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장이 [428095] · MS 2017 (수정됨) · 쪽지

2017-10-15 23:59:05
조회수 14,108

[글장이T] D-31 해봤자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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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봤자 안됩니다..라고 생각하는 분들께 

제 이야기를 해드리려 합니다.


몇 달 전에도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엄청 우려먹네 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어요.

욕 먹을지라도 

지금 이 순간 힘든 하루를 겪고 있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기에 

다시 한 번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좀 길지만 시간이 아깝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자 그럼 이야기 시작할게요.




이야기는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합니다.



전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못하는 편이라 하는 것이 맞지요.

문과에서 3~5등급 왔다갔다 하던 성적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자존심만은 굉장히 높았죠.

기초부터 공부해야하는 실력에도 심화과정의 공부를 고집했죠.

그리고 공부는 효율적으로 해야 한다며

공부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한 합리화를 했습니다.


당연히 성적은 오르지 않았고,

고1때 받았던 좋은 성적만이 내 진짜 실력이라고 믿었죠.

시험을 칠 때마다 '망했다'라는 말만 외치며 내 실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망한게 아니라 원래 실력인데…)

자리에만 앉아 있는 공부 아닌 공부는 계속되었고

공부하는 시간을 채웠다는 것만으로

'오늘도 열심히 공부했어'라는 자기합리화를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수능을 보게 됐죠.

결과는 어땠냐고요?


제대로 된 input이 없는데 원하는 대로 될리가 없지요..



그렇게 첫 번째 수능이 끝이 났고

공부하기가 싫었던 저는 제가 받은 성적에 맞춰

아무 대학이나 가고자 했습니다.

당연히 좋은 대학은 아니었지요.


아버지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으셨고

억지로 외딴 곳에 있는 기숙학원에 절 보냈습니다.


12월 선행반에 들어갔지만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아이가

기숙학원에 들어간다고 해서 공부를 할 턱이 없었죠 ㅋㅋ..

그렇게 12월 한 달간 잠과 멍때리기의 절친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한 달이란 시간은 굉장히 길게 느껴졌었고

어느샌가 나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죠.


말만 앞선다고 날 혼내시던 부모님..

그리고 반박을 전혀 할 수 없었기에 무작정 화만 내던 나.

하지만 달라지지 않는 모습.

누군가가 성적을 물어보면

고1 때 성적을 이야기하며 콧대를 세우던 모습 등..

(속으로는 ‘거짓말하는건 아니니까!’ 라고 합리화를 하면서..)


매일매일을 나 자신을 속이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어느날 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런 식으로 살면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답은 명확했죠


‘아니, 지금처럼 살아간다면 앞으로 내 인생은 허세만 가득한 거짓된 인생이 되겠지.’


‘적어도 나 자신을 속이는 부끄러운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


이 결론을 내린 순간, 한 순간 한 순간이 너무나 아까워졌습니다.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공부’뿐이었고 바로 실행에 옮겼죠..!


현실을 직시한 저는 무식하게 양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질적으로(효율적으로) 공부할 만한 실력이 아님을 인정한거죠.


하루에 딱 세 번(아침에 일어나서, 점심 식사 후, 일과가 끝난 후)만 화장실을 가기로 정했고

그 이외 시간에는 항상 자리에 앉아서 공부를 했습니다.

5시반에 기상해서 12시에 취침을 했고 나머지 시간을 항상 공부를 했죠.

졸리면 샤프로 손등을 찍어가면서 제가 가진 시간을 최대한 끌어 쓰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독하게 공부를 하는 모습을 인상깊게 보신 선생님 두 분이 절 굉장히 아껴주셨죠.


하지만 인생은 그리 쉽게 풀리지는 않는 것인지, 성적은 거의 그대로였습니다.

3~4등급에서 도대체 오르지를 않았지요.

9월 모의고사까지도 성적은 그대로였고 좌절감에 휩싸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건강은 악화되어 음식을 입에 넣으면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죠.

그래도 꿈을 위해 굴하지 않고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10월에 큰 사건이 발생합니다. 학원이 부도가 난거죠..!

(정확한 것은 모르지만 듣기로는 이사장이 다른 사업도 같이 병행하다가 그 사업이 ㅈ되는 바람에 학원이 부도처리가 됐다고 하더라카더라)


수능이 한 달 남짓 남은 시기에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놓고 떠나갔습니다.

특히 저희 반 담임쌤은 뒷문으로 들어와서 나지막하게

"얘들아, 미안하다. 더이상 너희를 가르칠 수 없을 것 같구나.."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죠.

(참고로 선생님을 원망하진 않아요 ㅋㅋ 무려 5개월치 월급을 받지 못했는데도 티 내지 않고 열심히 가르쳐 주신 분들이니까. 오히려 감사드리고 있어요)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을 위해 끝까지 남아서

모든 반을 케어하며 가르쳐 주신 선생님들이 계셨죠.

앞서 언급한

절 인상깊게 보고 도와주신 두 분이 바로 그들!.

교무실 한 켠에서 아이들 몰래 눈물을 훔치시던 뒷모습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나중에 술 한 잔하며 들은 얘기인데, 아내에게 다른 학원 출강한다고 거짓말하고, 그 외딴 곳까지 오셔서 가르쳐주신 거라고...ㄷㄷ 내 인생에 이보다 더한 참of참선생을 볼 순 없을듯)


한편 제 건강은 점차 악화되어 계단을 올라가는 것도 힘들게 되었습니다.

177에 52kg까지 빠졌었으니까요.

선생님들이 없으니 학원 분위기는 정말 최악이었고

거의 동몰의 왕국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에 공부하는 학생이 손에 꼽을 정도로 분위기는 개판!


그래도 한심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기에

더욱더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재수의 시기가 지나갔고

노력이 빛을 발하길 바라며 두 번째 수능을 치뤘습니다.


결과는...





놀랍게도 상당한 성적 향상을 이뤄냈습니다.

고3 수능 400점 만점에 290점대였던 점수가 360점대로 수직 상승을 했지요.

소위 지잡대에서 인서울이 가능한 성적이 된 거죠


너무나 기뻤고 ‘나도 하면 할 수 있다’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도전하면 명문대도 꿈이 아니다! 라는 희망이 생겼지요.

그렇게 다시 수능에 도전했습니다.


3수는 2월부터 기숙학원에 들어가 공부를 했죠.

난 독학을 하고자 했지만,
아버지는 고3 때의 제 모습만 보셨기에 독학은 아예 고려 대상이 아니었죠 ㅠㅠ.


3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3개월 간 아예 놀기는 부담스러워서 조금씩 언어(지금의 국어)를 독학했습니다.

(그때 깨달은 공부법이 지금 글장이로서 강의를 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됐죠)


그리고 기숙학원에 입소 후 첫 시험인 3월 모의고사부터

언어(지금의 국어) 성적이 1등급 아래로 내려오지 않게 되었고

공부법에 대한 믿음이 생긴 저는

그 방법대로 공부를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6평도 올1을 받아내며

순탄하게 3수 생활을 보내는 듯 했지만,

자신감이 너무 폭발했던지

어리석게도 반의 반장을 맡았죠 ㅠㅠ.


누군가를 챙겨주는 것을 좋아하는 저는

반 애들이 느끼기에 과도한 간섭을 했고

어느새 반에서 왕따가 되어 있었습니다.

공부 외적으로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았고,

자연스레 자신감도 폭락했죠.

그래도 다행히 9평도 6월 성적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니 결국 터지고 말았지요..

모의고사를 보는 도중에 갑자기 숨을 쉴 수가 없게 되었고,

시야가 점차 검게 변하면서 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비틀거리며 문을 열고 나가서 복도에 쓰러지고 말았죠.

구급차가 왔고 병원에 실려갔습니다.

진단을 받아 보니 폐에 구멍이 뚫리는 '기흉'이 발병한 거였죠.

병 자체는 큰 병이 아니지만 문제는 발병 시기였습니다.

수능이 있는 몇 일 전에 발병을 한 것이죠.


기흉을 겪어본 친구들은 알겠지만

갈비뼈 옆을 째고 손가락 굵기만한 쇠 튜브를 꽂고

공기를 빼내다 보니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숨 쉴 때마다 도저히 적응 안 되는 고통이..ㅠㅜ


근데 이 쇠 튜브를 갈비뼈 사이에 박고

병원에서 수능을 봐야 하는 상황이 된거죠 ㅋㅋㅋ

통증은 물론이거니와 마지막 정리도 제대로 못했고 환경도 너무나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수능을 보는 당일에 병원에서 로비 공사를 진행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죠.


제가 시험을 보던 1인실이 마침 1층 로비의 바로 위에 있었고

공사는 아침부터 진행됐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언어듣기가 있었고, 언어 시간과 함께 공사가 진행된거죠.


두두두두두 다다다다다

(포크레인 굴착기 소리)


당연히 언어 듣기가 들릴리 만무했고 (카세트 테이프로 틀어줍니다..)

누구나 맞추는 문제를 전 틀리고 시작해야 했지요 ㅎㅎ..

지금으로 치면 화법 다 틀리고 시작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ㅋ.ㅋ


다급해진 전 듣기 듣다말고 감독관에게 공사를 잠시 중지시켜 달라고 요청했지만,


감독관 가로되 "시험 도중에 밖으로 못 나가니까 이 시간 끝나고 가서 말해볼게" 라는 말을 하고 다시 신문지를 펼쳤습니다.

(호우!! 수 년이 지났는데도 생각하니 또 빡치네 이것말고도 에피소드 좀 더 있지만 글 장황해지니 생략합니다)


패닉상태가 된 전 시험에 온전히 집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작문의 첫 줄부터 뭐라고 하는지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고,

내 머리 속엔 '난 지금까지 뭘 한 걸까?, 이 고생을 왜 한 거지?' 등등의 잡념들만 가득해졌습니다.

그렇게 허무하게 수능이 끝났고, 가채점을 해보니 고등학교 성적으로 돌아와 있더군요...


그리고 든 생각은 아버지의 화난 모습이었습니다.

'이 성적을 보면 얼마나 화를 내실까...두렵다. 죽고싶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제 다리는 어느새 옥상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꿈을 이룰 유일한 희망마저 없어졌기에 더이상 내게 남은 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옥상에서 본 지상은 모든게 작아보였습니다.

나도 저렇게 작은 존재인가 싶었고

별 생각을 다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생각의 마지막엔 어머니가 울고 있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내게 남은건 없을지 몰라도 가 어머니 것을 앗아갈 권리는 없었죠..


조용히 병실로 돌아와 다시 또 생각에 잠기던 중에 아버지가 오셨고,

전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여주셨습니다.

포옹을 해주며 "수고했다..."라고 하셨죠.


아버지 품에 안겨 울고 또 울었습니다...


이렇게 세 번째 수능이 끝이 났죠.


그 이후로는 수능의 ‘수’ 자만 봐도 화가 치밀어 올랐고, 두렵게 됐습니다.

타격이 너무 컸던지 제대로 된 생활이 불가능했고

잠시라도 생각할 틈이 있으면 자괴감에 빠져버렸기에

그러한 생각을 할 시간이 없게 게임에 몰두했습니다.

게임을 할 때 만큼은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요.

문 닫고 방에 틀어박혀서 게임하고 자고 게임하고 자고...

그렇게 게임 폐인이 되어버렸죠.


그런 제 모습을 보다 못한 아버지가

"내 친구가 ㅎㄴ대 학장으로 있으니까 거기 가서 열심히 해서 후임 교수가 되어라"

라고 하셨고 마땅한 선택지가 없던 전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죠.


그렇게 ㅎㄴ대를 갔지만 삼수해서 ㅎㄴ대를 갔다는 것에 나도 모르게 피해의식이 있었고,

동기들과 그리 잘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2013년 3월 29일 저녁 7시쯤(너무 충격적이라 기억함..)에 축구를 하다가 오른쪽 정강이가 아주 박살이 났습니다.

상대가 발을 들고 정강이로 태클을 들어와서 관절이 아닌 부분이 관절처럼 되었죠.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기에 절친이 없었습니다.

절 챙겨주는 사람은 극소수였고 그들도 얼마 가지 않아 자기 생활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목발을 짚고는 활동성이 좋을 수 없었고

학기 초에 다른 사람들은 친목을 도모할 때, 전 방에 혼자 박혀 있어야 했죠.

목발이 양손을 차지했기에 비가 오면 밖에 나갈 수도 없었고 다리 통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정신적으로 온전하기 힘들었고, 거의 우울증 환자가 됐죠.

잠을 자려고 하면 과거의 일들이 떠오르면서 계속해서 나를 옥죄였고

매일매일을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5월에,

재수 때 날 인상깊게 보고 아껴주셨던 수학 선생님(아내한테 뻥치고 가르쳤던 그 쌤)에게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잘 지내냐, 어떻게 지내고 있어?"

선생님께 지금까지 있었던 이야기들을 모두 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께서

"정말 안타깝구나...넌 거기에 있기에 너무 아깝다! 내가 도와줄테니 다시 한 번만 해보는 게 어떻겠니?"

라고 제안을 하셨죠.


그때까지도 수능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나 컸기에

생각을 해보고 결정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불면증에 시달리며 고민과 고민을 거듭했고,

다시 한번 해보기로 결심한 순간 머리를 밀었습니다.


머리카락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4반수가 시작됐죠.

재수 때 참of참선생님 두 분(수학 영어)이 같이 학원을 차리셨고,

저는 거기서 멘토 역할도 하며 다시 수능을 차근차근 공부했습니다.


그 두 분은 절 절대적으로 신임하셨고 학원은 절 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학원 문을 여닫는 걸 내가 할 정도였으니까 ㅋㅋ)


점차 자신감이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의 믿음 속에 공부를 부담없이 할 수 있었고,

대망의 4번째 수능날이 다가왔죠.

시험장을 가는데 두렵기보다는 상쾌했습니다..

아마 지긋지긋한 4년의 종지부를 찍으러 가기 때문이었겠죠.




결과적으로 제 인생 최고의 성적은 내진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고

경인교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해서 (면접 덕이 크죠ㅎ)

지금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인 '많은 사람들에게 가치를 선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현재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지 모를 친구들에게

‘포기하지 않는 자세’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누구보다 힘든 시간을 겪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순탄치 않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은 분명하기에...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꿈'을 위해서 달릴 수 있는 자세.

이 자세를 여러분에게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이 자세가 ‘내일의 나를 보다 나은 나’로 만드는 원동력이 되니까요!


어떤 역경이 닥쳐도 꿈을 잃지는 마세요.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일반계고의 흔한 남고생도 해냈는데 여러분이 왜 못하겠어요?


그리고 당부의 말을 몇 마디 할게요.


남은 수험 생활이 몇 일 남았든 간에 유종의 미를 위해서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마세요!

혹시 '몇 일 남지도 않았는데 지금 해봤자 되겠나?"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공부 시작합시다.

전날 공부한게 시험 나온 경우 꽤 봤습니다~~!.


그리고 좀 오글거려도 매일 나는 할 수 있다고 되뇌이며 자신감을 고취시키세요!

긴 수험생활에서 느낀 건 실력의 반은 자신감이란 것!

자신감있으면 틀릴 것도 맞습니다 ㅋㅋ

(참고, 자만(근자감) ≠ 자신감)


아 혹시 궁금해 할까봐 덧붙일게요. (안 궁금하면 ㅈㅅ..)

제 꿈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주체적인 삶(자유)'입니다.

그리고 현재 제가 원하는 건 제 능력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가치를 선사'하는 거에요.


그래서 3년 넘게 글장이수능국어를 운영해왔고

강의와 컨텐츠로 적지않은 친구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습니다.

이젠 더 많은 친구들을 도우려고 합니다.

이곳 오르비에서.



bonus tip!

여러분을 위한 재밌는 영상 투척합니다.



현재의 당신이 어떤 환경이고 어떤 사람이든 간에

열정, 노력, 끈기를 지닌

내일의 당신은 분명 빛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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