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 Pace [687617] · MS 2016 (수정됨) · 쪽지

2018-04-26 23: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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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즈음 나오는 정시와 수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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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입시를 준비했던 한 명의 수험생이자 졸업생으로 글을 써내려간다.


항상 이맘때가 되면 기분 나쁜 정시글과 수시글이 보인다.


전문가인 것 마냥 자신의 논리와 생각을 펼치는 키보드 위의 전쟁터


나 역시 다를바 없겠지만 한번만 글을 써보고 싶다.


난 정시러였다.


물론 현역 당시엔 논술로 대학을 갔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논술도 사실 정시였다.


애매한 수도권 인문계 고등학교


이과 내신 3등


애매하게 쌓은 실적과 진로 계획


고3 때 눈을 떠보니 내 내신과 비교과 실적으로는 애매한 인서울 공대 뿐이었다.


말도 안돼


모의고사는 다 1등급이 나오는걸?


상위 98프로에서 99프로인데?


나에게 있어서는 정시는 공정했고


수시는 공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학교 생활이 부질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수시를 위한 학교는 아니었다.


일부러 실적을 만들어주고, 상을 주고, 입시 준비를 시키지는 않았다.


물론 그게 옳다.


그렇지만 전교 1등을 제외한 400명의 수험생에게는 아니었다.


그래서 고3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난 수시를 싫어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회를 나가고 실험을 하고 동아리를 하고


열심히 눈에 보이는 실적을 써내려갔다.


생기부에는 시시콜콜한, 작은 사실 조차 조미료를 더했고


딱히 준비를 한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결과는 인서울 공대


무시할 것도 아니고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모의고사의 성적과 너무 차이가 났기에


현역 때의 치기어림까지


부정적으로 생각했었던 것 같다.


현역 때 이제 평가원을 마주했다.


고3이 아니라 재수생이 상대였고


난 아마 그 때 역대급으로


시험을 조졌던 것 같다.






우습지만 그 때 성적이


딱 학종을 갈만한 정도였다.


망했다라고 보기엔 애매하지만


현역의 나에겐 첫 충격이었다.


수학 3등급


화학2 3등급


오타인가?


그 이후


하나의 꿈을 버렸다.


난 화학1을 수능 과목으로 택했고


수학 30번을 포기했다.


아마 그 때부터 근거없는 자신감을 버리고


정시와 수시 모두를 준비한 것 같다.


물론 조금 늦었다.


고3 1학기 내신을 멋도 모르고 놓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언제나 실패는 내 옆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늦었지만 자기소개서와 비교과를 써내려갔다.


그리고 그 때부터 개념 강의를 제대로 듣기 시작했다.


나의 공부법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개념부터 다시


한석원 센세와 함께...


당시에 학교장 추천 자리가 나에게 주어졌다


이과 5등에게는 올 수 없는 자리였지만


그 누구도 쓰지 않았기에


나까지 온 것이었다.


부모님은


수시가 쉽다고 수시가 답이라고 수능은 모른다고


그렇게 학추 준비를 했다.


우습지만 결국은 쓰지 못했다.


정시가 더 자신 있어서?


아니면 고려대보다 더 좋은 곳을 갈 수 있어서?


아니


학교장 추천이라는 특별한 기회가 주어져도


내 성적으론 못가기 때문이었거든.


결과론적으론 정시가 더 잘 풀렸지만


그 당시엔 내 자존감에 많이 상처를 입었던 기억이 난다.


아차 이 이야기를 까먹었다.


고려대학교 학교장 추천을 준비하며


자기소개서를 써내려간 그 짧은 2주가


입시를 준비한 고등학교 3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내 진로에 대해 진심으로 생각해 보는 기간이었다는 것을.






고등학교 때 두번 운적 있다.


누군가를 좋아 하는 것을 조금 늦게 알았을 때


한번은


내 꿈을 접었을 때






2주, 고3에게는 짧은 시간이기도 하지만 긴 시간이기도 한다.


그 2주를


모의고사를 풀고, 수학 문제를 푸는게 아니라


나의 이야기를, 나의 학교 생활에 대해 써내려가는데


소비했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초등학교 때


나의 꿈은 특별해지는 것이었다.


만화 속의 슈퍼 히어로처럼


아니면 소설 속의 판타지처럼


물론 현실을 마주하고


그 꿈은 잊은지 오래지만.


초등학교 때 치기어린 생각이 다시 떠오른 것은 왜일까


7월달 즈음


학교 선생님의 팩폭을 맞고


결국 학교장 추천 전형을 포기하고


수시라는 최소한의 보험조차 없어지자


7월 모의고사를 기점으로


난 과탐 2과목을 포기하고


서울대라는 거창한 목표는


구겨진 나의 자기소개서와 함께 사라졌다.


그 때부터 의대를 준비했다.


오만하게 보이고


뭔 선택이 그따구냐 싶지만


아버지가 그랬다.


서울대나 카이스트가 아니면


너의 전공을 살릴 기회조차 없을 거라고


왜냐하면 나의 목표는


기계공학과와 전기전자 공학과가 아닌


에너지 연구였으니깐.






대체에너지 개발


핵융합 연구


이게 내가 고려대학교 학교장 추천 전형을 준비하며


자기소개서에 써내려간 내용이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진로 목표를 적으라 하면


그냥 공대


내 성적에 걸맞고


취직도 잘되는


기계공학과와 전기 전자 공학과


고등학교 3년 동안


단 한번도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꿈은 무슨무슨 과가 아닌


무슨무슨 대학


명문대 꼬리표가 아마 나의 목표였을 것이다.


자기소개서를 써내려간 2주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자기소개서를 써내려가면서


나의 학교생활은 빈곤했고


1000자는 글을 쓰기엔 너무나 많은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꿈을 적어내렸지만


꿈을 위해 준비한 적이 없었기에.


솔직히 그 때의 그 감정


그 순간의 심정은 2년이 지난 지금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것만은 확실하다.


그 때 내 자기소개서에는


에너지 공학 연구원이라는 꿈이 적혀져 있었고


그 목표를 포기하게 되었을때


옥상에서 혼자 울면서 슬퍼했다는 것.


그 때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결국 부모님과 선생님을 설득시켜


과탐2과목을 준비하고 시험을 보고


안되더라도 내년에 다시 준비를 하고


이도저도 안되더라도


대학에 가서 열심히 했더라면


당당한 에너지 연구의 권위자가 되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 때의 선택을 저주하며


후회했을까?


그 누구도 알 수 없고 아무말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 때의 일 이후


학종이라는 것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바라본 것 같다.


적어도 후회와 선택이라는 것을 나에게 보여주었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꿈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으니깐.


그 이유만으로도 난 학종이 정말 좋았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나는 에너지 공학을 포기하게 되어


공대라는 목표에서 의대라는 목표를


나에게 있어 정시라는 유일한 길로에 놓인


최상의 목표를 고르게 되었다.


후회는 없다.


도망쳤다는 생각도 들고


힘들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더 좋은 선택을 한 것 같기도 하다.


당시 2주만의 결심이


내 인생을 어떻게 바꿔 놓았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솔직히 지금 내 삶 또한 마음에 들고


그 어디서든 최선을 다하면


마지막에 이르어 후회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의외로 난 정시로도, 학종으로도 내 대학을 정하지 못했다.


정말 당황스럽게도 논술로 입학하게 된 것이다.


물론 최저컷 덕분에 별거없는 내 수학 실력으로 통과한 것이지만 말이다.


이렇게 여러 전형을 겪다보니


나름의 생각을 적어내려갈 수 있는 것 같다.


학종은 금수저를 위한 전형


고등학교도 좋은 곳을 가야되고


날로 먹는 전형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나처럼


꿈에 대해 생각하고


무엇이 되고 싶은지 잠시라도


한명의 학생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그 것만으로 그 가치가 증명되는 것이 아닌지


그리고 고1 때부터 착실히 비교과 교과를 쌓아온 학생이


명문대를 가는 것이 과연 그른 것인지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정시 또한


전국의 수험생이 동시에 같은 시험을


정확한 숫자로 점수가 나오고


가장 평등한,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는 전형이라고 많이들 이야기 한다.


그렇지만 몇천만원씩 과외를 받는 학생들


재수생과 반수생들을


현역들과 같은 시험장에 배치하는 것이 정당한가?


정시 준비는 돈이 들지 않는가?


어설프게 자신의 논리를 펼치고


현혹될 시간에


자기소개서 한줄이라도 더 적고


수학 한 문제라도 더 맞추길 바란다.


그리고 혹시라도


잠깐의 시간이라도 남는다면


나는 사회에 나가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내 꿈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지금 생각해보지 않으면


언젠가 선택조차 하지 못한 자신을 후회할 수 밖에 없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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