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찬우 [677168] · MS 2016 · 쪽지

2017-06-23 05:27:48
조회수 2,870

[심찬우]찬우가 보내는 스물네 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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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에 가면 인간취급 못 받지 않습니까?"


오늘 새벽 가로수길을 달려오다 문득 이 잔인한 질문을 다시 만났습니다.


강사의 초입에서 만난 이 질문 앞에, 아무말 하지 못했던 부끄러운 내 모습이 어둠에 젖어 나타난 것입니다.


쓸쓸함과 무지함의 경계에서 어떠한 변명도 하지 못했던 내가, 다시 한 번 그때의 겨울 앞에 선 것이 아닌가.


겉멋에 찌든 생각과 허상을 쫓는 가식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다 뱉어버린 말 앞에, 하나의 세계가 무너져 내렸던 그날의 기억이 차를 세우게 만들었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가.


서로의 세계와 가치가 다름을 인정하지만, 하나의 잣대로 변별해야만 하는 비현실같은 현실 앞에 굴복을 강요하는 내 모습이 순간 초라해졌습니다.


나는 과연 4년 전에 받았던 저 질문에 다시 답할 수 있을까.


나름 많이 노력했고, 제대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였는데 여전히 방향을 몰라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결국 차 안에서 그렇게 한동안 고민하다 집에 들어왔습니다.


한 사람의 존재는 성별로도, 돈으로도, 그리고 대학의 이름 '따위'로도 규정할 수 없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고 뻔한 이 사실 앞에 왜 우리는 그토록 주저했던가.


관성과 경험으로 얼룩진 지금의 모습으로 미래를 예단하려했기 때문은 아닐런지요.


수험생 여러분


문자를 보내는 이 사람은 늘 말하듯, 가장 별 볼일 없고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여전히 그때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으로 돌아가도 쉽게 저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소시민입니다.


일상이 무너지고, 관계에 지쳐버린 그대가 힘을 내주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대학에 가서 누군가를 짓밟고 그로부터 성취동력을 찾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우리 다음 세대에게는 이 질문에 당당히 대답할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스스로에게 지지 않는 법을 가르쳐 주고, 이 세상엔 나라는 존재를 드러내는 수많은 기회들이 있음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런 사명감으로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임합시다.


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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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단속도 · 610072 · 17/06/23 05:58 · MS 2015

    사실 지방대 가면 인간취급 못받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저 질문을 하게끔 만든건 저 질문을 하신 당사자분의 잘못이 아니라 질문자분 이전의 나쁜 관습과 그동안 방치되어온 나쁜환경의 잘못이 더 큽니다.

    지방대에서 소위 이른바 명문대와 차별되고 더 뛰어난 교과과정, 입학 초기에는 실력이 모자랐지만 입학 후 빠른 시간안에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교과과정을 만들어 명문대와 어깨를 나란히 이루거나 넘을 수 있도록 노력을 해왔다면 대학서열화가 조금 완화되어 저런 질문을 안했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지방대에서도 이런 사람은 소수겠지만, 상대적으로는 다소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지방대에 더 많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위험한 말일 수도 있는 것 압니다. 그런데 저 현역 때도 낮은 성적대 학생들 중에서는 이미 공부를 포기해버려서 지방대 중에서도 특히 낮은 성적대의 학교를 가야되는 상황이라, 성적은 안나오되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보고 뭐하러 그렇게 열심히 하냐면서 넌 어차피 안될거라고 깎아내리는 학생들이 조금 있었고 저 역시 성적은 안나오되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 중 한명이라 그런 학생으로부터 험한 말을 들은 경험이 있어서 특히 성적대가 상대적으로 낮은 지방대는 저런 학생들이 더 많을것이라는 차별의식이 조금 있는 것 같습니다.

    즉, 결론은 지방대의 인식을 바꾸려면 지방대에서 어느정도 명문대와 어깨를 나란히 이루려고 노력해야 하며, 차근차근 그런 노력이 쌓여갈 때 조금씩 조금씩 저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들 것 같습니다.

  • 종단속도 · 610072 · 17/06/23 06:04 · MS 2015

    저런말 없이 조용히 있거나 타인을 배려해왔던 지방대생이라면 당연히 인간다운 대접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누적되어 온 것을 생각한다면 환경이 상대적으로 더 좋은 명문대를 가는 것이 확률 상 더 결과가 좋을 것이라 판단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 Staysee · 687039 · 17/06/23 06:14 · MS 2016

    감사합니다.

  • 체세포와 함께 춤을 · 667285 · 17/06/23 06:44 · MS 2016

    매일아침 따뜻하고 좋은 글 감사합니다

  • 확률왕김통계 · 688498 · 17/06/23 07:23 · MS 2016

  • SptG1fvoD9YjFn · 696719 · 17/06/23 19:43 · MS 2016

    선생님! 기출분석하다 막히는게 있습니다.(기출분석 자료 감사합니다 ㅎ)
    1.
    우선 문학에서 너무 답이 뻔한 것들(작년 시장과 전장 문제)에 대해서는 기출 분석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2.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정의 한계 특이 변주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ㅠ
    정의나 변주에 대해서는 잘 찾습니다.
    한계같은 경우 러더퍼드에 대해서는 이해되지만
    지금 분석 중에는 잘 못찾겠습니다. 있는지도 모르겠고요 ㅠ
    한계나 특이에 대해서 추상적인데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까요?
    3.
    17기출 5번 뚫었는데 뭔가 해도 찝찝한 느낌이 있습니다. 완벽히 했다 생각합니다. 그래도 뒷끝이 남아있는 느낌이 듭니다. 이 찝찝함이 넘어갈때까지 다시 풀고 분석하고 반복하고 넘어가는 순서가 맞는거겠죠??

  • 심찬우 · 677168 · 17/06/23 19:43 · MS 2016

    게시판에 적어주세요 ^^

  • 지렁E · 733007 · 17/06/23 22:06 · MS 2017

    지방대에 가면 사람 취급을 못받는가. 대한민국 사람이 대학에 대해서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봤다면 저러한 생각을 비슷하게나마 다들 해보겠죠. 사회에서 요구하는 노력과 당연시되는 노력의 정도가 사람을 판단하는 척도가 되는 기조는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대한민국 사회에 발딛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는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 할 만한, 단순하지만 사회 전반을 꿰뚫는 질문이라고 생각되네요.
    제가 감히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패배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고는 말을 못하겠지만... 적어도 당연함을 당연치 않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