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준] 글을 읽으며 생각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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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국어는 흐른다, 송영준입니다.
어느날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아 먹다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아 마시는 것과
머리로 생각을 하는 것은 비슷한 것 같다."
자판기에 동전을 넣습니다.
버튼을 누릅니다.
음료가 나오죠.
자판기의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자판기에서 음료를 쉽게 뽑을 수 있죠.
자판기 앞에 섰을 때
중요한 것은
자판기가 아니라 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돈이 없으면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을 수 없으니까요.
저는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아 마시는
이 과정이 국어에서 말하는 '생각'과
참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
사람들이 얘기합니다.
"생각하며 글을 읽어라!"
생각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뭘 어떻게 하는 것이 생각일까요?
생각을 머릿속의 작용이라고 본다면
우리의 머리는 앞서 말한 자판기에 해당합니다.
우리가 자판기의 내부를 모르는 것처럼
나는 내 머릿속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속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잘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할 때
그것은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는 것과 비슷합니다.
자판기 구조를 몰라도 음료를 뽑을 수 있듯
머릿속 구조를 몰라도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자판기에서 중요한 것은 돈입니다.
돈이 없으면 수상한 짓을 하지 않는 한
음료를 뽑을 수 있는 방법이 없죠.
머리도 똑같아요.
머리에서 중요한 것도 바로 자판기에 넣을 돈
즉 생각의 재료입니다.
재료가 없으면 생각을 할 수 없고
더 나아가 어떤 재료를 넣느냐에 생각이 달라집니다.
자판기에 넣는 돈의 양에 따라
뽑을 수 있는 음료가 달라지는 것처럼요.
........................................................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생각하라."가 아닌
"내가 생각할 수 있게 하라."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생각의 재료를 주고 생각하라고 말해야 합니다.
........................................................
* 생각의 재료는 무엇일까요?
그러면 이제 이런 의문이 듭니다.
"생각의 재료가 무엇인가?"
넣는 돈의 양에 따라 나오는 음료가 달라지듯
재료도 어떤 것인지에 따라 나오는 생각이 달라집니다.
오늘은 글 읽기에 초점을 두고
그 재료를 살펴보겠습니다.
........................................................
<2018학년도 6월 모의평가>
마지막으로 발명 단게에서는 자전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것의 해결 방안을 생각한다. 즉 자전거가 아닌, 자동으로 공기가 채워지는 튜브를 참고해 물에 뜨는 자전거라는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개선 방안을 생각할 때는 기존의 다른 발명품을 참고할 수 있다.
세 문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글입니다.
글을 읽으며 생각을 해 보세요.
조금 힌트를 줄게요.
독해는 연결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거예요.
생각하며 글을 읽는다는 것은
내용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찾는다는 뜻이 됩니다.
여기서의 생각은 연결입니다.
연결이 잘 이루어지나요? 생각하는 느낌이 드나요?
윗글은 연결되지 않습니다. 생각할 수 없습니다.
잘못된 글이기 때문입니다.
........................................................
윗글은 세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한 문장씩 읽어 내려가며 내용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한 문장씩 번호를 붙일게요.
① 마지막으로 발명 단게에서는 자전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것의 해결 방안을 생각한다.
② 즉 자전거가 아닌, 자동으로 공기가 채워지는 튜브를 참고해 물에 뜨는 자전거라는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③ 개선 방안을 생각할 때는 기존의 다른 발명품을 참고할 수 있다.
자 이제 연결해 보세요. 생각해 보세요.
쉽지 않죠.
앞에서 얘기했던 것을 떠올려 봅시다.
생각이란
머리라는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는 과정입니다.
이때 우리의 머리는 생각의 재료(자판기의 돈)를 필요로 합니다.
내가 어떤 생각을 시작하는 데 주저하거나 망설이게 되는 이유는
'생각의 재료'가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글은 여러 문장이 이어진 것이죠.
그래서 글을 읽으라고 하면
문장 간의 관계에 초점을 두곤 합니다.
주어진 ① , ②, ③의 관계를 찾는 것이죠.
그런데 찾을 수 없습니다.
① , ②, ③을 연결할 재료가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문장과 문장은 실제로 문장보다 작은 단위에서 연결이 이루어집니다.
① , ②, ③의 연결은 ① , ②, ③보다 작은 단위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① 을 봅시다.
① 마지막으로 발명 단게에서는 자전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것의 해결 방안을 생각한다.
이 상태로는 어떤 연결도 생각할 수 없어요.
재료를 만들어 볼게요.
① 마지막으로 // 발명 단게에서는 // 자전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 그것의 해결 방안을 / 생각한다.
마지막 단계인 발명 단계에 대한 설명입니다. 발명 단계에서는 자전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것 즉 자전거의 해결 방안을 생각합니다. 이제 ② 를 봅시다.
② 즉 < 자전거가 아닌, / 자동으로 공기가 채워지는 튜브>를 참고해 // 를 /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①과 ②를 연결해 봅시다.
어떤가요? 연결이 안 되죠? 이상하죠?
①의 발명 단계에서는 '자전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자전거'의 해결 방안을 생각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②는 '튜브'를 참고한다고 합니다. 이때 '튜브'가 문제입니다.
'튜브'는 '자전거가 아닌' 그리고 '자동으로 공기가 채워지는' 것입니다.
이상하죠. 앞서 ①에서는 '자전거에 대한 이해'라고 했는데 ②의 '튜브'는 자전거가 아니라고 되어 있으니까요.
'물에 뜨는 자전거라는 아이디어'는 '그것(자전거)의 해결 방안'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①이 하는 말은
그냥 자전거의 해결 방안을 생각했다가 아니라
'자전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결 방안을 생각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 '물에 뜨는 자전거라는 아이디어' 역시
①의 '그것의 해결 방안'에 해당할 수 없는 것이죠.
①과 ②는 연결될 수 없습니다.
........................................................
윗글은 실제 시험에 나온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이렇게 잘못된 글을 낸 이유는
'고쳐쓰기' 문제 때문입니다.
독해력이 부족한 학생들은
고쳐쓰기 문제를 보고 나서야
글이 이상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전거', '튜브', '공기', '물에 뜨는'
모르는 단어나 표현은 하나도 없습니다.
내용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던 이유는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에요.
아예 의심조차 하지 못한 것입니다.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죠.
왜 그럴까요?
내가 글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도록
만들어주질 않았으니까요.
①과 ②를 더 나누지 않고
그대로 읽었으니까요.
내가 나를 방해한 꼴이 되어 버렸습니다.
내용을 따지는 단위는
'자전거에 대한', '자전거가 아닌'처럼
문장보다 훨씬 작은 사이즈인데
나는 문장을 그대로 두고 생각하려고 했으니까요.
머리가 멍청해서가 아닙니다.
머리탓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멍청하게 생각하도록 몰아가는 것이 진짜 문제이지요.
........................................................
③을 봅시다.
③ 개선 방안을 생각할 때는 기존의 다른 발명품을 참고할 수 있다.
그대로 두지 맙시다. 나눕시다.
③ 개선 방안을 생각할 때는 // 기존의 다른 발명품을 / 참고할 수 있다.
이제 연결이 보이죠. 윗글은 ① , ②, ③의 순서가 잘못 되었어요.
'개선 방안을 생각할 때'는 ①의 '해결 방안'을 생각할 때에 연결되고
'기존의 다른 발명품'은 '자전거가 아닌'에 연결될 수 있겠죠.
쉽죠?
연결을 설명하기 이해하기 위해 다른 방법이 필요한가요?
아니죠.
우리는 연결 능력을 타고 났습니다.
우리 머리는 자동 연결기입니다.
자동 연결기에 필요한 것은
연결의 재료 즉 생각의 재료입니다.
재료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연결이 결정됩니다.
독해는 연결이지만
재미있게도 독해 공부의 핵심은
연결이 아닌 연결의 재료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올해 첫 칼럼으로 문장 공부에 대한 내용을 다룬 이유이기도 합니다.
........................................................
돈이 없는데
어떻게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을 수 있나요?
재료를 먼저 준비하도록 합시다.
여러분은
똑똑합니다.
단지 주어진 것을 사용할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내 머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독해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어 전체에 걸쳐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짚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특히 문제 풀이에서요.
다음 시간에는
문학에서 이와 유사하게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살펴 볼게요.
...................................................
19학년도 수능 대비 '국어는 흐른다'가 곧 출판됩니다.
출판 기념 무료 면담을 진행 중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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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와닿아요 항상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어 다행이네요~!
흐 자전거랑 튜브나오는거 읽고 제가 생각없이 독해한다는걸 또다시 깨달았습니다.. .
도움이 되어서 다행입니다 ㅜ
현강에서 뵈요!
감사합니다~!! 화이팅~
자판기에서 음료수 뽑으시면서 그런 생각을 ㅋㄱㅋㄱㅋㅋㅋㄱㅋ ㄷㄷ
저도 참 의문입니당..
직업병인지..ㅋㅋ
정확히 언제 출판되는지 알수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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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안 읽히고 해서, 몇문장이 더 추가되야 되는데 뭔가 말이 맞을거같은데 하고 내려갔는데 나름 잘 읽어서 뿌듯
다행이네요~!
좋은 글이네요
이때까지 칼럼쓰면서 송영준선생님과 비슷하다, 이런 말들 많이 들어서 쌤이 올리신 글들 읽어보는데 정말 비슷하네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올려주시길!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분이 계시다니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학생들에게 유익한 글을 적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학생들이 이 글을 읽고 도움을 받았으면 좋을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더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와우 튜브를 자전거 바퀴로 생각해서 연결하며 읽고 있었는데 자의적 해석의 늪에 빠졌었네요!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