돛대 [606835] · MS 2015 · 쪽지

2017-01-02 22:3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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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돛대샘] 2018 여태껏 우리가 몰랐던 비문학 이야기_3. 비트겐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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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은 슈타인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먼저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을 떠올릴 수 있다. 미래에 위대한 과학자가 되길 원하는 학생만이 아인슈타인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 자식이 똑똑한 아이로 자라길 바라는 모든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우유로도 먹이고 이름까지 한돌이라고 짓기도 한다. 다음으로 리히텐슈타인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필자가 어린 시절 친구들과 자주 하던 놀이가 있다. 끝말 잇기, 나라 이름 대기 등. 그때 외웠던 나라 이름이라 아직까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듯하다. 세상에서 제일 작은 나라라고 알고 있는데 세월이 흐르는 동안 더 작은 나라가 생겼는지 모르겠다. 괴물의 대명사 프랑켄슈타인도 있다.


   2012년 수능에서 새로운 슈타인 스타가 등장했다. 바로 비트겐슈타인이다. 그가 족적을 남긴 분야도 '논리 철학', '언어 철학'이라고 하니 꽤나 생소하고 난해한 인상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전통적으로 인문 제재 안에서 특히 철학은 학생들이 꺼리는 소재이다. 그나마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정도까지는 크게 동요하지 않고 인내할 수 있다. 들어본 적이 많기 때문이다. 음악을 많이 좋아하는 친구들은 뜻밖에 반가워할 수도 있다. 가수 신해철이 한때 결성했던 밴드 이름도 비트겐슈타인이었다. 하지만 그와의 만남은 아쉽게도 포퍼 못지 않은 강한 부담을 안겨준 철학자로 각인되고 있다. 다음에 다시 인문 지문에서 만나는 일이 없기를. 적어도 수능 국어의 역사에서 비트겐슈타인은 한 획을 그은 것이다.


<예>

그림 이론’에서 명제에 대응하는 ‘사태’는 ‘사실’이 아니라 사실이 될 수 있는 논리적 가능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언어를 구성하는 명제들은 사실적 그림이 아니라 논리적 그림이다. 사태가 실제로 일어나서 사실이 되면 그것을 기술하는 명제는 참이 되지만, 사태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명제는 거짓이 된다. 어떤 명제가 ‘의미 있는 명제’가 되기 위해서는 그 명제가 실재하는 대상이나 사태에 대해 언급해야 하며, 그것에 대해서는 참, 거짓을 따질 수 있다. 만약 어떤 명제가 실재하지 않는 대상이나 사태가 아닌 것에 대해 언급하면 그것은 ‘의미 없는 명제’가 되며, 그것에 대해 참, 거짓을 따질 수 없다. 따라서 경험적 세계에 대해 언급하는 명제만이 의미 있는 것이 된다.


   선명하게 문맥을 이해하는 데 상당히 어려움을 주는 지문 스타일이다. 일단 '사태'라는 말이 뭔지 당 황스럽다. '사태'에 대한 이해도 긴가민가한 상황에서 '사실'과 '사태'가 뚜렷이 구분되지 않은 상태로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다. '사태'는 '사실의 가능태'로 보인다. 사실이 될 수도 있고 사실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다음으로 '의미 있는 명제'와 '의미 없는 명제'를 이해해야 한다. 참, 거짓을 따질 수 있으면 '의미 있는 명제', 참, 거짓을 따질 수 없으면 '의미 없는 명제'가 된다. 참, 거짓을 따질 수 없는 것은 경험적 세계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지만, <예>에서 필자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그림 이론'이다. 아니, 더 엄밀히 말하면 '그림'이다. 지금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가 공부한다면 어떤 과목을 가장 잘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다시 하더라도 미술엔 자신이 없다. 그래서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무척 부럽다. 어떻게 눈으로 본 것을 입체적으로 그릴 수 있는지 여전히 신기할 따름이다.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한 일이 꿈 속에라도 이루어진다면 꽤나 신이 날 텐데… 종종 학교에 준비물을 빠뜨리고 가 난처해 하는 꿈이나 꾸곤 했다. 그게 하필이면 미술 시간에 필요한 도구인 경우가 많았다. 미술 시간에 크게 꾸중을 들은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닌데 참 알 수 없는 심적 작용이다.


   그림을 좋아하진 않지만 필자는 계속 그림을 그리려 한다. 비트겐슈타인의 '그림 이론'은 그런 점에서 누군가에게 훌륭한 영감(靈感)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감이란 문득 떠오른 기발한 생각을 의미한다. 어떤 현상이나 세계, 아니 때론 자신의 내면마저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데 그림만한 도구가 없기 때문이다. 세계를 그림으로 설명하려 했다는 점, 언어를 세계에 대한 그림으로 봤다는 점, 그것만 가지고도 그는 소수의 혁신자로 불릴 만하다. 또다른 유혹도 있다. 비문학 지문을 하나 설명하고 나면 필자는 칠판에 그림을 그린다. 그것을 바라본 학생들의 눈빛이 번쩍인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명언을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그려보겠다."로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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