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수성터지는남자 [584465] · MS 2015 · 쪽지

2016-07-17 2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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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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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촌구석에서 태어나서

7살때까지 한 일은 숲 속에서 뛰어놀고

겨울에 눈오면 치우는 일상의 반복이었지

옆 짚에는 중국 애

옆옆 집에는 방글라데시 애가 살았고

말은 안통했어도 그 때 난 자연스럽게 배웠던 것 같애.

다른 문화권 사람들과 친해지는 법을.

8살 때 한국에 와서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

솔직히 적응하기 어려웠었지.

난 7살 때 한글을 땠고 공부는 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받아쓰기 반타작 한 번을 못했었네. 그리고 기억나지

엄마의 굳어진 얼굴.

3번의 전학, 많이 외로웠던 걸로 기억해.

낙천적인 나였지만 그래도 친구들과 헤어진다는 사실이 슬퍼서

전학 전날 이불 속에서 울곤 했었지

공부는 여전히 관심 밖이었고 처음 빠졌던 그림그리기.

만화 그려서 친구들 보여주고 종이 게임으로 돈 버는게 낙이였지

친구들이 참 많았었어. 걔네들은 내 만화를 보고 즐거워해 주었고

운동을 싫어하던 나를 항상 불러내 축구 시합에 끼워주었지.

나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항상 사람들이 다가워졌기에

나름 잘났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어.

그런데 5학년 때 전학간 학교는

더이상 재능이 아니라 또래보다 키가 큰

남자애들이 지배하는 곳이었어.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고,

하지만 나는 관심을 갈구했기에 그들처럼 행동했지.

짜증난단 이유로 남자애들한테 구타당했던 여자애가 기억이 나.

지금 생각해보면 걔는 별로 잘못한 것 없었는데.

6학년 때 내가 괴롭혔던 여자애가 우리집까지 찾아왔던 것이 기억이 나

화를 낼 줄 알았는데 뜬금없는 고백에 '미친거 아냐?'

라며 문을 닫았을 때,

인터폰 밖에서 숨죽여 울고 있던 그 애가 기억이 나?


왜 세상이 싫었을까?

줄곧 서울에서 지내다가 전학 간 부산의 남자 중학교

첫 날부터 서열싸움을 해대는 애들을 보며 처음 들었던 '생존본능'.

그들처럼 행동해봤자 그들처럼 될 수 없단 걸 알았기에

난 입을 닫고, 눈을 감고, 엎드려있었지. 학교가 끝날때까지.

건즈앤 로지스는 내 첫 번 째 우상이었고

슬래쉬 같은 기타리스트가 되고자 곱슬머리를 길게 길렀지.

학교에서 자고, 학교 끝나고 기타 배우러 가는 일상.

그러다가 우연히 뒤에 앉은 애가 음악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급히 만들게 된 4인조 밴드.

나 포함 두명은 2반, 한 명은 5반, 또 한명은 3반.

반은 다 달랐는데 우린 쉬는시간이랑 점심시간마다 붙어다녔고

음악실을 무단으로 쓰다가 걸리기도 했고,

공부 잘하는 애 따라서 들어간 독서토론 동아리는 짤렸지.

그 2년, 2년 동안 정말 나는 열정적이었는데

왜 마지막 야외 공연이 끝나고, 그 열정들이 다 사라졌을까?

한 놈은 예고로, 한 놈은 실업계로, 한 놈은 옆 동네 공학으로, 나는 규율 빡센 남고로 배정됬을 때

왜 아쉬움이 하나도 없었을까?


난 그냥 현실이 싫어서 음악으로 도피했을 뿐이었다.


고1이 되고 곁엔 여전히 남자애들 뿐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명문이어서 공부도 다 열심히 하는 분위기였고

싸움질 하고 그런것도 없어서

나도 이참에 열심히 공부나 해야겠다, 라고 생각했었지.

첫 모의고사 반 1등을 하고,

중간고사 3등을 했을 때, 처음으로 성취감이란걸 맛보았지.

나도 하면 되는구나, 나 꽤 괜찮은 놈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

그리고 진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은

음악... 이었고 기말고사 2등을 한 댓가로 등록한 실용음악학원.

빌 에반스 같은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열심히 음악을 파고들었지.

하지만 중학교때처럼 친구들과 멀어진 건 아니야,

모두들 나를 응원해주었고, 중학교때 처럼 내 곱슬머리를 움켜잡던 선생들도 없었어.

인문계지만 예체능 하는 나를 인정해주는 분위기였고,

나도 그들과 멀어지지 않고자 공부도 놓지 않고

댄스 팀을 만들어서 학교 축제도 나가고 했었지.

또 학원에서 만난 한 살 위 누나와 사랑을 하게 됬고,

매일 매일이 즐거웠고 행복했었지.


하지만 왜 행복은 오래가지 않을까?

이른 아침 등교하다가 당한 교통사고.

오른쪽 손목과 어깨, 팔꿈치가 파열됬고

반 년 이상의 휴식기간이 필요하단 진단을 받았지.

처음에는 충격받긴 했지만, 괜찮았었어.

어차피 쉬다 보면 나을 수 있는 것이었고, 다시 음악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었지.

하지만 증상은 시간이 지나도 호전되는 기미가 안 보였고

담당 의사는 치료 기간을 자꾸만 늘려갔지.

성격이 급격히 의기소침해졌고,

감정 기복이 심해져서 학교 빠지기를 밥먹듯 했지.

자연스럽게 친구들이 떠나갔고,

그나마 다가오는 아이들도 내 썩은 표정을 보고 뒤돌아 갔어.

부모님과의 말다툼이 잦아졌고,

음악 포기하면 어떻겠냐는 부모님 얼굴에 쌍욕을 퍼부어댔지.

교회를 안 다니기 시작했고

혼자 거리를 돌아다니는 시간이 많아졌네.

학교 끝나고 혼자서 대구까지 갔다온 적도 있었지.

처음으로 자살을 생각해봤고,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항생제 때문에 피부만 쓸데없이 좋아진 채


고 3이 됐지.


엎친데 덮친격으로 나는 고 3때 서울로 전학을 갔어.

아버지의 서울 발령 때문이었고 나는 부산에 남겠다고 했지만

반 강제적으로 가게 되었지.

큰 대학병원에서 우울증 상담을 받으러 다니기 시작했고

항생제를 끊고 대신 우울증 약을 먹었지.

그리고 고3 처음 입학했을 때,

내신 안좋은 부산 촌놈을 보며 달갑지 않아하던 담임의 눈빛과

동족을 알아보는 양아치 놈들의 눈빛과

의미심장하게 쳐다보던 여자애들의 눈빛이 생각이 나.

넉살 좋게 다가온 키 큰 놈과 한 패가 되어

이반 저반 헤집고 다니며 소개를 받고

여자 소개를 받고, 4시 땡 학교 마치고 건대 앞 가서 노는 일상.

우울증 치료를 끊고, 팔 치료를 끊고,

자연스럽게 음악을 포기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막' 살기 시작했지.


여름방학.

학기 때 그렇게 같이 놀러다니던 애들은 한명도 날 찾지 않아.

그래 나도 다 필요없다 싶었고

대학이나 가야지 싶은 마음으로 학교에 나갔지.

공부 잘해보이는 애 옆에 가서 걔 하는거 따라 하다가

인강도 좀 듣고, 학원도 좀 다니고 하면서 모의고사 성적 올렸지.

영어는 원래 좀 하는 편이었고, 소설을 많이 읽었어서 그런지 국어도 성적이 괜찮게 나왔지.

근데 수학이 문제였어 ... 고1 정석부터 펴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지.

아마 여름방학 내내 수학만 했던 것 같아..

어쩌어찌 하다보니 간신히 인서울 할 성적대가 나왔고

수능 때는 좀더 대박터져서 홍대에 합격했지.

방학 때 알바좀 하고, 몸 좀 만들어서 들어가서

2 달 내내 술퍼마시고 클럽가고 흥청망청 놀았지.

중간고사 대부분을 백지로 냈을 때 처음으로 후회감을 느껴봤고

자퇴서를 내고 나와버렸지. 나도 그 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엄마한테는 아쉬움이 남아서 1년 더 준비해본다고 둘러대긴 했지만

그냥 학교생활이 의미없어서 나온게 더 크거든.

하고싶은것도 없었고 의욕도 없었고 무엇보다 별로 살고자 하는 욕심자체가 없었어.

여전히 우울증이 있었고, 감정기복이 극에 달해 있었기 때문에 좀 쉬고싶다는 생각이 있었지.

그렇게 한 달을 집에서 놀다가, 엄마가 쫓아내기 전 쯤 설렁설렁 나와서

강남에 재수학원에 등록을 했지.

하지만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하는 공부는 불가능했고,

학원이 타협을 안 해주자 2주일만에 박차고 나왔지..ㅋ

도서관 다니면서 공부를 시작했지만

경찰 준비한답시고 농땡이 부리는 친구 놈 만나서

다시 자퇴한 홍대 앞 가서 노는 헛짓을 하고 다녔지...

수능 3달 전 경각심이 생겼고

두어번 풀어본 국어 기출문제와 개념만 공부한 사탐과

남아있는 수능 완성과 여전히 어려운 수학 21번 30번

등 해야 할게 산더미라는 사실을 안 후에

열심히 공부를 했지... 어찌보면 살기 위해 열심히 한거지..

1년 더했는데 홍대를 다시 갈 순 없는거니까..

수능 1주일 전에 홍대를 자퇴한걸 후회하기 시작했고

수능을 다시 쳤고 결과는

작년과 아주 비슷하게 나왔지 ㅋ


건대에 간신히 갈 성적이 나왔지만

1년 더한 성과가 거의 없는거나 다름 없었으니 나는 집의 구박거리였지...

원래 있었던 대인기피증이 더 심해졌고

알바를 그만두고 집에 틀어박혀 음악이나 들으면서 지냈지.

중학교때나 21살이 되서나 여전히 곁에있는건 음악밖에 없었어.

흑인음악에 빠지기 시작했고

피아노는 더이상 칠 수 없으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춤도 추기 시작했지.

처음 만든 노래를 사클에 올렸고

엘이 게시물을 보고 연락이 닿은 형들과 음악을 시작했지.

길거리 버스킹도 하고 하다가 학교 다니면서도 계속 음악을 했지.

그러다가 막연히 미국을 동경하게 되었고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고


결국 지금은 미국에서 학교 다니지 ㅋ


심리학 전공하고 있어.


나도 나를 알고 싶고

사람들이 어떻게 감정을 느끼는지, 왜 기뻐하는지, 슬퍼하는지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심리학이 딱 맞다는 결정을 내렸고, 결정에 매우 만족하고 있어.

음악도 여전히 계속 하고 있고, 현재 내 곁엔 흑인소울을 가진 진짜 흑인들이 많지.


내 미래는 어떨까? 어떤 일들이 있을까

난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될까

난 미래에 여전히 음악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심리학자가 되어있을까

아니면 평범한 회사원이 되어 있을까 아니면 백수가 되어있을까


난 답을 몰라. 내가 아무리 내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운다 해도

그 때 가서 수정할 수도 있고,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절대 내 인생은 내 맘대로 되지 않아.

근데 그렇다고 해서 내 맘대로 안되는 것도 아니야.

나를 믿고 묵묵히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

그게 정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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