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ht [718925]

2018-02-12 18:2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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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재수로 고려대를 가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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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옯창 Recht입니다.


이 글은 단지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잊어가는 2017년을 글로나마 남겨두기 위해 쓰는 것이며

굳이 누군가 읽지 않아도 되는 그런 파묻힐 글입니다.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거나 따라하기를 바라는 글도 아닙니다.

고3을 포함한 그 이전의 흐름도 적어보고 싶지만 글을 길게 쓸 생각은 없기에 작년 이야기만 대충 풀어볼게요.

필력이 형편 없으므로 양해 바랍니다.


2016년 11월 17일 첫번째 수능을 쳤습니다.

선택과목은 나형, 법과정치, 사회문화, 아랍어

아랍어 시간에 귀찮아서 그냥 제끼고 집으로 왔습니다.

하나씩 매겨보았습니다.

국어 85 수학 96 영어 89 법정 35 사문 48

인문계 누백 4~5%였습니다.


당시 가채점 배치표 상으로는 경외시 하위과정도였습니다.

솔직히 이정도 학교면 충분히 만족한다 싶었고 그날 집분위기는 좋았습니다.

이상하게도 지금 생각해보면 17수능도 조진거였는데 어째 기분이 좋았는지는 의문입니다.

어쨌든 수시 최저는 충족했으니 논술학원도 매일 9시간씩 다녔고

결국 6광탈과 함께 정시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재수를 불사할 성적이라 과감히

가군 경희대 경영

나군 고려대 서어서문

다군 중앙대 경제

지르고 셋다 예비받고 다 떨어졌습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SKY를 제외한 대학은 니들이 불러줘도 안간다.


고려대 서어서문 합격자 발표를 독재학원 컴퓨터로 봤었습니다.

집에서 도보 20분 거리인 독재학원을 12월 30일부터 들어갔고,

그땐 그래도 희망찼습니다. 뭔가 될거라는 확신과 자신감은 계속 들었고

공부도 나름 잘됐으니까요.

많이 하는날은 10시간씩 평균적으로는 5시간씩.

3,4월까진 이 페이스를 계속 유지했던 것 같습니다.


학원 분위기는 초반에는 좋았습니다. 사람도 적었고요.

그런데 1/3쯤 차기 시작할때부터 초면인 사람끼리 친목을 하기 시작했고

저처럼 솔플하는 사람들은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학원 설문조사에서 친목과 관련된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저또한 탐탁치 않아했지만 그래도 별 생각없이 다녔던것 같습니다.


이때 친구들과 술자리를 많이 가졌습니다. 거의 일주일에 한번꼴로요.

하루는 소주 4병을 마시고 집에 아닌척 들어간적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미친짓이네요.


동전노래방 진짜 많이 갔습니다. 친구랑요.

제가 노래를 잘하진 않지만 부르는걸 좋아해서 자주 갔습니다.

지금도 시간나면 가는편입니다.


3월 첫 시험부터 6평 전까지 모의고사에서

학원 문과 1등을 자주 했지만

5월부터 풀어진 탓인지 6평 점수는 처참.

국어 87 수학 96 영어 78 법정 40 사문 40

인문계 누백 2~3% 였던것 같습니다.


현역때 성적이나 다름 없었고 진짜 좌절했었습니다.

게다가 학원 내에서 여러가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마음도 지쳐있었고

결국 저는 자습시간 중간에 가방도 놔둔채 학원을 뛰쳐나갔고

그대로 할머니집으로 간 뒤에 부모님께 며칠만 쉬다 오겠다고 문자를 남겼습니다.

이때 정말 힘들었습니다. 학업, 인간관계, 가족관계 등 여러모로.


그렇게 할머니집에서 10여일간 쉰뒤 집에 와서 부모님과 쇼부를 봤죠.

다른 독재학원으로 옮길까 생각을 했지만 그건 설득이 안될것 같아

주변 대형재종학원으로 옮긴다고 선언했습니다.

6월 20일, 가장 높은 반에 들어갔습니다. 분위기 좋았습니다.


뭔가 수업, 자습시간에 졸면 나만 병신되는 느낌. 나를 한심하게 쳐다볼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나름 안자려고 했지만,

6평을 망친 탓에 그 후유증이 너무나도 컸고,

재종 처음들어올 때의 다짐 같은건 버린지 오래였습니다.


재종 다닐 당시의 기억은 배틀그라운드 뿐입니다.

등원 후 수업시간에 자고 자습시간에 자고 마치고 PC방 가서 배틀그라운드만 했습니다.

친한 친구와 새벽 3시에 집에서 몰래 나와 PC방 가서 배틀그라운드하고

8시에 학원 등원하고 하루종일 자습실에서 자고.

이거 계속 반복하다 보니 학원을 다닐 이유가 전혀 없어졌습니다.


카카오뱅크가 막 문열 무렵 50만원을 대출했고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여러가지 투자해서 10만원 이득봤습니다.

수익이 별로인것 같아 스포츠토토에 전념했고 (합법)

경기당 20~40만원씩 베팅해서 150만원까지 땄습니다.

30만원 정도는 친구들 밥사주고 유흥비로 즐기다가

원금이자 갚고 남은돈 다시 토토로 날렸습니다.


그런 생활속에서 9평을 쳤습니다.

국어 89 수학 96 영어 71 법정 50 사문 50

인문계 누백 1.2%정도였던 것 같고

의외의 성적이 나와서 기뻤습니다.

이날 술 보이는대로 입에 넣어서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토했던 것도 기억납니다.


9평을 치고 매긴 그 당일 바로 재종 담임에게 찾아갔고

학원 다닐 이유가 없어져서 독서실에서 혼자 공부하겠다고 하니

인사도 없이 그냥 "그래라" 한마디만 듣고 학원을 나왔습니다.


중간 중간에 교육청 모의고사는 생략했습니다.

올1이 안나오면 의미가 없는 시험이어서요.


어쨌든 그렇게 재종학원을 나오고 집에서 도보 15분 거리인 그린램프 독서실로 향했습니다.

여긴 오픈한지 겨우 3~4일된 곳이라 사람이 초반엔 적었습니다.

사람이 쉽게 바뀌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독서실을 다녀도 저의 방탕생활은 계속되었습니다.


8시 엄마가 준비할때 저 깨워주시면 잠시 준비하는 척하다가

엄마 나가면 다시 잠듭니다. 다시 깹니다. 오후 4시

서재로 가서 컴퓨터를 켜고 게임을 합니다. 6시까지.

그때 아빠가 퇴근하면 방금 독서실에서 집에 온 척을하고

또 방에 들어가서 아이패드로 장난질 존나합니다.

아 진짜 쓰면서도 자괴감 듭니다. 왜 그렇게 공부 안했는지.


근데 독서실 다니면서도 공부한 시간이 조금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평균내면 하루 3시간쯤 되지 않을까 싶네요.

매일 저렇게 논 것은 아니고 주당 2~3일정도 저랬으니까요.


그렇게 수능이 두달쯤 남았을때 영어 2등급은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영어 과외를 받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은 도움된것 같습니다.


독서실 생활이 끝나갈 무렵, 수능 전주 주말에 독서실 짐을 다 뺐고,

수능 전날이 다가왔습니다.

법과 정치 책을 세권 펴놓고 단권화 작업과 함께 벼락치기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이때 드는 생각은 단 하나, 평가원 친만큼만 쳐도 서성한은 가겠다였습니다.

아니면 경희대 경영이라도 가자 제발.


서서 벼락치기로 머리 다 때려박는 와중에 지진으로 인해 수능이 연기되었고,

저는 일주일간 지역 도서관을 다녔습니다. 이때는 공부했냐고요?

아니죠. 했을리가요. 저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친구랑 같이 다니면서 공원에서 하루의 절반을 보냈습니다.

둘의 기분이 비슷했을 겁니다. 준비는 안했는데 심판은 받아야겠고.


진짜 수능 전날이 다가왔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울었습니다.

왜 공부를 안했을까가 아닌 갑자기 재수 초반때가 생각이 나서요.

내가 이 시험을 치려고 이렇게 1년간 준비아닌 준비를 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습니다. 마음을 다 잡았습니다.


원래 큰 시험에 떨지 않는 성격이라 다행이었습니다.

떨지 않기위해 재수생활 처음으로 삼수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망하면 삼수가 있다 편하게 치자. 별로 안떨렸습니다.

수능날 가방짐을 든든하게 다 챙겨갔고 시험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때 기분이 어땠냐고요. 딱 이랬습니다.

어떠한 아이템도 장착하지 않은채 최종단계 깨는 느낌.

하지만 타인의 이전 사례에서 그런 케이스가 종종 있었단 걸 보고는

나도 저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느낌.


그게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날의 국어 문제는 제가 여태 풀었던 국어 문제 중에서 가장 쉬웠습니다.

모든 문제를 다 손가락을 걸었고 독서 문학 엄청 빠르게 풀었습니다.

수학도 나름 괜찮게 풀었고 다행히 검산중에 하나 잡아냈습니다.

영어는 여전히 방황했고 다 찍었습니다.

법정 사문 진짜 무슨 사법고시 치는줄 알았습니다.

이거는 나름 공부했는데도 2년째 어렵더군요. 그래도 시간때문에 손가락 걸었습니다.


시험장을 나오고 엄마를 만나서 차에서 제가 처음으로 한말.

"국어 너무 쉬웠다. 100점 맞을 것 같다. 국어 1컷 98쯤으로 낸것 같다."

집에 들어갔고 컴퓨터를 켜서 매기기 시작했습니다.

국어 98 을 보는 순간 엄청난 괴성과 함께 점프를 했고

수학 92 를 보는 순간 다른 실수를 안했음에 감사했고

영어 80 을 보는 순간 진짜 십년감수가 무엇인지 알게되었습니다.


이대로 사탐만 점수가 괜찮다면 연고대도 노려볼만하다는 생각에,

오르비와 ㅅㅁㅎ를 돌아다니며 사탐 답을 공유했고,

집단지성의 답지로는 대략 50 48로 추정되었습니다.


근처 스테이크하우스에 가서 가족 셋이서 정말 기분좋은 저녁을 먹었고,

그날 기분은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해방감 성취감 행복감 이 세가지 단어로 표현할 수 있겠네요.

밥을 먹는 도중 사탐 답지가 올라왔고 매겨보니 50 46 이었습니다.


영어 2 인탓에 연세대는 못쓰지만 적어도 고려대 하위과는 간다는걸 알았고

아빠가 특히나 가장 좋아했습니다.

하늘은 분홍빛이었습니다. 진짜로요. 하늘은 하늘색이 아닙니다.

이게 한 두달정도는 하늘이 분홍빛으로 보였습니다.

세상이 이렇게도 아름답구나. 세상은 나를 사랑하는구나.


서울로 가는 KTX표와 서울의 호텔을 잡았습니다.

그때 논술 접수를

연세대 경영

서강대 경영

성균관대 글경

한양대 정시템

중앙대 글금

경희대 경영

을 했는데 연세대 경영만 쳤고 나머진 걸렀습니다.

작년 기억이 났습니다. SKY 빼고는 불러줘도 안간다고.


결과는 당연히 떨어졌습니다. 그걸 어떻게 뚫습니까.

사실 큰 기대도 안했습니다. 어차피 정시로 고려대학을 갈 수 있는데.

그래서 정시모집까지 가게 되었고, J Fait 고속성장 엔젤스 등의 여러 정보를 종합하고

나름 가꾸고 했으나 제 능력이 부족한 탓에

그냥 안정적인 학과를 지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작년에는 불합격한 고려대를 최초합격 했습니다.


사실 제 꿈은 로스쿨에 진학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제가 잘난 대학에 붙지도 못하고 보여줄만한 것이 없어

로스쿨의 로자도 꺼내기 부끄러웠습니다. 누가 비웃을까봐.

이제라도 이렇게 꿈에 관해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다는게 더할 나위없이 기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책장에 진열된 재수때의 책을 보거나 당시 자주 들은 노래들을 들으면 울컥합니다.

짜증났던, 불행했던, 불안했던 기억들도 결과가 좋으니 결국 다 미화되고 추억이 되더군요.

돌이켜보면 좋았던 1년이었습니다. 많은걸 겪었습니다.

특히 독학을 하면서 내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못하고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확실하게 느꼈습니다.


우여곡절 많은 1년이었지만 이 또한 제 미래의 거름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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