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파27 [774125] · MS 2017 (수정됨) · 쪽지

2018-02-17 13: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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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수 아조시의 군반수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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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orbi.kr/00016171208 에서 제일 많은 표를 받은 썰이 군반수네요.

하시려구요..? 인간이 할 짓이 아닌 것 같긴 한데 음 ..
아니면 그냥 듣고싶은건가! 그런거면 차라리 나은데!!

편하게 쓰려고 반말 섞었어요 ㅠㅠㅠ 기분나쁘면 미안해여...


4년에 한 번 있는 2월 29일, 그리고 내 인생에 한 번 있을 2016년 2월 29일.
꼭 같이 가서 나 입대하는걸 보고싶다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나는 전날 홀로 부산으로 향했다.
돈도 남았겠다. 제일 뷰가 좋은 호텔을 예약하고 친구들에게 하나 둘 씩 전화를 했다.
따지고보면 정말 뜬금없는 입대였다. 어떻게 입대하기로 정하고 하루 뒤 입영통지서를 받아들게 되나.
입영통지서에 찍힌 잉크를 보고 이틀간 이리저리 하던 일들을 마무리 했다.
그리고 날이 밝자마자 머리를 밀고 부산으로 향한 것이다.
부산에서 하룻밤 자고 일어나자마자 보인 바닷가의 풍경은 상당히 을씨년스러웠다.
딱 거진 2년이 지난 현재도 그 을씨년스러움은 내 마음 깊숙히 박혀서 빠져나올 생각을 안한다.
글쎄, 여기서 가장 유명한게 돼지국밥이라고 들었는데, 별로 땡기지가 않았다.
호텔 조식뷔페에서 조금 깨작거리다가, 답답해서 나왔다. 9시 조금 넘은 시간. 입대는 오후 2시다.
4시간 조금 넘게 남았다. 뭘 해야하나. 일단 바닷가쪽은 너무 추웠고, 뭘 봐도 그냥 너무 미웠다.
약속시간에 일찍 안가면 미쳐버리는 병이 있는 나는 결국 일찍 부대 앞에 가있기로 한다.
택시 안에서 "53사단 가주세요"를 말하자마자 바로 후회가 됐지만.. 글쎄 일찍 안가면 미친다니까.
택시기사 아저씨가 군대는 어떻고.. 이야기를 했지만 별로 들리지가 않았다.
경청을 중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입대하기 직전에는 아무것도 들리지가 않았다.
사단본부 앞에 섰다. 아니 근데 글쎄 이게 뭐야. 해운대 기차역이잖아. 내가 두 달 전에 여기를 왔었는데..
그랬다. 그 때 부산여행을 잠깐 왔을 때 딱 해운대 기차역 바로 옆의 군부대를 보고 혀를 찼었던 그 곳으로
입대하게 된 것이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그 앞 중국집에서 간짜장을 시켜먹기로 했다. 간짜장 위에는 계란후라이가 올라가있었고 맛은 기억이 안난다.
만약 내가 짜장면을 코로 먹었다고 중국집 아저씨가 증언해준다면 나는 그대로 믿을 것이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무정한 아들놈은 엄마를 이름으로 저장해놨다. 그냥 엄마라고라도 저장하주지.

..아들은 엄마의 눈물 젖은 통화기록을 꿀꺽 삼키고 핸드폰을 껐다. 그리고 2016년 2월 29일 14시경 입대했다.
이상했다.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뭔가 잘못됐다.
모두가 사투리를 쓴다. 그래 53사단은 향토사단이라 전부 부산울산양산출신들이 대부분이다.
나같은 서울사람은 뭐 빽이나 공석을 이용해야 들어오나보다 싶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고운 말이 없었다.
"아굴창 빨래하러가자"
"응? 무슨 말이야?"
"양치하러가자고 서울새끼야"
아 글쎄.. 말좀 곱게좀 해줘야 알아듣지. 아니 뭐 지금 생각해보면 더할 나위 없이 귀여웠다.그럴 수 있지. 그래.
분대장 훈련병이 됐다. 이유는 학벌이 인서울 4년제라서. 그리고 나이가 제일 많았다. 94년생이라고 하면 애기라고 했던 시기는 다 갔다.
씁쓸하기가 그지없었다. 첫 날 불침번을 섰다. 별의별 생각이 다 났다. 불침번은 거의 매일 있다고 보면 되는데,
불침번을 설 때마다 인생을 몇 십번을 되돌아봤는지. 500일 넘게 사귀었다가 헤어진 첫사랑,
아직도 너무 아련해서 다른 여자는 만나기가 쉽지가 않다. 부모님은 뭘 하고 계실까. 이모부는 어디서 뭘 하시나.
난 앞으로 뭘 해야 행복할까. 나는 무슨 사람인가. 미친듯이 고민하다가 결국 인정하기로 했다.
난 공부가 좋다. 무슨 공부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일단 공부가 좋다. 공부할 때가 따지고보면 제일 좋았던 것 같다.
훈련소에서 몸 쓰는 것? 글쎄 나는 몸치라 잘 못하겠다. 그냥 공부가 제일 잘 맞는게 확실하다.
그래. 광주쪽 자대로 가자마자 나는 그 주에 외박을 나와 바로 수능책을 샀다. 아 진짜. 열라 재밌더라 공부가.
자대로 간 4월 12일부터 나는 근질거렸던 것이다. 비문학이 읽고싶다- 수학 21번을 풀어서 쾌감을 얻고싶다..
뭐 변태라면 변태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게 실은 공부하고 싶어도 못하는 환경에 처하니까 공부가 그렇게 하고싶을 수가 없었다.
아니 글쎄, 나도 엄마가 야동보면 안된다고 해서 야동을 봤던 거지. 하지 못하게하면 하고 싶어 미치겠더라니까.
내가 받은 보직은 81mm박격포 탄약수였다. 점차 거슬러 올라가 부포수, 포수까지도 하게 될 예정이었다.
어따ㅡ 포 무겁더라. 전방이면 km187, m29 이런 좋은 박격포 쓸텐데 나는 미개한 후방부대라 m1을 썼다.
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응 그냥 6.25 전쟁때 쓰던거 그대로 쓴다고 보면 돼.
포다리 21kg/포신 20kg / 포판 20kg 이렇게 총 61키로. 근데 나는 막내. 그럼 내가 두 개는 들어야지 뭐.
실제로 저렇게 포다리+포신, 군장 이렇게 총합 66kg을 매고 산을 탔던 훈련이 있었는데, 진짜 넋빠지는 줄 알았다.
이 얘기를 왜 했을까. 군대에서 공부하기 힘들다는 얘기 하고싶어서 꺼낸거다. 이렇게 힘든 훈련 하면서 공부하는거.
진짜 변태 아니면 안되는 것 같다. 더 짜증나는건 솔직히 선임들이 갈구는거다. 아니 나는 세상에 그런 패드립이 존재하는지도 몰랐지.
4년제 다닌다고 자랑하는거냐며 한 번만 더 행군할 때 필기노트 갖고다니면 엄마 목을 따서 아빠 제삿상에 놓겠다는 새끼도 있었다.
아니 이건 양반이지. 말 더 심하게 하는 놈들도 많았다. 아니 그래도 난 공부했다. 욕 먹어도 내가 하고싶은거 하고싶었다.
ㅡ 그 와중에, 14개월 위의 선임이 있었는데, 수능을 공부하고 있던 양반이었다. 그 양반은 상병 말호봉, 나는 이등병.
내가 도와주면 좀 군생활이 편하지 않을까 싶어서 매일 도와줬다. 국어를 미친듯이 가르쳐줬다.
하루 최소한 3시간? 내 공부시간 다 뺏겨도 괜찮았다. 국어 비문학 독해법부터 문법 개념까지 깡그리 다 뇌에 넣어주고,
냅다 기출풀이를 매일 시켰다. 푸는 시간도 줄었고, 보는 내가 뿌듯해서 더 열심히 가르쳤던 것 같다.
나중에 2등급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진짜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아니 뭐.. 나도 그 수능에서 국어는 다 맞았지만, 수학이 태클을 걸어서 넘어졌다.
다섯 번째 수능(군대에서의 첫 수능)은 그래도 뭐. 만족스러운 편이었다. 나도 연고대 적정이 한 번은 떠보는구먼!
정도에 만족했다.
이제 나도 제법 짬이 찼다. 아, 그 사이에 나는 CP병이 됐다. 대대장 비서.
매일 아침 차를 타고 나가 대대장을 데려오고, 커피도 타오고 오늘 일정 불러주고. ㅡ 그리고 공부하고.
겁나 좋았다. 아니 하지만, 군대에서의 첫 수능이 끝나자마자 대대장이 바뀌었는데, 완전 인간쓰레기였다.
여간부에게 성희롱은 기본이고, 내가보기에 더한 건 더했다.
그리고 제일 화가나는건 약자를 자꾸 멸시한다는 점이다. 우리집은 있는 집안이다 솔직히. 국회의원도 많고 돈은 더 많다,
나는 무시를 당하지 않았지만, 기초생활수급자 내 후임을 유난히 괴롭혔다.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 모범적인 친구인데.
아니아니 더 가난하고 힘든 애가 들어오면 미친듯이 갈궈댔다. 하루는 이 후임이 부친상을 당해서 휴가를 가야하는데,
총기 교대를 똑바로 안하고 휴가를 나가려한다고 돌아오면 두고보라고 애 앞에서 으름장을 놓는 거였다. 뭐 욕은 당연히 했고.
아 이쯤 되니 나도 못참겠더라. CP병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런 사람 밑에서 일하는게 너무 혐오스러웠다.
그래서 남은 보직을 찾아보려하니 이 대대에 남기가 너무 싫었다. 그래서 유격대에 지원을 했다.
지옥같은 유격조교 훈련을 받고 나는 유격조교가 됐다. 몇 주동안 쭉 파견을 가서 유격장에서 살았다.
아 그래도 거기는 살 만 했다. 애초에 선임이라는게 존재하지도 않아서, 내가 공부를 하든 뭘하든 신경도 안썼다.
그래, 매일 몇 키로씩 뛰었지만 쉴 때 공부하고, 절벽타면서도 절벽 위에서 쉬면서 공부하고.
헬기 강하. 그래 그것도 까짓거 하고나서 공부하면 된다. 오히려 그거는 말만 거창한거지 실제로 하고 나서 쉬는 시간이 많아서
헬기 강하 하는 날은 꿀이었다. 그렇게 4월부터 다시 공부를 해서.. 11월 16일 수능을 앞두고 말년휴가를 나왔다.
당연히 수능을 응시하려고 했지만... 포항 지진으로 연기가 됐다는 소식이 그 날 저녁에 들려왔다.
아니 글쎄.. 나는 수능 끝난 다음날 복귀하는게 일정이었는데. 어이가 없었다. 개떡같았지만 대대장에게 하소연했다.
도와달라고. 유격대장은 매번 바뀌니까 도움이 안된다. 휴가권자인 대대장에게 얘기해야했다.
결론적으로 국가에서 그래도 공가 4일을 줬다. 그래서 말년에 꿀 좀 빨았다. 말년에 공짜 휴가 4일이라니 세상 감사했다.
뭐 어찌됐든, 수능은 6번 봤지만 수능 전날의 그 살떨리는 느낌은 7번 느끼게 됐다. 어휴 글쎄.
나도 수능샤프가 6개네그려.
수능은 잘봤냐고? 아니. 또 수학이 이상했지.근데 더 이상한건 이번 정시판이었다.
영어가 만점인데 절대평가라는게 너무 화가났다. 난 지금껏 뭘 위해 영어공부를 한 것인가.
아니 입시전략을 잘못 짠 내가 병신이라고 생각도 한다. 그래도, 사람이 간사해서 자꾸 남탓을 하고 싶어지는 듯 하다.
연세대 추가합격 도는 거 보니 난 이미 떨어진게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제 이 바닥 뜰거냐고?
아니. 여기서 글 쓰는거 안보여? 난 최소한 여기서 멘토링이라도 할거야.
이래뵈도 수능 전문가다. 최선을 다해서 누군가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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