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주✨ [541907] · MS 2014 · 쪽지

2018-07-15 00:3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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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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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요즘 증오를 느끼고 있습니다.

행복하게 공부하다가도, D- 가 적혀있는

달력을 볼 때면, 없던 긴장감이 생기게 되고,

갑자기 나의 정면에서 공부하던 이가 거슬리기 

시작하니까요.


그 짤막한 씬에서도,

나는 감정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니,

내가 너무 작아만 보입니다.


가능하다면, 모든 것들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싶지만,

시간이란 것이 그 욕구를 차단하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참 모순적입니다.

'시간'을 증오하는데,

내가 이 삶에서 온전히 존재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시간'에서 찾으니까요.


고3의 고속버스에서

악셀을 밟는 법, 브레이크를 밟는 법을

배웠으니,


이제 핸들링과 집중력만 훈련하면

나도 고속버스에 승객을 태울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니까요.


그 과거의 시간들이

지금 내 가슴에 하나 하나씩

여러 색을 가진 보석처럼 박혀있습니다.


그 때의 뜨거움과 그 때의 차가움,

그 때의 미묘함과 그 때의 익숙함,

그 때의 냄새와 그 때의 향,


그 때 만났던 사람들의 옷과 체취,

그 때 그 사람이 신었던 신발과 끼고 있던 안경,

그 때 내가 좇았던 꿈의 진행속도.


모두 박혀있습니다.


공부를 하다가 가끔 그 보석들이

내 눈을 눈부시게 할 때면,

잠시 하던 것을 멈추고 햇빛을 보러 나갑니다.


지금 빛나는 이 보석과 그 햇빛의

명도와 채도를 비교하고자.


으레 확인을 해보면,

내 눈을 눈부시게 하는 것들보다

지금 내 머리를 삼키고 있는 햇빛이

더 밝았었지요.


그래서 나는, '시간'이 지나가는 것에 

증오하는 삶을 살지만서도,

'시간'이 지나가는 것에서 삶의 당위를 좇는,

모순을 좋아하는 구도자 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아뜰리에엔, 시간이란 녀석이 있어

삶을 조각하는 것에 대한 철학이 살아 숨쉬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갑자기, 내 머릿 속에 놓인 정사각형이 

맘에 들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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