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서독 [383625] · MS 2011 · 쪽지

2015-03-05 16:08:19
조회수 19,113

혼밥이 두려운 독재생을 위한 혼밥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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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편의점은 의외로 난이도가 높다.


흔히 '혼밥'하면 컵라면에 삼각김밥을 떠올리기 쉽지만,

막상 편의점에서 뭔가를 먹는다는 건 의외로 난이도가 높다.

편의점이 규모가 커서 내부에 따로 식탁과 의자를 두는 경우가 이나라면,

대부분의 경우 편의점 한쪽의 테이블에 서서 밥을 먹어야 하는데,

일단 두세 사람 정도만 서 있어도 장소가 협소하다 보니,

사람이 몰릴 시간에 가면 거기 서서 먹는 것도 힘들거니와,

그렇다고 사람이 없는 시간에 가자니,

가게 내부엔 나 그리고 알바생 단 둘 뿐... -_-;;

괜히 뒤통수가 따끔거린다.

그러다 괜히 누가 들어오는 문 여는 소리라도 들리면,

괜히 놀라 움찔하게 되고,

정작 손님이고 알바생이고 나에겐 아무 관심도 없는데,

'혼자 여기서 컵라면 후루룩 거린다고 찌질하게 보면 어쩌지?'하는 생각에,

면발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지경.


본인이 '상속자들'에 나오는 이영도(김우빈)처럼 낯짝이 두꺼워서,

편의점에서 라면 먹다가도 차은상(박신혜)을 꼬실 수 있는 정도면 모를까,

혼자 먹는 게 익숙하지 않은 혼밥 초보자들에겐 딱히 추천하고 싶지 않다.



2. 패스트푸드점은 피크타임을 피해서 가라.

혼밥러들이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고, 또 난이도도 수학 2점 수준인 곳이 바로,

맥도날드, 롯데리아, 버거킹 등의 패스트푸드점이다.

그러나 이런 패스트푸드점들이 갑자기 수학 B형 30번으로 변하는 순간이 있으니,

바로 점심시간 피크타임대다.

12시에서 1시.

조금 타이트하게 잡자면 12시에서 12시 30분이 피크타임인데,

이 시간에는 사람이 너무 많다.


사람이 너무 많은 게 뭐가 문제냐면,

패스트푸드점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 중엔 2인 이상으로 무리를 뭉쳐 온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비단 패스트푸드점뿐인가. 어느 음식점이건 2인 이상이 많다)

이런 경우 해봤으니 알겠지만 한 사람은 줄을 서고, 다른 한 사람은 매장을 스캐닝한 후 자리를 맡는,

역할 분담으로 재빠르게 행동한다.


그러나 나는 비루한 혼밥러. 역할 분담이란 말은 내 사전에 없다.

이런 경우 피크타임대에 가면 어떤 시츄에이션이 발생하느냐.

오래 줄을 서서 겨우 주문하고 식판에 햄버거 세트를 받아들고 돌아섰는데,

자리가 없다. -_-;;

그렇게 엄마 잃어버린 미아처럼 한참을 빈자리 찾아 음식 들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할 수가 있단 말이다.

초보 혼밥러에겐 이것마저 부끄럽고 창피하다.

햄버거는 식어 가고, 감자튀김은 눅눅해지고, 콜라의 얼음은 녹아간다.


어차피 독재생이라면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피크타임은 피해서 가기로 하자. 그래도 런치 가격으로 먹을 수 있다.



3. 도서관, 독서실 근처 공터를 활용하자.

주위를 둘러보면, 이 시멘트 건물 덩어리밖에 없을 것 같은 도심 속에서도,

으근히 나무와 풀로 꾸며진 공터, 공원들이 눈에 띈다.

도서관이나 독서실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이런 곳들을 눈여겨 봤다가,

점심시간에 활용하자.


한솥도시락에서 치킨마요 하나 사들고,

벤치에 앉아 밥을 먹어보자.

누구 눈치볼 필요도 없어 밥도 천천히 꼭꼭 씹어 삼킬 수 있고,

은은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실린 꽃 향기, 풀 내음에,

머리가 맑하지고 기분이 상쾌해지는 효과가 있다.


단, 이 경우 맞은 편 벤치에서 커플들이 앉아 염장질을 할 가능성이 높으니 조심하자.

단2, 오늘같은 날씨에 상쾌히지려고 나가 먹었다간 얼어죽기 딱 좋다.



4. 구내식당이 있는 도서관을 이용하자.

독서실 이용자에겐 해당사항 없음이지만,

도서관 중에 규모가 제법 큰 곳들은 다 내부에 구내식당이 입점해 있다.

이런 곳들의 특징은 똑같은 메뉴라도 일반 식당보다 값이 싸고, 양이 넉넉하며, 맛도 빠지지 않는다는 거다.

중학생이던 90년대, 종로구에 있는 정독도서관에 자주 다녔는데,

그 때 그곳에서 팔던 우동 맛이 아주 기가 막히게 좋았다. 당시 1500원이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나중엔 공부하러 간 게 아니라 우동 먹으러 갔을 정도로.
(몇 년 후에 구내식당 운영을 외부업체에 넘겨버리면서 1500원짜리 우동은 사라졌다. ㅠㅠ)


이런 도서관 구내식당의 가장 큰 장점은 뭐니뭐니 해도,

혼밥러 천국이라는 거다.

앞뒤좌우 어디를 둘러봐도 2인 이상보단 혼밥러가 월등히 많다.

남 눈치볼 필요도 없이 정말 편하게, 동질감 맘껏 느끼며 맛있게 밥 먹을 수 있다.



5.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는다는 거다.

어떻게 보면 좀 슬픈 말일 수도 있지만,

세상 사람 그 어느 누구 하나,

나를 신경쓰지 않는다.

자기 밥 먹고 다시 회사로, 혹은 학교로 돌아가기도 바쁘다.

식당에서 누가 혼자 쭈볏거리며 들어온다고 한들,

"저거저거 찌질하게 혼자 밥 처묵으러 왔군?"하지 않는다.

쳐다보지도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0.1 초 정도 흘깃 보고 다시 자기 앞에 놓인 반찬 그릇에 눈 돌리는 게 일반적이다.


식당 종업원의 "몇 분이세요?"가 처음엔 무지 신경쓰일 거다.

"하나요..."라고 말하기 정말 어렵다.

근데 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로 혼자 오든 둘이 오든 아무 신경도 안 쓴다.

주문 듣고 음식 날라 테이블 위에 세팅해놓고 가면 끝인 사람들이다.

점심시간에? 더 바빠서 그런 생각같은 거 할 여유도 없다. 아마 내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하나요..."만 듣고 기계적으로 일할 거다(유경험자의 경험담이다). 점심시간대 식당은 정말 바쁘게 돌아간다.

남이 날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세상 사람들이 생판 모르는 나한테 관심을 둘 만큼 한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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