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 [792072] · MS 2017 · 쪽지

2018-10-24 21:5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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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비니스트 필독서)00년생 김지훈의 수능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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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11월15일

틀딱 인공관절 1900년대 사람들의 수능이 끝나고 파릇파릇한 00년생들의 수능이 도래했다.

여느 고3과 같이 00년생 김지훈도 난생 처음의 수능을 보러 새벽부터 분주하다. 어머니는 새벽 4시반부터 점심도시락을 싸고 계시고 아버지도 지훈이를 고사장까지 데려다 주기 위해 일찍 일어나셔서 애써 담담하게 신문을 읽고 계신다. 김지훈은 새수를 마친후  마렵지도 않은 똥을 싸기 위해 화장실에 앉아서 '올해 수능, 역대급 추위. 서울 영하12도' 라는 네이버 기사를 본다. 베댓들은 참으로 따뜻한 응원인데도 김지훈은 한쪽 마음이 시리다. 그가 유일하게 쓴 연세대 치대 논술 최저는 3합4. 그는  고3들어서 4월 모의고사에서만  최저를 맞췄다.  모의고사로 서울의 자사고 반 2~3등을 오가는 그는 내신 3점대 후반인 전형적인 수능전사다. 오르비에서 길러진 수능전사의 자부심+현역의 용감함+서울통학의 꿈 덕분에 지훈이는 수시로 연세대 치대 논술만 접수한 것이다.


어제 처음으로 가본 제 19고사장 안의 자기자신을 떠올리며 배에 힘을 주는 사이 벌써 오전6시반이 되었다. 7시반까지는 입실할 생각으로 지훈이는 아무 성과없이 화장실에서 나와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어머니와 포옹을 하고 어제 미리 싸둔 가방과 도시락가방을 들고 아버지와 집을 나선다. 아직 밖은 깜깜하고 춥다. 김지훈은 무섭다. 앞에 아버지가 걸어가고 있지만 혼자 걷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김지훈이 수능날의 고3이라서일까.


김지훈과 아버지는 차를 타고 고사장으로 향한다. 평소에 20분이면 가는 길이 막판에 수험생 차량으로 꽉 막혀 40분이 걸렸다. 학교 앞

200미터부터는 차에서 내려 걸어가야한다. 김지훈은 아버지와 덤덤하게 인사를 나눈 후 찬바람을 헤치며 회색 풍경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앞에 삼수생으로 추정되는 수염아저씨가 보이지만 그가 오르비에서 봐왔던 장수생들은 새벽에 오르비 채팅을 하며 시간만 날리는 족속들이기에 마음속으로 가볍게 비웃어주며 앞질러 지나간다.


7시42분. 교실에 도착한 김지훈은 당연히 수능이 처음이기 때문에 

멀뚱멀뚱 앉아서 수험표 속의 당당한 자기사진을 보며 '역시 나 정도면 잘생긴 편이지' 하며 기분이 잠시 좋아진다. 옆의 학생이 국어 1타강사의 강한 모의고사를 펴는 것을 본 뒤에야 김지훈은 정신을 차리고 문법 정리집을 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감독관 두명이 들어와 주의사항을 안내하고 전자기기를 수거하고 귀마개를 가져온 학생들의 귀마개를 점검한다. 


8시30분이 되고 드디어 시험지가 배부된다.

오르비니스트인 김지훈은 현역답지 않게 파본검사를 하며 비문학 주제를 쓱 본다. 좋아! 내가 좋아하는 생물 지문이 나왔구나.

이과지만 국어를 제일 잘하는 생지충 지훈이는 기뻐한다.



드디어 8시 40분!! 전국의 모든 수험생들이 일제히 국어 시험지를 넘기며 2019대수능이 시작됐다.

기선제압을 위해 첫페이지를 무리해서라도 빨리 넘기라고 오르비에서 배운 지훈이는 당황했다. 수능이 처음이라 그런지 글이 너무 읽히지 않는 것이었다. 어찌어찌 첫페이지를 넘긴 후 화작을 풀고 어려운 문법문제를 잡고 낑낑대다가 시간을 보니 9시13분.  13번까지 무려 40분넘게 쓴것이다...  지훈이는 몹시 당황했다. 국어에서 1이 나오지 않는다면 3합4는 물론 정시전사도 물거품이 되는 터였다. 13번과 15번을 재끼고 비문학으로 넘어간 김지훈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가 질색하는 문대가리돌돌이들이나 좋아하는 철학지문이 아니겠는가. 집에 가서 평가원장이 문대가리돌돌이인지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차근차근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과생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이름도 어려운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상이 그의 뇌 속에서 어지럽게 돌아다니고 있다. 그는 바로 손절을 하고 문학으로 넘어갔다. 롤에서 랭 4연패 후 칼바람을 하듯 그도 잠시 힐링타임이 필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올해 평가원이 문학이 쉽던 여태까지의 기조와 달리 문학을 hell로 출제한 것을... 분명히 우리말로 쓰인 고전문학작품임에도 김지훈은 등장인물이 몇명인지도 모른 체 문제를 풀게 되었다. 9평의 쉬운 국어에 익숙해 있던 고3답게 당연히 김지훈은 시간이 모자르고 그가 제일 좋아하는 생물 비문학 지문은 읽지도 못한 체 종이 치고 말았다.


참담했다. 못 읽은 지문 1개에 달린 문제 4개 . 읽은 지문에서 찍은 문항 4개.

총 9개의 문항을 찍은 김지훈은 푼 문제를 다 맞았다고 해도 80점이 간당간당한 수준이었다. 이대로라면 3등급도 위태로운 것이다. 

이과인 김지훈은 간단한 계산을 통해  3+1+0=4. 즉 국어가 운좋게 3이 나오고 한번도 맞은 적 없는 수학 가형 1등급을 맞고도 과탐을 무려 0등급을 맞아야 연세대 치대 논술 응시자격이 주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김지훈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하염없이. 수학을 운좋게 21번을 찍어서 2등급이 나왔지만 그는 점심도 거르면서 울었다. 무난한 절평 영어시간이 끝난 후 김지훈은 고사장을 박차고 나와버렸다.

한국사를 응시하지 않는다면 수험표가 나오지 않음을 몰랐기는 했지만 어차피 국수 42의 성적으로는 오르비니스트 김지훈 기준을 넘어서 대국민 기준 잡대밖에 갈 수 없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교정을 지나  학교 정문을 나서며 그는 아침에 받고 꾸겨서 막 넣어두었던 메가스터디 핫팩을 꺼냈다.

"그래,, 재수하자... 집도 가깝고 노량진 메가로 가야겠다."


그는 혼잣말을 하며 오르비에 "오늘 수능 포기했습니다" 라는 제목의 글을 쓰며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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