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들보 [563981] · MS 2015 · 쪽지

2018-08-12 13:5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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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도 이기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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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수능이 끝났을 때였다.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수능을 잘 보지 못하였고 이렇게 끝나는 건가 싶었다. 




재수를 할까 그냥 다닐까 고민도 정말 많이 했다. 하루마다, 반나절마다 생각이 바뀌었다.


담임선생님도 재수학원에서도 다시 한 번 도전을 권했지만 또 다시 고3을 하기는 싫었고 결국 나를 이길 자신이 없어서 상담 끝에 재수학원 등록을 포기했다.




그리고 나는 지방에 있는 한 학교에 들어갔고 마치 결과에 회피하듯이 날뛰어 놀기 시작했다.


매일을 친구들과 새벽까지 놀고 고등학교 때는 누릴 수 없었던 자유를 만끽했다. 잠시 나의 미래에 대한 생각과 향후 진로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단순해졌던 것 같다.


새벽에 아무도 없는 자취방에 들어갈 때면 공허했지만 피곤해서 쉽게 잠이 들었다. 




그렇게 MT도 가고 학교에 어느 정도 적응했을 때, 일요일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집이 그리워서 왕복 7만원이라는 비싼 KTX 기차비를 들여서 집에 가곤 했는데 용돈이 바닥나서 그 날은 늦잠을 잤다.


꿈을 꿨는데 꿈에 엄마가 나왔던 것 같다.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냥 편안하게 눈을 떴다.




특이했다. 



느낌이 비몽사몽 꺤 게 아니라. 깔끔하게 눈이 떠졌는데. 정말 공허했다. 공기도 쎄하고 느낌이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근데 지금도 생생하다. 그냥 눈물이 났다. 신기했다. 뭔가를 억누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냥 막 공허하던데, 외로운 거였을까. 



매일 친구들이랑 새벽까지 재밌게 놀았는데.. 밖에 순댓국이나 먹으려고 나가는데 공사 중인 집 주위를 보고 딱 이 느낌이 들었다. 




‘귀양 온 것 같다.’




다니던 학교가 마음에 안 든 것이 아니었다. 그냥 굴곡 하나를 이기지 못해 결과에 회피한 나에게 실망스러웠고 고등학교 3학년 마지막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에 화가 났다.



다음날 학교를 가지 않았고


그 다음날에는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서 속에 있는 애기를 털어놨다. 그리고 결심하고 학교를 바로 자퇴했다. 



수능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불확실성’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열심히 해도 당일 수능 장에서 배가 아프거나 마킹 실수로 인해 노력의 보상을 받지 못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들이 공부하는데 큰 방해요소가 되기도 한다. 




흔히들 스물 즈음은 인생의 황금기,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마음껏 놀아볼 수 있는 시기라고 말을 한다. 그렇게 중요하고 아까운 시간을 후회가 남게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원칙을 세웠다. 다시 맞이한 2015년 내 수험생활의 성공조건은, 내가 자퇴하고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결과보다 과정에서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결과에 상관없이‘할 만큼 했다’라고 말하며 웃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설령 수능을 또 못 봐도 내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 원칙에 따르면 결과에 무관하게 필승할 수 있었다. 내 성패여부는 수능 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수능 전날에 알 수 있을 거라고 항상 생각했다. 



과정에서의 승부.



과정에서 있어서 성공 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은 바로‘지속성’이다.



꾸준히 하는 것.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내가 모의고사는 잘 보다가 수능에서 미끄러진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이를 실행하기 위해 모든 공부시간을 쟀다. 물론 효율성 있는 공부는 중요하다. 하지만 효율성을 추구하고 공부에서의 양을 채우지 못하면 결과가 안 좋게 나왔을 때 후회가 생긴다. 



그래서 나는 공부량을 극대화하려 했다.



아침에 독재학원에 가는 버스에서 40여분동안 한 번도 단어 외우지 않은 적 없다. 학원에 가서 공부하다 화장실을 갈 때 한 번도 손에 암기거리와 스톱워치가 없던 적이 없다. 주중 하루 공부시간이 11시간 밑으로 내려간 적이 단 하루도 없다. 나는 그렇게 했다.



물론 이런 행위가 수능 점수를 올려준다는 보장이 없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했다.



아래는 내가 수능이 끝나고 쓴 일기 중 하나이다.





[ 후회하기 싫었거든


대학교 자퇴하고 왜 그랬어 라든지 친구들이 “내가 말했지.” 라는 소리를 듣기 싫었다.


그보다 나한테 욕먹기 싫었다. 이번에도 내가 못하면 나는 내게 정말 실망할거 같았어. 나는 나한테 실망하기 싫었어. 


또 내가 작아지기 싫었다. 나는 원래 자존감이 크고 그랬는데 ....]




지속성에서 중요한 것은 예외를 없애는 것이다. 


딱 하루만 쉬고 싶을 수 있다. 



머리가 아프고 감기몸살 등이 올 수 있다. 그래도, 그 상황 속에서도 해내면 지속성에도 가속이 붙는다. 처음 한두 달은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시간은 빨리 가고 집중력도 향상되었다. 



수능에서의 운도 수험생활에서의 생활리듬과 절박함으로 어느 정도 끌어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을 믿어야한다.



수능이 끝난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못 할 것 같은 6 개월이었다.




결과적으로 현재 나는 한양대학교에 합격하였다. 



결과에 만족했냐고 묻는다면 과정에 만족했다고 대답하고 싶다.



내가 다시 수능을 준비하면서 얻은 가장 큰 것은‘자신감’이 아닐까 싶다. 



어떤 굴곡이 와도 나는 할 수 있다는 그런 자신감. 만약에 일 년 전 지금처럼 내가 회피했다면 지금 나는 아직도 친구들과 새벽까지 놀고 자취방에 와서는 느끼는 공허함에 슬퍼하고 도전하지 않은 것에 후회했을 것 같다. 




지금 대학에 와서도 나보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 제2외국어가 능통한 친구들, 이미 큰 성과를 이뤄낸 사람들 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하지만 이 안에서 내가 전혀 꿀리지 않고 자신감이 있는 것은 어쩌면 이 수험생활 속에서 본 나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해낸 걸 봤거든. 저 사람들은 못 할!’




나는 이제 또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출발선에서 자신 있게 웃으면서 서 있을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수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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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공모전에 썼었던 수기였는데 컴퓨터 정리하다 찾아서 올려봅니다.

옛날 생각나고 좋네요ㅋㅋㅋ

사실 엄청 잘 간 것도 아니고 여기 잘하시는 분 많겠지만 그래도 이런 거 한 번 읽고 마음 또 다시

잡으시라구 올려봅니다. 2년만에 오르비 왔는데 이 글을 마지막으로 빠이짜이찌엔!! 건승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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