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생! [527735] · MS 2014 · 쪽지

2016-01-28 13: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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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대에서 고려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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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이나 수능을 보고 나서야 입시판을 떠나게 되네요.
한시름 놓으니 제 20대 초반은 어디가고, 벌써 스물셋. 슬슬 이십대 중반에 더 가까워졌어요.

13수능땐 34344이었어요. 평상시에 12244정도 받았는데 이상기체 지문에서 멘붕당하고 3개 틀리니 3등급이 뜨더군요. 그뒤로 멘탈이 아예 나가서 난생처음보는 점수를 받았었네요.
다행히, 수시로 서울여대를 붙었어요. 현역땐 거들떠도 안봤는데, 붙으니 너무 좋더라구요.
눈물을 흘릴 정도로.. 그런데 부모님이 그러셨어요. 너가 정말 최선을 다해보고 그만두는게 좋지 않겠냐구요. 여러날 생각해보고, 결국 재수를 선택했습니다. 재수는 고삼 윈터때 메가에서 기숙을 해서 메가가려다가, 그냥 집 가까운 청솔에 들어갔어요.

형편없는 성적이었음에도 6,9월 성적으로 탑반에 들어갔어요. 물론 선행반으로 들어간 거라 기준이 좀 낮았던 면도 있구요. 고삼때 제 사탐점수만 봐도 아시겠죠, 전 성실한 학생이 아니었어요. 공부는 정말 안하는데 그에 비해 언수외(그당시는 국영수가 아니었죠)가 잘나오는 편인, 누군가에게는 재수없는 케릭터였어요. 하지만 재수를 하는데, 하, 제가 일반고를 나왔는데 재수학원에 오니 잘하는 애들이 정말 많았어요. 일반고에서 언수외합 5정도면 잘하는 축에 속했는데, 여기오니 명함도 못내밀겠더군요. 처음으로 열등감이란 걸 느꼈습니다. 고삼때까진 성적이 안나오면 부모님께 혼날 것을 걱정했는데, 재수하고서부터는 성적이 안나오면 제 인생이 걱정되더군요.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제 자신에 대한 열등감, 거기서 나오는 감정소모가 목표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현역때 수시로 서울여대를 갔다면, 재수땐 정시로 국민대정도. 상위누적 자체는 24퍼에서 10퍼가 됐음에도, 학교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에 다시 삼수를 결심했죠.

삼수때는, 지금생각해도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모를정도로 죽어라 공부했어요.
학원에선 다 동생들이었기에 인간관계로 낭비할 필요도 없었고, 재수때와 달리 '독해져보자'라는 마음이 더 강했거든요. 또 실제로도, 학원에서 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만큼 독하게 공부했어요.
한번도 엎드려 잔적이 없고, 화장실 가는 시간이 아까워 물도 안마시고, 밥은 그냥 거의 마시듯 먹고서 화장실 한번 들렸다가 다시 공부하고.. 하루에 자리에서 움직인 횟수가 한손가락 안에 꼽았어요. 제가 몸이 약한편이여서 담임 선생님께서 제가 쓰러지지 않도록 일부러 교무실로 불러서 쉬게하실 정도로, 죽어라 했네요. 모의고사 성적은 어느정도 나왔어요. 상위누적 1~2퍼 내외로. 하지만 저는 제가 공부한 걸 생각하면, 너무 맘에들지 않는 성적이었어요. 9월에 31111이 나왔는데, 그당시 국어를 2개 틀렸더니 3이 나왔거든요. 전체에서 틀린건 국어 2개뿐이었는데도 끝끝내 올1을 받지 못하자 전 멘붕에 빠졌어요. 제 스스로 그당시엔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돌이켜보면 슬럼프가 왔었네요. 저는 그당시 완벽주의에 빠져서 객관적으로 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 자신을 비판하고, 비난하고, 나중엔 혐오까지 하면서 스스로를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망.
11333이 떳어요. 정말 다 그만두고 싶었고, 뭐가 잘못된 건지, 나보다 못했던 애들이 수시로, 정시로 좋은 대학을 가고 나보다 열심히 안하던 애들이 좋은 대학가서 페이스북에 글올리고..

정시로 학교를 붙었지만 정도 안가고, 자존감도 낮아지고.. 참 힘든 생활을 했습니다. 또 자존심은 있어서 아무렇지 않은척, 남자친구도 사귀고 표면적으론 잘 지내는척 했었네요.
그러다 시간이 갈수록, 아, 이렇게 가다간 우울증으로 힘들어지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남자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그 친구는 기다려줄테니 하고싶은대로 다하고 오라고 했어요) 부모님도 설득을 했죠. 사실 힘들었어요, 부모님 설득하기. 하지만 제가 너무 완강해서 결국 반수를 허락하셨어요.

독재를 하다가 9월부터 파이널 빡쎄게 한다는생각으로 다시 다니던 학원에 들어갔어요. 가서 작년에 공부했던 것처럼 다시 독하게 했어요. 다만 작년과 달랐던건 올해의 목표는 '내자신을 사랑하자' 였다는 점. 제가 혹여 실수를 한다고해도, 제 계획을 다 못지켰어도 제 자신을 비난하지 않았어요.  그 시간에 그럼 이 비워진걸 어디서 메꿀까, 하는 계획을 다시 세웠어요. 그리고 계속 긍정적인 생각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제 자신에게 여유도 허락했어요. 일요일 점심시간에 남자친구와 점심을 먹었습니다. 전이라면 감히 상상도 못한 일이었죠. 제가 워낙 제 스스로에게 엄격했던 사람이라 오히려 그 부분을 풀었습니다. 지나친 완벽주의가 저를 갉아 먹는것을 느꼈거든요.

그리고 수능. 결과는 11211을 받았습니다. 역시 연고대 점수가 안전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제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처음으로 말할수 있었어요. 그리고 올해 수시로 고대를 붙었습니다. 약간 선물처럼 나온 결과같았어요. 이게 제가 반수해서 나온게 아니라 그동안의 노력을 조금 늦게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으로, 원하던 대학에서 합격이라는 통보를 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인사를 받았습니다. 조금 늦은 수기라 지금은 좀 진정됐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나름 힘겹게 이 자리에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떻게 마무리를 지어야하나, 모르겠습니다.
모두들 건승하길 바라며 수고하세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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