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기 선생 [487716] · MS 2014 · 쪽지

2015-04-04 11:55:48
조회수 820

[김대기 T] 벌써 잊었다면 넌 이미 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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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습관적으로 집 앞을 한 바퀴 산책을 합니다.

어제까지 눈에 띄지 않던 봄꽃들이 피기 시작하더군요.

여러분도 날씨가 따뜻해지고, 봄 꽃이 피고, 사람들이 나른한듯 분주해지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몸이 먼저 아는 '봄'이 온 듯 합니다.


이 시점에 재수를 하고 있는 학생들이 있을 겁니다.

그 중에는 작년 현역시절에 저와 함께 공부했던 학생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학생들 가운데 하나가 어제 저한테 카톡이 하나 왔더군요.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그 학생에게 할 조언을 공개적으로 하려 합니다.


재수는 범죄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권장할 일도 아니지요.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재수를 하고 있는 학생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풍선효과라고 하나요? 수능이 쉬워지면서 재학생 학원들은 수강생이 조금 준 듯한데

재수학원들은 종합반, 단과반, 이제는 독재학원까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특히 독재학원들은 어느 곳을 물어 봐도 대부분의 학원들은 마감을 이미 넘었다고 하니

올해도 예년처럼 재수생들의 열풍이 대단하리라 생각합니다.


이제부터 조금 진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작년 12월 중순, 크리스마스를 즈음해서, 조금 늦은 사람은 1월 정도에 대학 결과 발표가 모두

끝났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대학 결과 발표가 나기 전에 이미 자신의 당락여부를 짐작하지요.

"아! 난 올해는 어렵겠구나 !!!"를 직감하는 순간 여러분은 어떻게 했던가요?

조금은 절망하고, 조금은 미안하고, 또 조금은 스스로에게 분노도 느끼고, 대학입시 제도에 대한

대상없는 비판도 해 보았을 것이고, 대학을 붙은 친구들에 대한 표출할 수 없는 질투와 부러움도

일정 부분 있었을 겁니다.


며칠은 방구석에 박혀서 절망을 해 보았으나 곧 다시 일어 섰을 겁니다.

대학시험 한 번 망쳤다고 인생이 끝나는게 아니고 우리는 또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나아가야할테니까요.

그래서.....

인터넷을 화면에 띄웠습니다.

네이버 초록생 화면에 "재수학원'이라고 입력해 보았습니다.

몇 개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학원들이 검색결과에 올라옵니다.

그리고.... 고민합니다.....

비용도 만만치 않아고 하던데 엄마한테 재수한다고 말하기가 미안합니다.

그래도 대학을 가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아버지는 한 번 쯤 실패는 괜찮으니까 걱정 말고 다시 한 번 도전하라고 말합니다.

아버지의 격려가, 어머니의 위로가 ...... 그저 내게는 미안할 뿐입니다.


조금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재수는 없을까?

독재학원이 조금 더 싸다고 하던데..... 혼자 도서관에 가서 인강이나 들으며 준비할까....

며칠 동안 머리가 복잡합니다.

선생님을 만나 상담해 보고 싶지만 형식적인 위로가 오히려 부담이 될 것 같아 포기합니다.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 해 볼까?

대학에 붙은 친구들은 왠지 연락하기 싫습니다.

대학에 떨어진 친구들은 만나 봐야 서로 아픔만 건드릴 것이 뻔하니까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19년을 사는 동안.... 20살이 되어서 처음으로 알게 됩니다.

세상은 정말 혼자 사는 거구나..... 외로운 곳이 세상이구나....

조금은 정신적으로 성숙해 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 다시 해 보자.... 눈 한 번 질끈 감고 일 년만 죽어보자. 그냥 군대 왔다고 생각하자.

고3 때 공부하던 것 보다 100배는 열심히 공부하겠다.


대략... 이런 마음으로 재수를 시작하게 됩니다.

재종반이건, 독재학원이건, 재수 학원 문을 들어 선 순간

재수학원에 온 자신을 용납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이유없이 끊어 오르는 분노가

우리를 채찍질 합니다.

그렇게 1월부터 지금까지 왔습니다.


이제 이쯤에서 되돌아 봅시다.

처음 재수를 시작했을 때의 자세와 마음이 지금도 같은가요?

제발 그렇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감정은 시간에 따라 퇴색하고 옅어지고 흐려집니다.

처음 시작했을 때의 마음으로 아직 버텨야 할 7개월이 남아 있습니다.


봄이라고 졸리는 것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과제는 원래 조금씩 밀리는 것이라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재수생도 청춘인데 일주일에 한 번 쯤 술도 마시고 당구도 치고 친구도 만날 수 있다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

우리는..... 한 번 실패했고.... 그 실패를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화창한 봄날에 우울한 내용의 글을 올리게 되어 조금은 미안합니다

그러나...

좋은 말만 할 수 없는 것이 선생의 입장임을 이해하기 바랍니다.


인간은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확실한 현재를 희생하는 어리석은 존재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는 불확실하지 않습니다. 오늘 노력한 대가를 단지 내일 받을 뿐이지요.

처음의 마음... 우리가 초심이라고 부르는 것....

다시 찾기 바랍니다.

인생의 실패 한 번 쯤 안해본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다.

다만,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인간과 실패 속에서 또 다른 실패를 낳는 인간이 있을 뿐이겠지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매일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실패하고, 다시 준비하고, 다시 노력하고, 다시

내일을 기약합니다. 그 과정이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참고 내일 웃자라는 상투적인 말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오늘의 피땀이 내일의 결과로 돌아오리라는 믿음을 우리 모두 가지자고

여러분과 제 스스로에게 격려하고 싶습니다.

이땅의 15만 재수생들에게 격려의 말을 전합니다.

11월에 웃으면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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