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사가되자 [801072] · MS 2018 (수정됨) · 쪽지

2018-05-24 23:3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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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기적을 바라는 진짜 노베들에게(2) - 고3 3월 노베에서 반전의 6평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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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우겨우 아버지께 사정해서 독서실을 끊은 후 평소에 말을 참 안듣던 저를 좋게 봐주셨던 국어선생님과 영어선생님 그리고 생활지도부장님 이셨던 사회문화 선생님의 방과후를 듣게 됩니다(특히 영어선생님의 편애가 어느정도였냐면 친구들이 혹시 제가 몰래 사과박스를 가져다준게 아닌가?라고 의심할 정도였죠.). 하지만 곧 롤이 시즌 종료되고 새로 시즌이 열리게 되고, 옆에서 같이 방과후를 다니던 친구놈이 "야 시즌 열렸는데 나 플래 너 다이아만 달고 깔끔하게 공부시작하자" 라며 유혹을 했고 2주동안 방과후 + 하루 3시간 자습 정도를 하며 유혹에 견디던 저는 결국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다시 롤을 하게됩니다.

  10판짜리 배치를 보고 20판정도를 더하니 금방 다이아가 되었지만, 그제서야 저는 느꼈습니다. 그깟 롤티어가 해주는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요. 하지만 그렇게 느낌에도 롤을 하면서 채팅으로 게임을 못하는 사람을 사람새ㅡ끼냐며 무시하고 나도 모르게 자꾸 그 아무것도 아닌 롤로 부심을 부리게 된다는 사실에 정말 스스로가 혐오스럽게 싫어졌습니다. 더욱이 그렇게 롤에 집착하는 제 자신이 싫은데도 공부가 잘 안되면 금방 나는 안될놈인가 하면서 금방 피시방이나 집으로 가서 롤을 하며 자존감을 회복하려는 제 자신이었죠. 그렇게 2월 중순쯤이 되고 저에게 두가지 제안이 왔습니다. 하나는 고등학교 친구가 같이 학원을 다니자는 것과 나머지 하나는 같은 반 양아치 친구(남을 괴롭히는 부류까지는 아니지만 친구들이 양아치인 그런 친구였죠)가 탑 라이너가 없다며 우승하면 상금이 50만원이니까 n빵해서 나눠가지자며 롤대회를 나가자는 말이었죠. 저는 두가지 제안 모두를 수락했습니다.

  학원도 다니고 롤 대회를 준비하면서 공부를 하는둥 마는둥 하는 사이에 3월 모의고사날이 다가왔습니다. 모의고사가 끝나고 바로 독서실로가서 채점을 해봤습니다. 국어b형 수학a형 영어 경제 사회문화 순으로 원점수 '72 44 52 13 22' 등급으로 '5 3 5 5 5'.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점수 그대로 적은겁니다. 지원 가능한 대학을 살펴보니 나사렛대, 신한대, 대진대....? 살면서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죠. 눈물도 안나고 한숨만 나오더군요 억울하지는 않았으니까요. '나는 이정도인가? 정말 나는 딱 이정도밖에 안되는 사람인가?' 이제는 정말 뭐라도 해야겠다는 압박감이 심해지더군요. 천천히 하루 계획을 세워가면서 불편한 마음을 안고 롤 대회를 마무리하기 까지 수면패턴을 맞추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무조건 아침 6시 조금 넘어서 일어나서 7시까지 학교 자습실에 도착하자는게 목표였어요(집에서 학교까지 3분거리인데 무단지각 80개인건 비밀). 그렇게 롤 대회도 마무리 되고 수면패턴과 예비 매3비, 매3문 등을 조금씩  풀면서 몸을 맞춰가던 중 3주정도 지나고 3월 마지막닐 쯤에 3월 모의고사 성적표가 나오더군요. 독서실에 성적표를 꽂아놓고, 정말 독하게 6월 모의고사까지 달려보자는 마음으로 머리를 밀고 정말 드디어 제대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학원에서 내주는 수학숙제를 열심히 해가고, 국어도 방과후를 열심히 들으면서 리얼기출문제집 5개년을 사서 풀고 채점하고 오답하는 식으로 공부를 해나갔죠. 문법도 방과후쌤의 설명을 들으면서 ㄱㄴㄷㄹㅁㅂㅇ를 그녀다리만보여 라고 외우던 것도 기억나네요(선생님은 여자셨습니다). 영어는 정말 몇몇 단어를 제외하면 조금만 구문이 어려워져도 주어와 동사를 찾지 못하던 수만휘식 노베이스여서 힘겹게 조금씩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했던게 반 친구들이 말을 걸면 모두 무시하고 저는 맨 뒤에 책상을 놓고 듣기 시간과 몇몇 수능에 필요해보이는 수업 혹은 제가 모르는 문제에 대한 질문 이외에는 자습에만 몰두했어요. 얼마나 심했냐면 선생님들이 자습시간을 주셨는데 애들이 떠든 적이 있었는데 그때 국어를 풀다가 문제도 안풀리고 교실이 정말 너무 시끄러워서 화가난 저는  반 친구들한테 "야 이 개 밥버러지 새x들아 학교에 밥쳐먹으러오냐 진짜 적당히좀 해라 씨x 개빡치네 진짜"라고 얘기한 적까지 있네요(재수가 끝났을 무렵 저를 돌아봤을 때 가장 후회하는 일 중 하나였어요. 사실은 저 외침이 중학교1,2,3학년 그리고 학교에 오면 자고 롤얘기나 하다가 학교가 끝나면 피시방으로 향하던 그 정말 쓰레기처럼 한심하게 살았던 고등학교1,2학년의 저에게 외치는 말이었던거죠..... 원래 자신의 모난 모습을 정면으로 직시한다는게 참 어렵고 힘든 일이잖아요? 느껴보신 분들은 알껍니다 ㅠㅠ 당연히 옳다고는 생각 안해요. 재수 끝나고 반 친구들 만나서 사과도 하고 잘 풀긴 했어요 내면에 너무 아파서 그랬다고).

  그렇게 2달간 아침7시부터 밤12시까지. 공부 방향은 조금 잘못되었을지라도 양만큼은 진짜 많았고(당연히 양도 중요한 성적대라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그때 가장 행복했던게 밤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새벽 즈음 집으로 향하는 길에 차가운 공기를 마시면서 재지팩트(빈지노와 시미트와이스라는 프로듀서가 합을 이룬 팀)의 smoking dreams 라는 노래를 듣던게 참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ㅠㅠㅠ(혹시 모르신다면 꼭 들어보시길) 이윽고 다가온 6월모의고사. 고사리손으로 참 열심히도 풀었고 끝나고 채점을 해본 결과 국어b형 수학a형 영어 경제 사문 순서로 원점수 '87 92 84 32 37' 등급으로는 '3 2 4 4 4'. 저는 정말 기쁘고 좋았어요. 여기 대부분 오르비언들은 경험조차 해보지 못한 것이겠지만 진짜 노베 형님들은 다 알거든요. 정말 교육청 모의고사 53555에서 평가원 모의고사 32444로 2달만에 오른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걸요. 하지만 여기서 또 제대로 된 성취의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 제 치명적인 단점이 드러나게 되는데, 바로 작은 성취에도 너무나 기뻐하고 이것이 자만으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이 당시 다니던 학원과는 조금 멀고 학교와는 가까운 독서실을 다니고 있었는데, 같이 독서실을 다니던 학교 친구들이 정말 공부를 거의 안하다시피 하고 오히려 학원에 같이 다니는 학교친구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저는 학원 쪽 독서실로 옮기기로 마음을 굳힌 것이지요. 6평이 끝난 날 채점을 한 후 학교쪽 독서실 친구들과 모의고사가 끝난 기념으로 술과 치킨을 사서 가든파이브(송파구 장지동 쪽에 있는데 그냥 복합 쇼핑단지 같은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뒤쪽 풀숲으로 가서 그날 하루를 신나게 즐겼습니다. 속으로는 내 미래는 정말 앞으로 창창할 것이라고 느끼면서요. 다음날 저는 기쁜 마음으로 학원쪽 독서실로 짐을 옮기게 되었고 그때까지도 몰랐습니다 '제가 4수까지 할거라는 사실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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