岳畵殺 [72210] · MS 2004 · 쪽지

2014-11-20 12:02:58
조회수 9,463

병원 TO 감축 얘기가 나왔길래 좀 끄젹여 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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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관련 글도 써보고 쪽지도 많이 받아보는데

제가 항상 강조하는 얘기 중 하나는 병원 TO입니다.


여기 있는 분들 뿐 아니라 대부분의 의사들은 전공의 과정을 밟게 되어 있고

거기서 딴 전공 과정을 의사 생활 평생 밟게 되기 때문입니다.

(몇몇 과는 나와서 전공을 살리기 어렵긴 한데 그래서 비인기과가 되는 겁니다.)

~과 의사로 불리는 경우가 많지 

~대학 출신 의사, ~ 병원 출신 의사는 부차적인 호칭일 뿐입니다.




흔히 하는 얘기 중 하나가 아무 지방의대 나와도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에서 트레이닝 받기 쉽다

이게 예전엔 맞는 말이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엔 수도권 대학병원들이 미친듯이 병원을 키우고 짓고하면서

전공의 TO가 엄청 늘어났습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전공의 TO > 의대 졸업자 수인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의대 졸업자 수는 90년대 후반 마지막 의대가 생긴 뒤로 소소한 변화가 있었으나

큰 증감이 없는 반면 수도권 병원 전공의 TO는 급증한 결과는 뻔한 겁니다.



(서울대만 하더라도 예전엔 졸업자 수가 훨씬 많아서 아산, 삼성병원에 많이 나갔지만

분당서울대 병원이 생기면서 졸업자수보다 인턴 정원이 더 많아졌죠.

가장 극적인 것은 가톨릭의료원인데 인턴 많을 땐 300명을 뽑았고

모교 졸업자로는 반도 못 채우는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졸업자 수 자체가 적은 아산 / 삼성 병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 병원 중 가장 많은 인턴/레지던트를 흡수하는 곳이 소위 Big5

서울대/연세대/아산/삼성/가톨릭병원인데

제가 인턴/레지던트할 때 전후로는 5군데 중 한군데는 돌아가면서 빵꾸가 날 정도였으니

지방의대에서 서울쪽 병원으로 입성하기가 그리 어렵진 않았습니다.

(많이 뽑을 땐 5군데가 다 합쳐 900명 정도 뽑았으니 

의대 졸업생의 30% 가까이를 흡수했습니다.

자교생은 500명 정도 졸업한다고 치면 타교생을 400명 가까이 흡수할 수 있었죠.)


그리고 인턴만 하고 레지던트 때 우수수 잘리면 누가 그 병원 가겠나요?

(특히 남자면 군대까지 끌려가야 하는데...)

그래서 특히 자교 출신 비율이 반도 못 채우는 아산/삼성/가톨릭병원은

몇몇 과를 제외하고는 타교 의대 출신도 시험 경쟁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가톨릭은 기회의 땅이라고 불릴 정도로 타교생도 인기과 진입이 가능해서

가대 출신들이 모교 보호 잘 안 해준다고 말이 나왔던 적도 있습니다.

아산 삼성의 경우에도 내과 자체가 워낙 많은 인원을 뽑고 

내과 인기가 좋았기 때문에 타교 출신들에게 인기 많았습니다.

(반면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서울대, 연세대는 선호도가 다소 떨어졌으나

이 두군데도 점차 타교에게 오픈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례로 예전엔 서울대 의대 출신이 서울대병원 인턴 떨어지는 일이 거의 없었으나

제가 졸업하기 전후로 최하위권 학생들은 인턴 떨어지는 일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인턴/레지던트를 채울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문제는 그 결과 지방의대는 인재 유출로 자교 TO도 채우기 어려워졌습니다.

최상위권 학생들 중 일부는 인기과 TO를 노리고 남기도 하지만

대부분 중위권에서 상위권 학생들은 서울 쪽 병원으로 날라갔습니다.

중하위권 학생들도 성심, 백, 순천향급 병원 TO가 흡수해줬고요.

전공의 TO가 넘쳐나니 인기과로만 몰리고 비인기과는 만년 인력난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칼을 빼들었죠.

http://thinknow.tistory.com/486

제가 레지던트 할 때 부터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번 1년차부터 TO를 줄이기 시작했고 4년 간 거쳐서 

인턴, 전공의 TO를 대략 20% 정도 줄이게 되었습니다.


Big5만 해도 대략 200명 정도의 정원이 감축될 것이고, 

중하위권 의대생들을 흡수해주던 성심, 백, 순천향급 병원도 100명 정도 줄 겁니다.

더군다나 지금까지는 졸업생: 인턴/전공의 TO가 1:1로 맞아오던

한양대나 경희대 같은 인서울 의대 출신들도 더 많이 외부로 나올 수 밖에 없게 되며

이들이 지방병원으로 내려가진 않을테니

수요 (인턴/전공의 정원)는 감소하는데 

공급 (지방의대 정원은 그대로고 새로 나오는 수도권 의대생)이 증가하는 상황이 벌어질테니

지금보다 지방의대생이 수도권 병원 들어가기란 어려워질 게 뻔한 겁니다.


만약 수도권 입성이 불가능하다면 모교 병원에라도 남아야 하는데

모교 병원 TO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면

지금까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더라도 

지금 신입생들이 들어올 때 쯤엔 큰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이 점 꼭 명심하도록 하시길 바랍니다.

대부분의 지방대 의대들도 큰 특징이 없긴 해도

자교 졸업생을 다 수용할 수 있는 곳이 있는 반면

반도 수용하기 힘든 곳도 있습니다.

지금까진 워낙 서울권 병원이 블랙홀처럼 빨아들여서 

삼룡의처럼 특출나게 TO가 많지 않은 이상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전공의 감축이 끝나면 지방대 의대 끼리도 차별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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