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백이 [624637] · MS 2015 (수정됨) · 쪽지

2016-11-22 00:37:15
조회수 13,272

이젠 노력이라는 단어가 지긋지긋한 사람들에게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9717079


안녕하세요 :) 매년 이 시즌이 되면 오르비에 들어와서 글을 보고

소소하게나마 (어제처럼ㅋㅋ) 인증도 하면서 지내는 곧 수의대생이 될 수험생입니다 ㅎㅎ

사실 오늘 글들을 눈팅하다가 CoGoA라는 분이 쓰신 글을 봤어요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글을 남기기에 부족한 필력일 수 있지만 꼭 하고 싶은 말이 생겨서 이렇게 글을 써봐요.


먼저, 1년 반 전의 제 얘기를 하고 싶어요.

중학교 때 원인 모를 자가면역으로 1형 당뇨라는 만성 질환에 걸렸고,

막연하게나마 이 사회에서 소수자들이 받는 불이익을 알았던 저는

한양대학교에 들어가서 과연 이 학교가 나의 약점을 지켜줄 수 있을까, 생각했고

마침 그 즈음해서 키우던 강아지가 아팠을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가 기억나며 수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마침 수의사는 제 약점과도 아무 상관 없는 직업이었기 때문에

고심하다 저는 5월에 학교를 그만 두게 되었어요.

그리고 두 번의 수능을 치렀습니다.


돌아보면 참 힘든 나날들이었던 것 같네요 :)

이유 없이 내가 져야 하는 짐에 대한 원망이

수험생일 때는 크게 느껴지기만 하더라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슬펐던 건 저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었어요.

필사적인 마음으로 공부하고 이과로 첫 수능을 치른 후 

어떻게든 서울권 수의대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저는

생각보다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어요.

그 때 들었던 말들이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왜 더 치열하지 못했니, 그게 너의 한계야, 네가 부족한거야.

그런 말들, 눈빛들이 저를 괴롭게 했고, 결과만으로 충분히 괴로웠던 저는

그 기간동안 저를 미워했었습니다.


근데, 그러면 안 됐던 것 같아요.


여러분, 옥상달빛의 '희한한 시대'라는 노래를 아세요?

그 노래 가사처럼, 우리는 정말 희한한 시대에 살고 있어요.

옛날처럼 풍족하지 않은 일거리들 속에서 우리는 한 가지 길만을 배우고

슬프게도 그 바늘구멍만한 길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활로가 맞죠.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이런 시대에 우리가 듣고 생각해야 할 건

스스로에요. 남이 아니라. 

여러분, 결과가 아닌 노력을 사랑하세요.

여러분이 이 시험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스스로를 포기해가며

치열하게 했던 노력을 기억하세요. 스스로를 대단히 여겨주세요. 그래야 행복해질 수 있어요.

차갑고 냉정한 결과가 문을 여는 열쇠가 되어줄 수 있지만

이 시험을 거쳐도 우리 앞에 수많은 시험이 있을 거고,

그 때 스스로를 긍정하는 힘은 제 경험상 스스로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더라고요.

충분히 열심히 하셨잖아요. 알고 있어요.

누군가 초라한 결과를 보고 말을 모질게 할 때

그 말보다 나의 치열함을 더 믿는 사람이 되세요. 

지금의 슬픔이 가라앉고 나면 그 때는 꼭 내가 괜찮은 사람이었다고,

글자 하나 더 보려고 치열하게 공부했다고 스스로한테 얘기해주세요.

우울한 시간이 지나면 그때는 더 높이 뛸 수 있는 사람이 될 거에요.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공부하는 거잖아요 우리 모두. 

우리 꼭 행복해집시다. 결과보다 과정을 알아주는 사람이 됩시다. 우리를 위해서.

꼭 그럴 수 있을 거에요. 여러분 진짜 멋진 사람들이에요 다들 아시죠?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