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아이드잭 [521447] · MS 2014 · 쪽지

2014-09-06 18:2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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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평가원이 끝나고 좌절하고 있는 그대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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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평가원을 치고 좌절하는 학생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그런 여러분들에게 조그만 도움이라도 될까 싶어서 제가 제자들에게
썼던 글을 하나 올려드리겠습니다.
제자들의 훈계를 위해 썼던 글이라 경어체로 썼고,
문체가 다소 공격적일 수 있으니 이 점 양해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건승을 바랍니다.


L’Existentialisme est un humanisme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이런 얘기가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학생들과 얘기해보면 학생들이 수능에서 어느 정도의 성적이 나올지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이 포함될 지도 모르는 그 학생들은 자신의 한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목표대학이라든지 꿈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활의 태도를 말하는 겁니다. 다들 입으로는 서울대, 의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어떻습니까. 진짜로 그렇게 믿고 공부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요행을 바라며 공부하고 있는 걸까요.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마십시오. 다들 자신을 어느 정도까지라고 한계를 설정한 후 그에 맞추어 살고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공부를 하라고 하면 그걸 어떻게 하느냐의 질문부터 돌아옵니다.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늦게 공부를 시작했으니까, 제대로 공부를 안 해봤으니까, 원래 공부를 못했으니까 등의 변명을 하며 그 뒤로 숨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공부를 한 후에는 이정도하면 되겠지 라고 생각하며 안일하게 남은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태어날 때부터 2등급, 3등급 혹은 그 이하의 등급이었습니까. 그렇다면 공부를 할 필요가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정해져있다면 노력할 필요도 없고, 무언가를 위해 살아갈 필요도 없는 거겠죠. 장 폴 샤르트르의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라는 명제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이 명제가 오늘 내가 얘기하려는 주제입니다. 실존이라 함은 실체로서의 현재의 유형의 본체 또는 형상을 뜻하는데, 간단히 실제 존재라고 알면 됩니다. 본질은 개체의 핵심적인 무형의 어떤 것이라고 알면 될 겁니다. 실존이 먼저입니까. 본질이 먼저입니까. 대부분은 본질이 선행합니다. 책상은 보통 다리가 네 개이고, 사람이 그 위에 앉을 수 있어야한다는 본질을 가집니다. 그 후에 목재라든가 알루미늄 또는 그 밖의 재료로써 만들어 진 후에 현실세계에 실제 존재하게 됩니다. 다른 개체들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처음부터 2등급, 3등급 또는 그 이하의 등급으로 정해진 후에 여러분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겁니까. 아니라고 대답할 겁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어떠한 본질도 가지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실존한 후에 살아가면서 자신의 본질을 채워나가는 존재입니다. 오직 인간만이 실존이 본질에 선행합니다. 자신이 노력하는 바에 따라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을 이루며 자신의 본질적인 부분을 채워나갈 수 있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마치 자신의 한계가 존재하는 듯 자신을 규정한 후에 그 안에서 살아가려 합니다. 여러분은 도축장에서 등급판정을 받고 나오는 고기가 아닙니다. 주체성을 가지십시오. 자신을 한계를 설정하지 말고 각종 제약들을 뛰어넘으려고 노력하십시오.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정도 하면 되겠지. 나는 그건 못 할 거야. 이런 식의 변명들이 자신을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십시오. 왜 당신은 못합니까. 그렇게 태어났습니까. 나는 옛날부터 머리가 안 좋아서 공부를 못한다는 말을 제일 싫어합니다. 안 좋으면 남들보다 더 노력해서 극복하면 안 되는 걸까요. 그리고 머리가 좋다 안 좋다 의 개념도 지금까지의 공부해온 양과 비례하는 것 아닙니까. 지금까지 노력을 안했으니 그 정도는 극복하고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시오. 항상 패배자들이 좋아하는 말이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 많다라는 것입니다. 내 말이 자신의 한계를 도외시하고 높은 꿈만을 꾸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실존적 사유는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단순히 한계가 없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허황된 꿈을 꾸는 것은 실존주의가 아닙니다. 자신을 제약하는 것 또는 자신이 설정한 한계는 자신이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고 인식한 후에 그것을 깨부수는 단계에 이르는 것이 실존주의입니다. 행동만이 주체성을 담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존주의는 삶 전체를 통과하는 철학적 명제입니다. 그러므로 이는 단순히 눈앞의 수능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며 겪는 각종 제약들, 또는 억압들에 순순히 순응하고 소시민적 삶을 사느냐 아니면 당당히 그에 맞서 싸우느냐의 문제까지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억압들에 고개를 숙이고 그에 순응하며 영혼 없는 삶을 사느냐 아니면 자신의 영혼의 주체성으로써 그에 대응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주체성이 결여된 삶은 인류의 역사에의 역행이며 자기 자신에 대한 배신입니다. 실존주의는 이러한 점에서 휴머니즘이며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배신하지 마십시오. 모두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꿈을 향해 달리십시오. 나는 알맹이가 없는 글을 싫어합니다. 여러분에게 단순히 머리식히기용이나 가십거리제공용으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제는 명확합니다. 오직 인간만이 실존이 본질에 선행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이 원하는 주체적인 본질을 채워나가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내가 어렸을 때, 가끔 가던 절의 우물에 이러한 글귀가 있었습니다. ‘독사는 이 물을 먹고 독을 만들지만, 젖소는 이 물을 먹고 우유를 만든다.’ 여러분의 앞에는 내 글이 있고,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온전히 여러분의 몫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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