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망깨구리 [481372] · MS 2013 · 쪽지

2015-11-25 00:28:05
조회수 11,960

1+3(반수)생의 아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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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반수를 하고 성적표를 가슴졸여 기다리는 아이의 50초반 애비입니다.


여러분의 올 한해는 시간바늘 처럼 늘 같은 바운더리를 맴돌다
지친 몸을 이끌고 쉴곳으로 돌아왔을때 조차도 나보다 먼저 자리한
내안의 멍에가 내 공간을 이미 자리하고 있어, 숨도 쉬지 못할 만큼의
서러움을 안고 다시 쉴곳없는 번민과 성찰속에 스스로를 가두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느 작가가 한 이야기를 옮겨봅니다.
"인생이란 너무 눈부시게 살 필요는 없다.오히려 눈에 잘 뜨이지 않지만
내용이 들어 있는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결단코 남과의 비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느끼고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야.
그렇게 스스로를 만들며 살아가고 어딘가 빛을 만들며 사는일.
그것이 아름다운 삶이라고 할 수 있지."
(신달자 시인의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中)

"눈부시지 않아도 좋다. 빛나보이지 않아도 좋다. 눈에띄이지 않아도 좋다"
그저 스스로 빛을 발하고, 소박하지만 열정이 들어있는 삶을 살아가면 
되는것이다"라고 다시 곱씹어 봅니다.

저희 아이도 초등5학년때 과고 실험실을 견학하고 온후에 작은 마음에 그저
순수과학이 좋았던지 중3때 치열한 과고입시에서 첫 패배를 맛보았을 제아이는
합격자 발표를 받아들이고  안방에서 줄넘기를 하고 있더군요.
이후, 본의 아니게 중학교 고등하교 동문으로 부자지간의 연에 하나의 인연을
추가하게 되었고요. 
저희 아이도 고3때 부품꿈을 실현하지 못하였고, 재수한 후 친구들과 작당을
하여 **대학교에 적을두고 혼자서 꾸물꾸물 공부를 하다가, 시험을 보고 또
스스로에 만족을 못하여 2학기 등록 조차 하지 않은체로, 다시 시험을 보고
또 시련에 연속으로 **대학교에 혼자 등록을 하고 1학기를 마칠때쯤 "아빠
저 공부좀 다시 하고 싶어요" 하더라고요.

3번의 실패, 아이가 느꼇을 정신적, 육체적 압박과 부모를 통하여 조달해야 
했던 화폐에 대한 부담감으로 정말이지 쉽지 않은 용기를 내어 말을 꺼냈을
겁니다.
세상 모든 부모는 자식을 절대로 이길수가 없습니다.

사내녀석이기에 중력을 버티고 두발로 서야 하기에, 내가 저녀석을 끝까지
건사할 수 없기에, 정말 많은 생각과 물질적인 부분에서의 서포트 여부를 
고려하여 결국 15.6.21. 기숙학원에 반수반으로 넣었답니다.
그저 적어도 아이 스스로가 나름 고민하고 계획해서 작더라도 성취감을
맛보는 계기가 되어야 남은 길고 험한 인생길에서 생존해 갈 수 있으리란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제 딴에는 주말에 보고도 싶었지만 참고 참고 또 참았다가, 수능 2주전 주말에
아이를 보게 되었고, 학원 담임선생님을 통하여 8월 초까지도 마음을 잡질 
못하였고, 같은 반 아이들에게 "난 이번달 말에 집에 갈거야" 라는 이야기를 
공공연 하게 하였음을 인지한 순간 이었습니다.
아이도 감옥같은 기숙학원 생활에서 도피하고 싶었겠지요.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그 순간의 배신감이 제 가슴에 깊은 상처로 남았던 것을 사실입니다.

이정하 시인의 "너는 눈부시지만 난 눈물겹다"는 제목처럼 모든 부모는 같은 
마음일 겁니다. 
결국 저는 모르는척 시린속을 달래면서 수능이 마쳐지길 기다렸고, 수능을 
마치고 나오는 아이를 집으로 짐과 함께 데려오면서 그저 후련하기만 했습니다.

국어,생물 이 두 과목이 어려웠다는 아이에 말과 함께 가채점을 하고난 아이는
환한 미소를 짓더군요. 역시나 아직은 아이니까요.
그리고,1시간 남진 지났을까요. 아이가 이번엔 시무룩해지더니 방에 들어가서
나오질 않는 겁니다.
나머지 과목을 마춰보면서 해당 과목에 대한 스스로의 기대치와 기억을 더듬은
가채점 결과가 사뭇 달랐던 탓일테지요.
여러분들도 이러하셨겟지요. 다 맞았을거 같은 느낌의 충만과 그 기대를 여실히
깨버리는 가채점과정.... 그리고 마치 무언가 크게 잘못했다는 자책감 말입니다.

본인도 얼마나 가슴을 졸였을까요?
기대한 점수가 나오지 않아서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대학을 2번 경험하면서 술도 먹고 당구도 치고 미팅도 하면서 자유분방하게
생활해 오면서 잠재적으로 베어 있던 습관을 의지로 견뎠던 시간에 대한
보상이 결국 이건가 하고 얼마나 좌절을 했을까요?
그걸 바라보고 말하지 않아도 미루어 짐작하고 있는 부모의 마음은 또 얼마나
시리고 서러웠을까요? 시험은 시험일 뿐입니다.

가채점 결과를 바꿀수는 없지 않나요?
저 또한 아이를 달래고 수시원서 접수분 중 논술을 가야할 곳을 갈무리 하고
지난주말과 저지난 토욜날에 아이를 등떠밀어 논술을 마쳤고 여러분 처럼
성적표만을 기다리는 같은 입장입니다.
그래도 정말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안아주고 위로를 했습니다.
참으로 이기적이지만 과연 이상황에서 어느 대학교를 갈지 본인의 선택은 무엇
일지? 정시 이후 나온 결과를 아이가 수긍을 할지 등등 답답한것도 사실입니다.

재학생 및 재수(N수) 그리고 독재생님들 고생하셨습니다.

눈물 펑펑 쏟고 자는 여러분의 방을 찾아와 소리없이 바라보면서 무언가 자신이
더 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있었을 부모님의 시리고 아픈 마음을 감히 유추해
봅니다.

그저 존재하기에 가족이기에 서로가 서로를 보듬고 가야하기에 지금의 시련은
찰라의 번민이었음을, 그래도 같이 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현재 나에게 
주어진것에 감사를 해야 겠지요.(영화 "허삼관" 처럼요)

힘들 내세요. 누가 했던 말처럼 오늘이 내인생의 마지막이고, 
현재가 나의 모든것이라는 생각을 떨쳐 내십시요.
고전중에 "초한지"를 읽어 보신분들이라면 이런이야기를 보신적이 있을겁니다.
사람 중에는 "기쁨을 같이 할 수는 있으나 괴로움을 같이 할 수 없는 사람이 있고
어떤이는 괴로움은 같이 할 수는 있으나, 즐거움은 같이 할 수 없는 이가 있다."
라는 말이 부모와 자식간에 생겨서야 되겠습니까?

부모님은 차가운 피가 흐르는 존재가 아닙니다.
부모도 자녀도 모두 따스한 피가 흐르는 생명체이며,
양자 모두 꼬집으면 아프고, 한쪽 입장에서 바라봤을때에 전혀 나와 다른 존재가
아니라 나와 같은 유전자를 가진 소중한 존재라는점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시간이 흘러 먼훗날 다시 돌이켜 보면 아무것도 아닐수도 있었는 부분에 연연했던
것이 아닐까 하고 느끼시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배려해 주세요.
"살아가는 일은 날마다 한 뼘씩 자라는 연습을 하는것"
-"공부"(과거 일간지 한구석에 기재된 글 : 황중환 <2870>)

성철 스님의 스승인 만공선사의 법어문 낭송테잎의 첫소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自)라고 하는 의의는 아무게야? 하고 부르면, 예 하고 대답하는 그것이니라."
라고요.

몇 년전에 한참 유행했던 "아프니까 청춘이다"란 책의 제목 처럼 어릴적 앓았을지도 
모를 홍역을 치르는 중이라 생각하시고, 재수를 하시건 다른길을 선택하건 간에
내가 가고자 하는길이 정녕 내가 가고픈 길인지? 아니면 앞선 누군가의 멋진 뒷모습
에 홀려 목적없이 가는길인지? 차분히 판단해 보시는건 어떨지 감히 말씀 드려 봅니다.
어차피 내인생은 내가 꾸며가는 것이니까요.
여러분은 아직은 하얀 캔버스 입니다. 
계속해서 꿈을 꾸시고 한발한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의지를 가지고 걸어가 보세요.
다시금 모든 분들 엎치락 뒷치락 하는 입시제도 하에서 정말 수고하셨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ps. 학력고사 세대인 제가 몃몃 글을 읽고서, 두서없이 주절주절 쓴글입니다. 어디에 써야
    하느지도 잘 몰라서.... 읽으시면서 너무 깊게 생각하셔서 문맥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에
    대해 오해없으시길..[어제 출처를 밝히지 못했던 부분을 다시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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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띠로리 · 605812 · 15/11/25 00:31 · MS 2015

    아드님 가고싶어하는 학교에 붙길 기원합니다~글 잘 봤어요~

  • asdf212 · 365265 · 15/11/25 00:31 · MS 2011

    아버님 작가이신가요?

  • pR29a48UvnX3bN · 610493 · 15/11/25 00:33 · MS 2015

    연고대도 가실거같은데요?

  • 오이이엉 · 464726 · 15/11/25 00:37 · MS 2017
    회원에 의해 삭제된 댓글입니다.
  • 쿰척쿰척 · 620503 · 15/11/25 00:36 · MS 2015

    자식농사 지으시느라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글을보아하니 아드님도 훌륭할것같네요 성적도 훌륭하구용^^

  • 행복을향하는삶 · 409028 · 15/11/25 00:39 · MS 2012

    부모님의 마음을 자식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버님께서도 정말 수고하셨습니다..감사합니다. 수고했다는 말을 웃어른께 하는것은 옳지않지만, 달리 표현하는 올바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드님께서도 꼭 원하시는 바 성취하고 행복한 가정, 더욱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셨으면 좋겠습니다.

  • 슈퍼짱짱판타스틱보이123 · 518951 · 15/11/25 00:40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험생의 고통도 크지만 부모님들도 정말 고생많이 하시죠.

  • 까망깨구리 · 481372 · 15/11/25 00:59 · MS 2013

    2013년 가입해서 퇴근하면 오르비에서 이런저런 글을 가끔 봤고요. 지금은 제코가 석자라 ㅋ. 전문가가 아니기에 여러분들의 다양한 글을 눈팅 하곤 해요. 대기업도 "경력직 인턴"만을 뽑아 극심한 취업난에 처하신 청년분들을 보면서 남일 같지 않았고요. 오르비에 아직 미완인 자신의 진로에 고민하시는분들과, 현재 가족사이에 사소한 감정 줄다리기가 있는 몃분의 글을 보고 글을 올려 보았습니다.
    "내일도 해가 뜬다"는 노랫말처럼, 모두 깊은 시름에서 좀 벗어나 보았으면 하는 작은 바램 뿐입니다.

  • Lincoln · 493547 · 15/11/25 00:59 · MS 2014

    수고하셨습니다

  • 우리1년더한다!! · 503937 · 15/11/25 03:55

    역시.... 연륜이 있으시니까 글이 정말 좋네요.. (살짝 배우신분같기도..) 저는 작성자님같은 아버지가 부럽네요 이렇게 생각이깊고 기댈수있는 의젓한 아버지가 부러워요 제 아버지와는 딴판이시네요.. 부럽습니다 작성자님의 아들이요.. 멋진아버지를두셔서.. 글정말 잘읽었습니다. 여느 오르비에서 활동하는 10대후반 20대 초중반의 어린아이들의 인생진로에대한 자기들도 모르면서 싸우는 글만보다가 (물론 저도 그에속하는 어린아이지만)이렇게 연륜있으신분의 글을보니까 진정으로 마음이안정되네요 글 정말 정갈하게 잘쓰시는것같아요.. 힘이됩니다. 감사해요.. 기운내겠습니다.

  • wqgfq3w · 604283 · 15/11/30 23:07
    회원에 의해 삭제된 댓글입니다.
  • 까망깨구리 · 481372 · 15/11/25 07:55 · MS 2013

    밤새 하얀눈이 살포시 왔네요. 출근길에 다양한 발자국이 보입니다. 난 그저 그 발자국의 진행방향에 하나의 흔적을 덫대며 일터로 향했지만. 내일도 그 발자국을 덮어줄 눈이 와준다면 나자신의 발자국을 남기고픈 설레임에 수험생분들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시는건 엍떨런지요.

  • 아라타하 · 553996 · 15/11/25 10:54 · MS 2015

    또한번성장하게된걸 감사드립니다.

  • 하루하루감사하기 · 502479 · 15/11/25 13:22 · MS 2014

    진짜멋있다 참어른!

  • 태정태세이문세 · 620855 · 15/11/25 13:37 · MS 2015

    엄마의 일기장을 몰래 본 듯한 기분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미황 · 449214 · 15/11/25 14:12 · MS 2013

    뭉클합니다. 이런 글이 많이 필요하지요. 메마른 사람에게도 촉촉히 젖어드네요. 고맙습니다.

  • 민콩 · 593126 · 15/11/25 16:56 · MS 2015

    에고.. 근데 글이 너무 길어요..ㅜㅜ

  • 규미르 · 519664 · 15/11/25 18:06 · MS 2014

    아버지가 오르비에 글을쓰시다니 ㅜㅜ

  • 비교하지않기 · 593918 · 15/11/25 19:45 · MS 2015

    결국 사반수를 하신건가요? 제가아드님의 상황과 비슷한것같아 댓글남깁니다.재수하여 나름상위권공대들어가서 1학점넣고 요번에 공부하였지만 다시돌아갈점수나왔습니다. 의대가정말가고싶은데 군대와 시험한방이 너무나도무섭네요..

  • 구라돌이 · 593235 · 15/11/25 20:19 · MS 2015

    마이웨이 합시다!

  • 제주딱지맨 · 543212 · 15/11/27 02:16 · MS 2014

    저도 반수생의 아비입니다.
    나의 고려없이 드러낸
    일희일비가 아이에게 무겁게 느껴졌을 걸 생각하니 살짝 부끄러워 집니다.

    사람의 욕심이란 한이 없나봐요
    아이 아주 어릴 적엔 정상인으로 자라주기만 하면 더 바라지 말자고 다짐했었는데

    의사라니요?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내 아이 꼬옥 안아줘야겠어요, 병원에서 처음 안아봤을 때, 그 마음 잊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 뿌요를개로피자 · 457061 · 15/11/29 08:22 · MS 2013

    배우신 분 존경합니다 아드님도 아버지를 멋진 아버님을 존경할거같네요!

  • 사회과학의 요람 · 471167 · 15/12/14 05:45 · MS 2013

    눈시울이 찡해졌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