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거의 두달남은 시점에서 쓰는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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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그간 고1, 고2, 그리고 현재 고3을 통틀어서
딱히 잘한게 없는거 같다.
고1 때 나보다 잘나가는 남들에 대하여, 특히 인문계생들한테 열등감을 가져서 많이 위축되고, 공고에서 혼자 공부하는 나의 모습에 대해서 비참함을 느꼈고
고2 때 쓸데없는 겉멋에 들어 그저 인강만 듣고 아는척을 해대다가
고3 지금에 이르러 그 겉멋과 열등감에 대한 댓가..로 고1 6월에 처음봤던 6/9/9/7/8/4 등급에서 단지 고3 6월 평가원 6/9/6/7/8 (언/수/외/물1/화2) 밖에 오르지 못했다.
아니 오르기는 커녕 도찐개찐이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한 짓을 보면 나는 이 점수를 인정해야 내 자신에게 떳떳한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공부를 한답시고, 그 공업고등학교에서 내 스스로가 수능을 준비하면서 애초에 목표했던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기정보공학부(구 전기&컴퓨터공학부), 지역균형선발전형 합격.' 과 '수능 언수외물1화2 11111 (전국 최상위권 들기)' 를 목표로 했다면 최소한 나는 내가 뭘 해야하고 내 위치가 어느정도인지.
학교에서 모의고사를 보지 않으니까 한달에 최소 한두번, 교육청 모의고사로 계속 나 자신의 공부 '정도' 를 측정해야했으며
부족한 국어 실력과 영어 어휘력을 보충하기 위해 책을 읽고, 문학을 틈틈히 봐둬야 하고, 학교 영어쌤의 조언을 받아들이고 어휘량을 늘려야했는데
나는 내 조급한 맘에 아무것도 못했다. 하다못해 공대에서 밥줄 과목인 수학만큼은 내가 열심히 공부했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합격하지 못했다.
애초에 저 목표는 단지 목표일뿐이라고, 스스로가 주위의 비난과 못할 거라는 자기자신에 대한 믿음의 결여가, 또 그렇게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열등감이
지금의 찌질한 내 모습을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잘된 것이다.
내가 이러고도 정신을 차리지 않았다면, 저 목표로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이과생들에게 치욕을 안겨주고, 그야말로 내 자신의 얼굴에 x칠을 하는것밖에 되질 않으니까.
그저 절실하지 않았고,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도 몰랐고, 치열하기보단 계속 나 자신에게 지기만 했는데다, '공고' 라는 학교가 내게 주는 주위의 시선에만 신경쓰기에 바뻤다.
결국 나는 그토록, 수기에서 봤던 주인공들이 바라지 않고, 그 피하고자 했던, 그들이 생각한 최악의 결과들을 다 내가 직접 몸으로 그랜드슬럼을 달성 중이다.
이제껏 나는 살면서, 단 한번도 치열한 적이 없었고, 무언가를 열심히 하긴 커녕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물이었다.
내가 도움을 요청해서, 수만휘에서 만난 멘토 세 분을 아주 보기좋게 스스로 제발로 떠나보낼 정도로 그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고
고1 때 스펙 쌓을 겸 평소에 배우고 싶었던 조대 언어교육원에서 스페인어를 배웠지만 사랑니 발치와 자주 않는 치통 때문에 처음 한 주간 잘 나오다가 그 뒤로 삼 주 동안 못나왔고
고2 여름방학 때 우리 학교 직속 선배님의 직장에서 일을 배웠지만 나는 그 4주 동안 일을 열심히 하긴 커녕 늘 지적만 받았다.
그 뿐만이 아니라 남들이 부러워했던 고1 겨울방학 때 미국으로 여행갔었던 일.. 그 역시 마찬가지였고 난 거기서 또 조급함에 빠져서 아무 것도 못했다.
고2 때 기흉에 두 번 씩이나 걸려 병원에 있을때 인턴 형들에게 의대와 의사에 관해 좀더 내가 궁금하고 치열했다면.. 아니 그냥 공부하겠답시고 책만 쌓아놓고 있었던게 아니었던건지..
이제 고1 고2 때 안올 것만 같았던 수능이, 내게 가깝지만 멀게만 느껴졌던 수능이,
실상 날 공고로 보내고, 중학교 시절에 공부를 못하고 안해서 지겹도록 디스만 당하고 까였던 모든 원흉인 수능이
이제 69일 남았고, 계속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던 덕에 수학에선 게임으로 이를 비유할 수 있을거 같다면 잡몹, 중간보스, 보스로 세 가지로 구분해서 뭘 쉽게 잡고 어떤걸 공들여 잡아야할지 늦게나마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화2에선 평형이 이제 드디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 그렇게 난 영어 못해라고 외쳤던 영어 문장들이, 그 어떤 문장을 보든 내가 아는대로 해석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을 완벽히나마 이해의 수준에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비문학 역시 괴로운 경제, 기술 지문만 빼면, 문학 역시 어려웠던 것들이 조금씩 윤곽이 잡혀가기 시작했다.
이것이 잘된 걸까 혹은 못된 것일까.
나는 늦은건가?
잘 모르겠다.
제목의 핵심 키워드가 회고록인데.
마무리를 지어보면, 이제까지 보면 그다악인거 같다. 아직 많이 부족하고 내가 세운 목표치에 비하면 난 한없이 부족한 놈이다.
난 맘을 놓고 긴장을 풀고, 내가 정해놓은 계획에서 벗어나면 한없이 망가지고 나태해지는 놈이다.
한심하고 더럽고 속은 찌질하고 겉멋만 든 빛 좋은 개살구같은 인간.
그림으로 심리치료를 하시는 베테랑 심리치료사이자 내 친구의 어머님 즈음 되시는 분에게 들었듯이
나는 겉모습은 화려하고, 벗겨보면 그저 아무것도 아닌 놈이다.
그러나 나는 수능날이 오기까지 남은 69일, 이런거 따지지 않고 계속 열심히 해보고 싶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나같은 인간이 사회에 나가면 아무짝이도 쓸모없는 놈이 될거고
그렇게 동경하던 대상들, 자기 자신을 극복한 사람들에게 나는 뵐 낮이 없어질 거고
날 믿고 따라준 모든 이들에게 배신감을 던져줄지도 모른다.
나는 최선을 다하고 싶다.
내가 인제까지 했던 짓만 해도, 내가 당한 것만 생각하면, 내가 말로만 실천하겠다고 한것들에 비해, 나는 해야할게 많다.
그러니까 이 수능이란 놈을 끝까지 잡아야한다.
화2 종강에서 김철준 선생님이 그 현장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에게 해주셨던 말씀이 생각나신다.
'단지 원하는게 아니라, 반드시 이뤄야 될 일이라면..
끝까지 최선을 다해라.'
나는, 단지 서울대 아니 그 이상의 어떤 가치를 그냥 추구하고 이루고 싶은게 아니라, 반드시 그 이상의 가치를 이루고 내가 노래했던 서울 상경을 이루고, 내 자신을 바꾸고 싶고,
그러기 위해선 거듭 반복하듯이, 최선을 다해야한다.
관리자 추천에 올랐던 믿음에 관한 나의 글, 또 이제껏 수많은 선생님들이 미디어 매체나 글을 통해서 나에게 전해주셨던 공부에 관한 올바른 믿음을
꼭 이번 수능에서 증명해내고 말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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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인지라, 독백체, 경어체로 했습니다.
회고록치곤 좀 기네요 ㄱ -..
느낀게 많은지라... 이해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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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이 아니에요 ㅎㅎ 저는 결심하고 돌아서고 결심하고 돌아서고 그러면서 살았는데요 뭐
돌아서게 되는 순간 또 결심을 해서 다시 돌려놓는 식으로 하다 보면 공부에 타성이란 게 생긴달까요?
잘 모르겠지만 일단 해야 된다, 하던 거는 끝내야지 그런 거요
타성이 생기게 되면 나름대로 탄력이 붙어요
수능이라는 마물을 잡아먹는 그날까지 힘내세요
꺾일지언정 부러지지않을려고요. 님도 힘내세요 ㅋ
이건 여담이지만, 혹시 물어볼 게 있으시면 쪽지주세요 ㅋ
대학생이긴 하니까요
넵 감사합니다 선배님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