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af [682131] · MS 2016 (수정됨) · 쪽지

2016-12-11 01:3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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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실패로 밤잠 설치는 분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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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독재를 마친 20.9세 17학번입니다.

방금 어떤 오르비언의 글을 읽고 나니 올해 초 제 생각이 나네요.


저는 16입시에서 내신 4.0에 6논술을 하고 수능도 망치고 최저를 다 날렸습니다.

오르비 수준엔 우습겠지만 세 딸 중에선 제가 가장 공부머리가 있었고 집안에서 투자도 많이 받았기에 부모님의 실망과 질타도 컸습니다.

예전같으면 부모님의 이러한 반응에 짜증을 냈겠지만 피폐해진 정신상태로 자존감이 현격하게 낮아져 자괴감만 들고 자기혐오가 너무 심했습니다.

엄마가 수영장에 가면 방에서 나와 밥을 차려먹고 엄마가 돌아오기 전에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두어달을 하니 15kg가 빠지더군요.

독재를 시작하고 집 앞 독서실에 다녔습니다. 하루에 딱 두 마디를 했죠.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왔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괜히 절 쳐다보는 것 같고 한심하게 보는 것 같고 위축되었습니다.

그렇게 6월까지 다니다가 어떤 남성분이 무서워서 독재학원으로 옮겼습니다.

첫 상담을 받는데 초면인 담임선생님이 누구랑 제일 말을 많이 하냐는 말에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나더라고요. 저랑 제일 친한 친구도 재수를 하는 입장이었고 제가 그 친구보다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공부에 대한 푸념을 할 수도 없었거든요.

1월 마지막 주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해서 좋은 사람들하고 일요일에 얘기 나누며 위안을 많이 얻었어요 그래도 정신이 불안정해서인지 저도 모르게 차에 뛰어든 적만 올해로 세 번이네요.

하루종일 우느라 공부를 못한 날도 정말 많았고 땅콩알레르기가 있는데 일부러 땅콩이 든 초콜렛을 먹은 적도 있었어요. 엄마얘기만 누가 꺼내면 너무 서러웠고요. 기계로 치면 저는 가성비 떨어지는 고물 같았거든요.

위염도 너무 심해져서 만성으로 변했어요.

결국 이번 수능에도 영어 때 위가 너무 아파서 울면서 시험을 봤더니 6등급이 떴네요.

저를 도와주고 관심을 준 많은 주위 분들이 아니었더라면 저는 정말 스물 한 살을 맞이하지 못했을거에요. 그 땐 그런 관심이 너무 부담스러웠지만 저도 이제 고통받고 있을 과거의 제 자신과 같은 분들을 붙집아드리고 싶네요.


지난 입시를 돌아보면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여러분은 진심으로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거에요. 여러분의 가치까지 저평가하지는 마세요. 여러분을 사랑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의 애정을 깎아내리는 일이니까요. 다들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힘드실 때 언제든지 쪽지해주세요.

진심으로 같이 고민하고 슬퍼해드리고 싶어요.

아픈 만큼 성숙해질 여러분의 오늘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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