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비 [811013] · MS 2018 (수정됨) · 쪽지

2018-04-18 00:02:57
조회수 15,406

작년 수능장에서 유쾌한 사수생 만난 썰 1. S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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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화, 그리고 유머글입니다. )


1)


일주일의 기회를 더 받았지만 어떻게 보냈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어느새 수능 당일. 


부모님의 가볍듯 무거운 격려를 받으며 차를 타고 수험장으로 향함.


인사를 하고선 숨을 한번 내쉬고 학교로 발을 내디뎠을 무렵,


유난히도 크던 응원소리에 고개를 들어 본 광경은,


굉장히 여유 있어 보이는 한 남자가 일일이 응원단 모두에게 악수를 나누던 광경이었다.


그 짧은 순간, 약 2초 정도되는 찰나에 느낀 것은, 


" 이 새끼 현역은 아니다 "


보통의 아우라가 아니었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를 넘어 급식실 짬통 그 이상의 수준이었다.


나는 들어가는 것도 멈춘 채 가만히 그를 지켜봤다.


매년 저렇게 수능을 보러 오는 건가?


악수를 하는 모습이 여느 대선 후보자에게도 꿀리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웠다.


악수를 받은 학생들의 표정은,


좋아하는 아이돌에게 악수를 받은 것처럼 밝고 즐거워 보였다.


나도 악수 신청을 해야 할까? 라고 잠깐 생각한 사이 그가 사라졌다.


나는 그제서야 발길을 옮겼다.




2)


그는 멀리 가지 못했다.


그렇다고 가까이 접근하기에는 뭔가 무서웠다.


약 20m 정도의 간격을 두고 그의 발걸음과 나의 발걸음을 맞춰갔다.


같은 교실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그냥 친해지고 싶었다. 


재미있어 보였다.


어제 미리 확인한 내 교실은 1층 끝자락이었는데,


그는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조금 실망을 했지만, 그래도 뭐.


재미있는 광경을 봤으니 그런대로 만족하고 내 교실로 향했다.


아무도 오지 않은 교실에 들어가서 짐을 풀고


혼자 노래를 부르며 비문학을 보고 있었는데, (만점을 받을 사람 나야 나~ 나야 나~) (진짜 저거 부름)


갑자기 문이 열렸고, 난 아무렇지 않은 듯 들고 있던 비문학을 소리 내어 읽었다. 세상 미친놈인 줄 알듯.


고개를 아주 살짝 들어 확인해보니 " 그 " 였다.


운명의 데스티니일까, 


터져 나오려고 하는 웃음을 간신히 참은 채 다시 비문학을 읽었다.


아니, 사실 눈은 비문학을 보고 있지만


뇌와 귀, 그리고 몸의 모든 신경이 그쪽을 향했다.


근데 교실에 둘만 있으니 말도 안 하고 조용하더라. 


살짝 실망한 찰나에, 그가 갑자기 A4 용지를 꺼내서 무언가를 마구 적기 시작했다.


백지 복습을 하는 걸까, 대단하다고 느꼈다.


내용을 보고 싶어서 화장실을 가는 척, 자리에서 일어나 그 옆을 지나갔다.


지나가면서 내가 본 가장 첫 줄의 네 글자는,


" 합 격 수 기 "


나는 진짜로 화장실에 갔다.


지려버렸기 때문이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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