어떤 문이 될지는 모르지만, 또 다시 내 앞에 다가올 문들을 마주해야만 한다는것이 참으로 두렵고 막막했다. 시험의 결과보다 앞으로 마주할, 결말없이 이어질 이 시간이 나를 참 초라하게 만든다.



 시험이 끝나고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본 그날의 별은 유난히 반짝였다. 내가 모르고 있었어도 내가 보내온 시간의 한편에서 너는 그렇게. 찬연히, 찬란하게, 찰나같은 순간들을 비춰오고 있었겠지. 

‘여전히’ 늘 그렇게 자신만의 빛으로 세상을 밝힌다는것. 나도 너처럼 나만의 색으로 이 세상을 밝힐수 있을까.


다섯개의 선택지를 벗어나기만 하면 내 인생은 항상 밝은 빛으로만 채워질 줄 알았다. 하지만 매순간 답이 정해지지 않은 수없이 많은 선택지들 사이에서 방황했고, 또 다시 다섯개의 선택지로 도망쳐왔다. 

그리고 이렇게 또 다섯개의 선택지에서 ‘벗어났다.’ 




이제는 정말 벗어난 것 같다.

참으로 외롭고 치열했던, 고통스럽던 그 과정에서 길을 잃었기에 어디든 갈수있고, 답이 없기에 무엇이든 답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확신만이 답을 고를수있게 하지는 않더라. 하지만 이미 정했다면 그 길에 확신을 갖기를, 그 길을 나의 색으로 찬연히 채워내기를.


내가 살아온 삶의 결과가 어떻든, 다른 이에게 어떻게 비춰지든, 내가 살아낸 이 시간에는 나의 색이 진하게 남아있다. 수많은 프레임에 비춰질 내 결과가 조롱받고 비웃음당해도 내가 이 시간에 임해온 삶의 태도는 ‘진심’이었다는 것. 이게 22살의 겨울, 수능이라는 문을 닫은 내가, 앞으로 수없이 많은 문을 열게될 나에게 하는 응원이자 위로이다.


사람, 쉽게 안변하더라. 결국 나만의 색으로 찬연히 빛날 나니까. 내 자신을 믿자. 적어도 나는 나를 믿자.


그동안 정말 애썼고, 참 고생많았다.

그동안의 치열했던 순간들이 훗날 나만의 색으로 빛날 ‘그 순간’을 밝게 비출수 있기를, 그리고 그 속에서 누구보다 밝게 웃는 내가 있기를,

간절하게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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