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서독 [383625] · MS 2011 (수정됨) · 쪽지

2017-06-24 13: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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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가장 감격스러웠던 서울대 수석 합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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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1년 동안 뭐하다 왔노?"

"시험 좀 치고 왔습니다."

"시험? 니 같은 노가다가 시험 칠 게 뭐가 있노? 무슨 시혐 쳤는데?"

"대학 한 번 가볼까 싶어서요."


아저씨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어느 대학에 시험 쳤노?"

"그냥 서울에 있는 학교 쳤습니더."

"그러마 서울대학 시험 쳤겠네?"

"하기사 서울에 있는 대학이면 전부 서울대학 아이가, 하하하!"


서울대 시험을 마치고 대구로 내려온 나는 오랜만에 친구들도 만나고 하면서 사나흘을 푹 쉬었다. 그러다 보니 '놀면 뭐하나, 돈이나 벌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같이 일하던 아저씨들께 연락을 해보니, 마침 일거리가 있다고 해서 1년여 만에 다시 공사 현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아저씨들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내 말을 잘 믿지 않으려는 눈치였다. 생김새로 보나 하고 다니는 꼴로 보나, 영락없이 공사판 막노동꾼으로 딱 어울리는 나 같은 녀석이 공부를 한다는 게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1년 동안 어디 다른 현장에서 일하다 왔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어느 직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막노동 역시 대우나 조건이 조금 좋은 데가 있으면 1년에도 몇 군데씩 옮겨 다니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고려대학교 합격자 발표가 먼저 났다. 점심 시간쯤 서울에 있던 동생한테 전화를 걸어 보니, 녀석은 대뜸 농담 삼아 이렇게 말했다.


"히야, 그냥 붙으면 우짜노?"


장학금을 받고 붙어야지 '그냥' 붙으면 어떡하느냔느 얘기였다.


아저씨들에게 얘기했더니, 그제서야 농담이 아니라는 걸 알고는 깜짝 놀랐다.


"그라믄 인자 승수 니가 고대생이 되는 기가?"

"그건 아직 잘 모릅니더."

"왜, 합격했다믄서?"

"한 군데 더 시험친 데가 있거든요."

"어데?...... 니 진짜 서울대도 쳤나?"

"예."


하루 이틀 서울대 발표날이 다가왔다. 합격할 자신은 있었지만, 정작 발표날이 다가오자 또다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떨어지면, 고려대학교에 그 비싼 학비를 내면서 과연 다닐 수 있을까? 그렇다고 또다시 1년을 수험생 노릇 할 수는 없는데. 진짜로 떨어지면 다 때려치우고 평생 노가다 하면서 살아야 되나......


이윽고 서울대 발표날이 되었다 초조함과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어머니는 벌써 기도를 하러 새벽같이 산으로 알라가셨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일을 나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오전 11시나 돼야 합격 여부를 알 수 있을 텐데, 그때까지 이렇게 빈둥거리고 있다가는 속이 새카맣게 타 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 나가자. 나가서 잊어 버리고 일이나 하자.


역시 생각대로 막상 현장아 나가서 연장을 집어들자 그럭저럭 일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마침 나무 토막 자를 게 있어서 한 시간 남짓 열심히 기계 톱을 돌리고 있는데, 현장에 나와 있던 건설 회사 직원 한 사람이 내 이름을 불렀다.


"장승수 씨, 빨리 현장 사무실로 가 보세요."


무심코 사무실을 향해 걸어가는데, 이번에는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승수야!"


뒤를 돌아보았다. 우리 아저씨들 중에서 유일하게 호출기를 가지고 있던 김씨 아저씨가 헐레벌떡 나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승수야, 니 서울대 수석 합격했단다!"


글쎄, 이런 순간에도 그저 덤덤하게 한 번 씩 웃어 버리고 말면 얼마나 멋있어 보였을까. 하지만 나는 역시 그런 위인은 못 되는 모양이다. 진짜 좋아서 죽을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내 저신이 아니었다.


미친 사람처럼 아저씨들을 껴안고 길길이 뛰다가,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났다. 이런 날 버스를 두 번씩 갈아 타고 집까지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아저씨한테 만 원짜리 한 장을 얻어서는 현장을 뛰쳐나왔다. 택시가 우리 집 근처에 다다르자 평소와는 달리 좁은 골목길에 차들이 북적대는 것이 보였다. 순간적으로 엉뚱하게도 우리 집 근처에서 무슨 사고가 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 앞에 서 있는 차들은 모두 방송국과 신문사 취재 차량이었다. 그제서야 '사고'의 주인공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문을 들어서니, 집안은 이미 북새통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를 에워싸고 있던 기자들이 일시에 "장승수 씨 맞지요?" 하면서 나를 향해 덤벼들었다.


다음날, 전국의 모든 신문과 방송이 나의 얘기를 실었다.


"막노동 4수생, 서울대 수석 합격!"

"가난도 시련도 뛰어넘은 인간 승르의 산 표본!"

"막노동판에서 일군 영광!"


 -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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