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사가되자 [801072] · MS 2018 · 쪽지

2018-05-24 01:4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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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기적을 바라는 진짜 노베들에게(1) - 본격적인 수기 전 인생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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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3 3월 53555 > 4수 21212받고 정시로 지방교대 입학해서 즐겁게 학교생활 중인 학생입니다. 재수 초반에 처음 오르비를 접했네요.

  김첨지드립을 치던 오르비문학과 같은 재미있는 글과 드립들도 많이 봐왔고 끝없는 부정적인 떡밥들과 갈등처럼 오르비의 어두운 면도 계속 봐왔죠. 정이 많이 들었는지 수험생활이 끝나고서도 막 뻘글도 써보고 뭔가 나도모르게 기만의 의도가 담긴 인증글들도 많이 썼는데 https://orbi.kr/00017195922/진짜-노베는-무슨-수를-쓰든-옯-접으세요 이 글을 보고나서 느껴지는게 많아서 이제는 정말 도움이 되고싶은 얘기를 해보고 싶어서 수기를 남겨보려고 합니다. 많이 길겠지만 노베이스 학생들에게 정말 도움 많이 될거라고 생각하니까 꼭 시간내서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수기 권장대상은 평균 3등급이하의 학생들입니다.

  

1. 여느 학생들과 비슷한 성장기와 주저리주저리

  누구나 그렇겠지만 어릴때부터 부모님이 저에게 거는 기대가 남달랐어요. 소극적이고 똑똑하지 않아보이는 저희 형과 달리 매사에 궁금증을 가지고 접근하고, 조금 발을 담그면 재능이 있다고 느껴지는 저의 모습이 부모님에게 선입견을 심어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요. 그중 다른 영역보다 특히 재능이 있다고 여겨졌던 부분이 수학이었어요. 구구단도 많이 빨랐고 어머니의 일화를 빌려보자면 달력을 이용해서 6살무렵에 31까지 덧셈계산을 했다는 정도? 그렇게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말라서 싸움은 못하지만 공부는 좀 하고, 나대고 발표하는 거 좋아하며 독서와 과학은 싫고 수학은 좋아하던 그런 학생이었죠.

  초등학교 4학년 때 수학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이때 처음 승부욕이라는 것을 배웠어요. 반 아이들과 경쟁하고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재시험을 봤는데 정말 남보다 점수가 안 나오는 날에는 너무 짜증나서 오기로 버텨서 기어코 시험을 통과하고 집에 가던 그런 기억이 떠오르네요. 그 해가 가기 직전에 교통사고가 나서 십자인대가 늘어나서 입원을 해야했는데 학교는 몰라도 수학학원 가야 한다며 울면서 입원을 거부했던 일도 떠오르네요.

  그렇게 초6까지 중학교 3학년수학을 끝내고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알파벳을 a부터z까지 똑바로 쓸 수 없는 참사가 일어났어요. 그 뒤로 영어학원을 다니면서 조금 노력은 했지만 단어외우는게 싫어서 day3 이상만 가면 몰래 컨닝해서 시험보던 그런 저였어요. 좋아하는 것만 공부하던 저에게 닥쳐온 큰 위기였죠. 또한 독서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서 맞춤법, 독해력 등이 정말 엉망이라서 국어실력 또한 현저히 낮았어요. 결국 중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에서 330명 중 수학8등 영어 180등 국어200등 사회 70등 과학 200등 정도의 성적을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이때부터 저는 공부와 점점 멀어졌어요. 지금 가장 친한 중학교 친구를 2학년때 만나게 되고 이 친구를 포함한 여러 친구들과 피파온라인2(아마 98년생부터는 잘 모르실 듯…)에 푹 빠져서 다니던 종합학원에는 맨날 절반수업을 빼먹고, 엄마한테 문자가 안 가게끔 미리 학원에 연락해서 온갖 핑계를 대곤 했죠.

  여기까지 지금 돌이켜 봤을 때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은 그거였어요. 수학을 제외하곤 ‘무언가를 노력해서 그 노력에 대한 성취를 통해 기쁨을 느껴본 적이 없는’것이었죠. 결국 그렇게 그냥 저냥 전교 100등 정도로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 공부가 딱히 싫으면 마이스터고 라는 곳에 가서 일찍 취업하는 것도 괜찮다는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수도공고라는 곳에 지원도 해봤지만, 부족한 내신과 출결으로 낙방하고 말았죠.(수기가 너무 길어져서 말은 안했지만 선생님께 대들어서 멱살도 잡혀보고 체육대회에서 반칙한 다른 반에 대한 분노로 결승전을 반 친구들 데리고 나가서 시위하고  자전거타며 방해하다가 징계도 먹을 뻔 했던 썰 등 뻘짓 많이하고 다녔어요 ㅎㅎ..)결국 그냥저냥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 되니까 점점 공부하기가 싫어져서 중3 12월부터는 그나마 다니던 학원도 쉬겠다는 핑계로 그만두고 놀기에만 집중했고 이때부터 롤을 진짜 많이했고 이 게임이 제 인생을 더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맙니다.


2. 리그 오브 레전드와 함께 최악으로 최고였던 고등학교시절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라는 게임을 시작하고 얼마 안가서, 정말 학원에 안갈꺼냐는 부모님의 반강제적인 물음에 동네에 있는 작은 학원(잡설이지만, 이 학원 원장님이 담긴 포스터를 얼마전에 봤는데 뜬금없이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신다는…..)에 다니게 됩니다. 하지만 이때 정말 롤이라는 게임의 재미에 푹 빠져서 학원 안가는 날이면 학교가 끝나면 바로 피시방으로 달려가 밤10시까지 게임을 하고, 학원에 가는 날에도 숙제는 뒷전으로 하고 롤을 하다가 시간에 맞춰 겨우 가곤 했죠. 그렇게 대충대충 동네학원을 다니며 중간고사를 본 뒤 큰 학원으로 옮기라는 부모님의 성화에 못이겨 다시 큰 학원으로 옮기게 되고, 이때 정말 롤에 더더욱 푹 빠져서 학원에 가는 시간이 아니면 전부 롤을 하며 만렙을 찍기 위해 발버둥치다가 결국 기말고사 시즌에 일이 터지고 맙니다. 기말고사 시험대비를 하러 가야 하는데 롤 레벨이 29라서 선생님의 전화를 모두 씹고 집에서 롤을 한 것이지요(만렙 좀 찍자 좀). 선생님의 연락을 받은 아버지가 급하게 집으로 오셨고, 저는 그 날 뒤로 공부에서 완전히 손을 뗐습니다.

  놀기만 할거면 알바라도 하라는 아버지의 말에 알바를 하기는 했지만, 그 이외의 제 모든 정신은 리그 오브 레전드, 특히 ‘순위가 주어지는 랭크게임’에 가 있었죠(후에 왜 그랬는지에 대한 얘기를 서술해드립니다). 그렇게 여름방학을 헛되게 보내다가 2학기 개학을 했고 저에 대한 답답함을 못 이기셨던 아버지는 제주도로 2박3일 수학여행을 떠나는 저에게 ‘공부를 하지 않을거면 집을 나가라’는 말을 하셨고 저는 어려운 고민을 안고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웃는 친구들을 봐도 즐길 수가 없었던 저는 수학여행 내내 친구들에게 말도 않고 혼자 토라져서 먼 산만을 바라봤습니다. 그러다 집에 오는 길에 친구에게 핸드폰을 빌려서(당시 핸드폰을 도난 당해서 사용하지 않고 있던 상태)당시 유행하던 카카오스토리를 보던 중 카카오스토리를 하지 않는 저희 형이 제 카카오스토리에 급히 전화달라는 댓글을 남겼고 형에게 전화를 하니 형이 아버지가 어머니의 뺨을 때려서 어머니가 집을 나간다는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는데 21살에 시집 온 어머니와 온 몸을 마쳐서 새벽5시에 일어나 11시에 주무시며 일만을 해오시며 가족들을 뒷바라지하던 아버지가 어긋나는 두 아들놈의 나태하고 그릇된 행동과 방황을 참지 못하여 발생한 문제라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가 짐을 싸서 다음날 나가셨고, 알바로 모아둔 돈이 조금 있는 저는 당시 어린 마음에 아버지에게 못되게 구는 것이 어머니를 위한 길이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과 함께 그냥 집을 나갈거라며 집을 챙겨 나오게 되죠. 6박7일간 친구집, 찜질방을 나돌며 눈뜨면 피시방, 눈감으면 잠 을 반복하며 앞으론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던 중 그 다음날이 제 생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똑같이 찜질방에 갔더니, 저희 아버지가 찾아오셔서 제가 오면 재워주지 말라고 하셨다며 내쫓는 바람에 찜질복을 받지 않고 목욕만 하고 나간다는 되도 않는 핑계로 탕에 들어가 남이 입던 땀에 젖은 찜복을 입고(하필 그날따라 깨끗한 찜복이 없었어요…) 맥반석 계란 세개와 식혜를 사서 찜질방 취침 굴로 들어갔죠. 식혜를 먹기 전 너무 배가 고파서 계란을 입에 넣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공부하나 안하는게 뭐 그렇게 큰 죄냐고 생각하면서 정말 3시간동안 그 계란을 씹지도 못하고 남들 꺨까봐 조마조마하면서 꺼이꺼이 울었어요. 다음날이 생일인데 고작 그깟 공부하나 안하다고 집을 나가라고 하는 아버지가 너무 원망스러워서 카카오스토리에 글도 쓰고 그랬죠(이 당시 아버지 친구분이 저랑 카카오스토리 친구였는데 저는 그 사실을 까먹고 글을 써서 나중에 아버지가 친구분 앞에서 펑펑 우셨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저 정말 불효자죠). 다음날 롤을 하고 있는데 형에게 채팅으로 연락이 오게 되고, 집을 정말 다신 안들어올거냐는 말과 함께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저를 데리러 온다는 얘기를 듣고 같이 가서 넷이 식사를 했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네요 올림픽공원 쪽에 있는 산들애 라는 한식당. “집을 나가 보니 좋냐? 너 이렇게 행동하는게 엄마 위하는게 아니고 속을 뒤집는 거야”는 엄마의 말에 씁쓸하게 식사를 하면서 집에 들어가라는 말을 듣고 어머니는 나가서 계속 사셨지만 저는 결국 집에 들어오게 됩니다. 다음날 등산을 가자는 아버지를 따라 나서 산 중턱에 올라갔을 때쯤 아버지가 저에게 권유를 하나 하게 됩니다. “공부를 정말 하기 싫으면, 너 전에 혼자 막 머리 자르고 그런 거 재밌어하던데 미용사 같 같은 관심 없니?”라는 아버지의 말에 저는 집에는 붙어 있고 싶어서 하겠다고 했고 결국 미용학원을 다니게 되었지만, 몇달 못가고 포기하여 이전과 같은 생활을 반복하게 됩니다.

  그렇게 고2가 시작될 때 쯤 중학교 330명중 328등 정도 하던 제 가장 친한 친구놈이 공부가 하고싶어졌다며 같이 공부를 시작해보자는 말에 슬슬 위기감을 느끼던 저는 아버지에게 무릎을 꿇고 공부를 한 번만 다시 도전해보겠다고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허락해주시며 저를 지지해주셨어요. 그치만 또 다시 시작된 나태함, 노력에 대한 성취를 해본 적이 없는 경험 등으로 인해 다시 공부를 포기하게되고, 스스로에 대한 회의감에 빠져 정말 미친듯이 롤을 하기 시작했어요.   

  여기서 아까 제가 롤에서의 랭크게임에 집착을 했는지가 드러나게 되는데, 저는 정말 인정을 받고싶었어요. 어릴 때도 칭찬을 받으면 날아갈 듯한 기분에 쌓여서 집에 가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저의 부족한 노력과 능력으로 인해서 칭찬을 받는 일이 사라진 것을 깨달은 거죠. 그래서 저는 그 당시 제가 그나마 가장 재미있어하고 잘한다고 생각했던 롤의 등수에 병적으로 집착하게 되었어요. 골드 3단계였던 제 티어는 정말 수많은 게임경험을 통해 다이아몬드 4단계까지 오르게 되고 반 아이들이 매일 저에게 찾아와 같이 듀오 게임을 하자고 하거나 돈을 주고 대리랭을 해달라고 하거나 전날 자기가 롤을 하면서 어떤 일이있었는지 이야기하고 반 대항전을 하자며 다같이 피시방에 가자고 하는 등 그 '칭찬을 받고 싶었던 욕구'를 조금씩 해소하게 되었죠. 하지만 이때는 어려서 잘 몰랐죠 이게 정말 인생이 패망하는 지름길이 되는지는요. 결국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이 끝나갈 때 즈음이 되고(이 당시에도 게임만 하는 저에게 아버지가 화가 많이 나셔서 막 엄마한테 가서 살라고 하고 엄마도 화가나서 아빠한테 가서 살라고 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부모님 속을 정말 많이 썩였죠) 엄마와 살고있던 제가 잠이 안오지만 어머니가 깰까봐 잠든척하며 누워있었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제 쪽으로 오시더니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에휴 그래 건강하게만 크면 그만이지 엄마도 더이상 욕심부리지 않는게 좋을거같다". 다음날 어머니는 어머니가 집을 나와서 제가 크게 망가졌다고 생각하시며 아버지와 힘들더라도 함께 살기로 했다며 저와 함께 원래 집에 같이 들어갔고 이때 저는 정말 이제라도 바뀌어야 겠다고 다짐하면서 독서실을 끊었죠. 너무 길어져서 2탄은 내일 작성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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