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욱 [681502] · MS 2016 · 쪽지

2016-08-21 20:14:09
조회수 693

갈등과 모순의 집합체, 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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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이 대세인 시대입니다. 수시모집이 입시의 중심이 된지는 15여년이 지났지만, 그러한 수시모집은 특기자전형이 주가 되던 시절부터 입학사정관제가 중심이던 시절을 지나 지금의 학종시대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해마다 학종 선발비중과 모집인원은 증가하며, 증가하는 모집정원보다 더 큰 정도로 대학과 학교, 학원을 포함한 고등학교 교육 전반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학종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는 수험생과 학부모는 드물지만, 학종을 들어보지 못한 수험생과 학부모도 없을 겁니다. 학종은 기존 수능성적등의 정량평가의 단점과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정성평가가 주가 되는 전형으로서, 대학과 전형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학업역량, 전공적합성, 학교생활충실도, 기타 인성 등을 평가합니다.

대한민국에는 다양한 종류의 2300여개 고등학교가 존재하며, 그 중 극소수의 소위 말하는 입시명문학교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비슷한 수준의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입니다.
어느 동네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입시와 관련하여 가장 자주 듣는 얘기 중 하나가 '수시로 대학가라' 일 겁니다.
특차와 정시모집 중심의 입시제도는 김대중 대통령 취임 후 이해찬 당시 교육부총리의 지휘아래 전례 없는 개혁을 실시하여 지금과 같은 수시모집 중심으로 개편되었고, 그 후 특기자를 우대하던 시절에도 일반계 고등학교에서는 '그래서 수시로 대학가라' 라고 학생들을 지도하였고, 학생부교과성적이 중요하던 시절에는 당연히 '내신성적 관리해서 수시로 대학가라' 라고 학생들을 지도하였고, 입학사정관제의 연장선에 놓여져 있는 (엄밀히 따지면 같다고 볼 순 없지만) 지금 학종 중심의 시대에서도 '수시로 대학가라' 라고 합니다.
교직사회의 시대상황을 인식하는 수준을 보여주는 예라고 봅니다.
시대는 변해도 교직사회는 변하지 않습니다. 바뀐 시대상과 바뀐 제도에 맞춰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무엇을 하라라고 지시는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며 왜 그것을 해야 하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본인들도 모르거나 알더라도 본인들의 이익/기득권에 반하기 때문 아닐까요. 그것이 학생에게 독이 되는 방향인지, 도움이 되는 방향인지 정도라도 분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고등학교의 현실 속에서 학교생활을 충실히 하는 학생을 우대해준다는 학종의 등장은 고인 우물안에 갇혀 있던 일부 교직자들에겐 가뭄 중 단비와 같은, 자신의 영혼 없는 수시예찬을 강력하게 뒷받침할 수 있는 좋은 근거가 되었겠지요.
그래서 최근엔 '수시로 대학가라' 라는 강요가 '학종으로 대학가라' 로 바뀐 것 같습니다.
학종이 뭔지도 모를 것 같은 교직자들조차 말이죠.

고등학교는 왜 학종을 반길까요.
그것은 그것이 자신들의 기득권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해마다 바뀌는 본고사/학력평가/논술,구술,심층면접등의  대학별고사/수능 시험등을 연구할 필요도 없고 단지 자신들이 하고픈대로 과제를 부여하고 학생들을 평가하기만 하면 되죠. 대학까지 나서서 고교 생활에 충실해야 우리 대학에 올 수 있다고 지원해 주는 상황에서 '너 대학 안갈래?' '생기부(생활기록부)관리 안할 거야?' '추천서 받기 싫어?' 이런 협박 아닌 협박이면 이미 수시모집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착각하는 학생들은 그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과제와 활동인지 아닌지 분간할 필요도 없이 교사와 학교의 방침과 지시에 무조건적으로 순응하고 따라갈 수 밖에 없습니다.
구차하게 청소체벌, 벌점을 운운할 필요도 없지요.
학생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수단이 됩니다.

정말 교사들은 학종을 권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대입정보포털(adiga.kr)이나 각 대학 입학홈페이지, 기타 언론등을 통해 공시된 정보들을 보면, 서울소재 주요 대학들의 경우에 수시모집의 경쟁률은 대략 20~30:1 정도에 달하고 정시모집의 경쟁률은 3~5:1 정도로 나타납니다.
게다가 모집정원 자체도 수시모집 전체만 보면 당연히 정시모집보다 월등히 많지만, 그 적다는 정시모집도 대략 10만명 정도를 선발하고, 요즘 대세라는 학종은 대략 7만명 정도를 선발하는데에 그칩니다.

7만명 정원에 두자릿수 경쟁률의 학종과 10만명 정원에 한자릿수 경쟁률의 정시모집,
이 글을 보고 계시는 분께서 만약 어느 한군데에 지원을 한다면 어디를 택하겠습니까?
정시모집으로 대학 갈 꿈도 꾸지마라라고 조언받은 적이 있거나 그렇게 조언(혹은 강요)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분들 분명 많을 겁니다. 그런데 수시모집 혹은 학종을 두둔하는 사람들이 그토록 혐오하는 정시모집의 현실이 이렇습니다. 
명백한 현실을 속이고 부정하면서까지 학종을 추앙하고 정시모집을 저주하는 것이 과연 학생들을 위하는 길이라 볼 수 있을까요? 정말 그런 교직자들이 학생들을 위한다면 그것이 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지까지 따져봐야 할 것이며, 또 말로만 학종을 준비하라고 하지 말고 학생들에게 좀 더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수시/정시 7:3 이라면 당연히 한 반에 70% 학생에게는 수시모집을 권하고 30% 학생에게는 정시모집을 권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자 기본 아닐까요? 그런데 극소수의 고등학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1학년때부터 '나는 정시모집이 맞고 가능성이 있으니 그 길로 대입에 도전해볼거야' 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한 반에 몇명이나 있을까요? 있어봤자 한두명이고 대부분은 왜곡된 수시예찬/학종예찬에 세뇌돼 10만명 정원의 또다른 세상이 있는지조차 생각하지 못합니다. 마치 그것은 범죄이자 신성모독이라고까지 인식하기도 합니다. 학교와 학원을 포함한 주변의 모든 어른들이 그렇게 강요하니깐요.

그나마 수시로 대학가라고 하면 양반인 것 같습니다.
학종으로 대학가라는 말은 왜 그렇게 당연한 듯 쉽게 얘기할까요.
2017학년도 학종 모집인원은 전체 대학기준 대략 72,000여명 입니다. 72만명이 아니고 7만명입니다.


학교 현장이 삐뚫어진 권위주의와 무능함으로 혼탁해졌다면, 정부와 사교육이 바로잡아 주어야 겠지요. 그런데 이러한 혼탁한 현실을 부추기고 방조한 게 정부입니다. 그 부분은 더 따질 필요도 없겠구요, 효율이 생명인 민간 영역의 사교육은 어떨까요?
저는 단언하건데, 사교육에 종사하는 사람 중 최소 90% 이상은 자질 없다, 라고 생각합니다.
가르치는 교과 과목에 대한 전문성은 차치하더라도, 제도와 정부의 방침과 학교의 현실이 올바른지/그른지에 대한 비판적인 판단능력이 전무합니다. 학교에서 팥으로 메주를 쑨다하면 학원에선 어떻게 팥으로 메주를 잘 쑬지를 연구합니다. 참 우스꽝스럽지요. 대체로 학교에서 모두 배우는 내용을 별도의 비용을 받고 더 가르치는 사람들이 되려 학교보다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면서 학원/과외가 아니면 당신의, 혹은 당신 자녀의 인생을 망치는 양 겁주기는 누구보다 잘 하지요. 뻔히 학생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도, 혹은 스스로 해야 하는 것도 비용을 요구하며 자신들이 대신 해줘야 한다고 거짓말 하는 집단입니다.
제가 볼 땐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일타강사부터 최저시급받는 동네 보습학원 대학생 알바강사까지 다 그렇습니다.

뻔히 교육과정이란 게 교육부를 통해 공시돼 있고, 그것을 토대로 명백한 원칙대로 수능 시험이 출제되고, 수능 시험 치르는 데 참고하라고 수능 시험과 연계된 EBS강의도 지원해 주는데, 그 원칙이란 걸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알 수 있는데 자신만이 아는 비법이라도 있는 듯 마치 한 종교의 교주처럼 혹세무민하며 군림하려는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일타강사들 아닙니까? 입시와 경쟁에 몰두돼 누구보다 불안함에 노출된 특목고생들을 얄팍한 상술로 꼬드겨 자기들 잇속 챙기는 사람들이 일타강사들 아닙니까?
자기가 더 가르칠 게 없다, EBS교재와 교과서에 전부 똑같이 나와 있는 내용이다, 라고 양심고백할 용기조차 없는 돈의 노예일 뿐입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벌어서 마카오에 원정도박하러 다니고 고교 교사들 꼬드겨서 시험문제나 유출하고 그러더랍니다.


학종의 시대를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도대체 이 학종을 왜 이토록 예찬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학종은 기존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획기적인 대안이 맞을까요? 학종이 추구하는 가치를 지금의 환경과 제도로 구현할 수 있을까요?
미래사회를 대비하기 위해 학종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기존의 제도로 선발되고 교육된 학생들은 미래 사회에 도태될 수 밖에 없는 골동품인가요?

학종에서도 강조하는 공교육정상화란 무엇일까요?
대한민국 헌법 제31조는 모든 국민이 정당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규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급 학교를 운영함으로써 그 권리를 구현하고자 하고 그것이 원론적인 의미에서 공교육이겠죠. 그런 의미에서는 공교육은 국가를 지탱하는 근간으로서 반드시 사회를 든든히 떠받치고 있어야 할 토대가 되는 것이고, 공교육이 무너진다는 건 곧 국가 기반의 붕괴를 의미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당연히 공교육이 위기라면 공교육을 바로 세워야 겠지요.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공교육의 정상화라는 건 그러한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충족시킬 수 있는 환경을 보존한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겠죠.
왜 우리 사회는 공교육 불신, 공교육 위기의 문제를 안게 되었을까요. 워낙 복합적인 문제라 뚜렷한 원인이 무어라 말할 순 없겠지만, 정부 정책의 실패, 사회 위기 요인, 교육 주체간 일탈 등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런 문제를 논하고자하는 것이 이 글의 취지는 아니기 때문에 그 부분은 각설을 하겠습니다.

과연 학종을 통해 무너진 교권을 바로 세우고, 흐트러진 공교육의 기능과 위상을 복원하고 강화할 수 있을까요?
학교 생활을 충실히 하는 건 중요합니다. 그건 반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성실하고 책임감있는 학생을 우대해 주는 것 또한 지극히 바람직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공교육 정상화라는 그럴 듯한 명분 아래 은폐되고 감춰진 좀 더 근원적인 속살을 들춰낼 필요가 있습니다. 공교육 정상화는 학생들에 의해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 아니고 국가와 사회의 역할입니다. 단순히 학생들을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가둬 놓은 것이 공교육 정상화일리도 만무한 것이며, 그렇게 학생들을 학교 안에 억지로 가둬 두기 이전에 학교가 실제로 학생들이 그 곳에 종속되는 것이 학생들 스스로에게 이롭게 되는 공간이 맞는 것인지를 따져 봐야 하는 겁니다. 
학생의 능력을 계발하기 위해 가르치고 과제를 부여하고 평가하고 관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비판없이 단지 학생들을 굴복시키기 위해 무분별하게 부여되는 여러가지 교과활동, 비교과활동, 과제, 시험이라면 오히려 그런 왜곡된 활동을 반대하고 학생들을 그 안에서 꺼내 주는 것이 우리 헌법의 이념에 부합하는 것이고, 오히려 그것이 공교육을 정상화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학종이 학교 생활에 충실할 것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학교라는 공간이, 또 학교에서 행해지는 여러 활동들이 학생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 맞는지부터 따져 봐야 하는 것이고, 그렇다는 확신이 들 때에 그러한 학교의 활동을 존중해주고 그러한 활동으로의 참여를 권장해야 하는 것이지요.
일의 전후관계가 많이 잘못됐습니다.

무비판적으로 학교에의 종속을 강요하는 것은, 그것이 공교육 정상화라는 대의명분을 구현하는 길도 아닐 뿐더러,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주체적이고 통합적인 사고능력을 가진 학생을 양육하고 배출한다는 우리 교육이념과 학종의 기본 가치와도 배치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성 사회와 기득권에 굴복하고 종속하는 노예 근성을 강요하고 몸에 베이게 하는 사회적 폭력입니다.
그것이 학교의 영역이라 하더라도, 학생들에게 능동적으로, 비판적으로 본인의 자율의사로서 자신의 일을 결정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하는 것이지, 학교와 교직자가 마치 신성 불가침의 영역인 것 처럼 일률적이고 획일적인 종속과 참여만을 강요하는 것은 아이를 바보로 만들 뿐입니다. 학생을 노예로 전락시킬 뿐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재들이 변화하는 사회에 현명하게 대응할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순 없는 겁니다. 
자기주도적 학습을 강조하면서 수요자 중심이 아닌 공급자 중심의 학교 생활에 얽메이게 하는 제도 자체가 모순 덩어리입니다.

또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학종은 지원 학과/전공에 대한 전공적합성까지 중요하게 평가한다는 점 입니다. 각 대학 입학처장들이 밝히는 각 대학 학종 선발 기준을 보면 하나같이 전공적합성을 갖춘 학생들을 우대한다고 명시해 두고 있습니다.
말로는 꼭 어릴 때부터, 고1 때부터 일관된 목표를 가지 않아도 된다, 발전 가능성만 보여주면 된다, 라고는 하지만, 대학이 나서서 전공적합성을 요구하는 이상, 수십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하는 수험생의 입장에서 순진하게 그런 허울 좋은 말만 믿고 있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든 남들과 차별될 수 있는 해당 지원 학과에서 다루거나 요구하게 될 지식과 기능들을 하나라도 더 익혀 본인의 열정과 간절함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대학에는 수백가지의 전공이 있고, 그걸 아무리 비슷한 부류끼리 간추린다고 해도 수십가지의 전공분야가 있는데, 학교라는 공교육제도가 그런 대학에서 다루게 되는 전공영역에까지 미칠 수는 없는 것이고, 자연스레 욕심 있고 뜻이 있는 학생들은 학교 울타리를 벗어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사교육을 비난하며 공교육을 추앙하는 분들이 되려 공교육으로부터의 일탈을 부추기는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겠습니까.
실제로 그렇게 학교를 벗어난 아이들이 적당한 립서비스까지 곁들여지면 입시에서 좋은 결실을 거두게 되는 사례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지 않습니까.
그것이 공교육 정상화가 아님은 분명한 것이려니와, 그런 식의 교외 활동은 지역 기반과 경제 기반에 따라 격차가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자연스레 사회를 분열시키고 갈등을 조장하게 된다는 간단한 이치를 많이 배우신 분들께서 왜 생각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대학에서 아이들을 잘 가르칠 생각을 해야지, 미리 고등학교때 해당 전공에 관한 소양을 닦아 오라는 건 대학도 이젠 선행학습해야 한다는 의미로밖에 들리지 않는 겁니다.
또, 그렇게 어릴 적부터 명문대 진학을 위해 특정 목적에 초점을 두고 최적화된 포트폴리오를 꾸며온 학생이, 가령 경영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각종 경제분야에 관한 활동으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 왔다면, 나중에 세상을 점차 알아가면서 그 길이 본인의 길이 아님을 알게 되었을 때, 이미 그 분야에 어느 정도 종속돼 버린 현실을 과감히 벗어던질 수 있을까요? 아무리 대학에서는 그렇게 해도 괜찮다라고 하지만 대학에서 요구하는 것들이 겉으로 드러난 명분과 실제 현실과의 괴리가 존재한다는 불신이 쌓일 대로 쌓여 있는 상황에서 수험생과 학부모가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렇게 관련 학과에 진학했다고 해도, 그렇게 10여년 가까운 시간을 투자한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진로를 변경한다는 건 너무나도 요원한 일인 겁니다.

정말로 복잡다단한 미래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려 한다면, 특정 분야에 구속되는 방향이 아닌 어떤 분야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근본적인 능력을 계발하도록 유도하고 권장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그러니 학종에서 말하는 공교육 정상화라는 것은 결국 현대판 노예제도를 부추기는 기만술책에 불과한 것이고, 전공적합성이라는 건 오히려 아이들을 고정된 형태의 기계 부속품으로 전락시켜 사회의 특정한 역할로 강제하는 반인격적이며 구시대적인 발상일 뿐입니다. 현대사회가 어떻다느니, 미래사회가 어떻다느니 운운하는 자체가 가소로울 뿐입니다.


학종은 정량평가의 단점을 보완한다는 명분으로 서류, 면접등의 정성평가를 활용합니다. 한 사람을 단지 시험 점수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고, 시험 점수로 드러나지 않는 그 사람의 재능과 장점, 단점을 발견하려면 그 사람에 대한 주변환경부터 성장과정까지 골고루 종합적으로 검토해 봐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렇지만 정성평가는 그 자체로 모범답안이 될 수 없습니다. 정성평가가 정량평가에 대해 지니는 결점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평가의 공정성과 명확성에 대한 시시비비는 정성평가가 꼬리처럼 달고 다닐 수 밖에 없는 근원적인 한계입니다. 더더군다나 우리 사회에서 대입이 차지하는 의미와 비중을 고려하면, 또 대학이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 계층으로 인식되기도 하는 특성상 대학의 공공성까지 고려한다면, 그 문턱은 더더욱 공정성 시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2000년 이후로 우리 사회에 유행처럼 번지는 각종 정성평가는 그 순기능보다는 사회분열과 불신을 야기하는 부작용만 드러내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게 각종 정성평가로 선발된 전문대학원생이나 공직자, 대학생 등이 기존의 정량평가로 가려진 사람들보다 더 인격적이고 도덕적이고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정성평가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 그런 바보같은 맹신과 추앙을 그만 둘 때가 되었습니다.

또한, 어떤 의미에서 대학의 신입생을 선발하는 방법으로는 정성평가보다는 정량평가가 더 적합할 수도 있습니다.
대학이 어떤 곳이며 무엇을 하는 곳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까지 끌어들이진 않겠습니다. 다만 대학은 어찌됐든 학문연구를 본업으로 하는 곳이라는 전제 하에서, 학문 연구에 필요한 자질을 정량평가로 가려내는 것이 옳지 못하다라는 인식에 큰 의문이 듭니다.
수능시험만 봐도, 수능시험의 애초 취지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그 이름대로 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한 기본 자질을 평가하는 사고력을 평가하는 시험이었습니다. 그것이 일련의 과정을 거쳐 학력평가형태의 정형화된 난이도도 높지 않은 뻔한 시험으로 변질된 것 뿐이지, 초기 수능시험을 보면 해당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언어논리를 가다듬고 특정 교과와 단원에 구속받지 않는 통합적인 사고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학습이 이뤄지게 유도하고 있고, 결국 문헌과 강의와 실험 위주로 구성되는 대학 교육의 현실에 오히려 최적화된 평가 기준이라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대학에서 필요한 인재는 정확히 읽고 논리적 인과관계를 추론할 수 있고, 그 내면의 깊은 뜻을 탐구할 수 있는 통찰력과 끈기를 지닌 사람이 아닐까요. 그런 덕목들을 과연 기존의 정량평가로는 판단할 수 없는 것일까요. 의문이 듭니다.

사회가 복잡다단해 질 수록 글을 보고 말을 들으며 세상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소화할 수 있는 추상적 사고 능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또 그것이 동물과 대비되는 인간이라는 종의 특성이며, 따라서 그런 방향이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죠. 인간이 인간다워질 때 비로소 사회가 건강해지고 개개인의 삶에도 가치가 더해질 겁니다. 대학에서 인간다움을 깨우치는 것을 강조하기는 커녕 기성제도에 굴복하는 꼼수를 교육과 공교육정상화라는 그럴 듯한 명분으로 전공적합/성실/책임/인격 등의 모호한 기만술책을 통해 자행하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뿐입니다.


누구나 옳다고 하는 것이 진정 그 자체로 옳은 것이기에 옳은 것이 된 것인지, 무비판적으로 동조된 영혼을 잃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인지 능동적으로 성찰하고 비판해봐야 합니다.
학종이 대세라해서 그것이 옳다는 의미가 될 수는 없습니다. 

많은 학교 현장에서 정시모집을 준비한다고 하면 담임이든 부장교사든 진학담당교사든 누군가가 따로 불러서 온갖 겁을 다 주면서 그런 생각 하지 말라고 회유한다고 합니다.
10만명 모집정원 정시모집은 꿈도 꾸지 말라하고 7만명 모집정원 학종이 대세라고 마음 고쳐먹으라고 합니다.
참 훌륭한 조언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정량평가로 판단하기 어려운 특이한 사례는 분명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런 학생이 전국에 몇만명이 넘을리가 만무하지요. 대부분의 경우에는 잘 설계된 정량평가로서 충분히 필요한 그 자질과 덕목을 가려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대학이라는 학문연구를 바탕으로 하는 교육기관에서 정량평가의 한계를 보완한다고 학생부종합전형이니 특기자전형이니 해서, 굳이 정성평가로 평가해야 할 필요가 크지 않은 학생들이 대부분인 현실에서 심층적으로 전공적합성을 판단한다며 정성평가에 지나치게 많은 비중을 할당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인 겁니다.
정량평가로 드러나지 않는 특별한 자질을 지닌 학생들은 전체 정원의 5% 이내의 심층정성평가로 이뤄지는 전형으로 별도로 선발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제도의 형태가 아니라 그 운영입니다. 훌륭한 정량평가는 어설픈 정성평가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것입니다. 정량평가의 단점은 개선된 정량평가로도 충분히 보완할 수 있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본인들의 단순한 편익과 기득권을 위해 학생들을 제도의 희생양으로 만들어버리는 횡포는 그만 두어야 합니다.
해외의 사례와 제도들을 허울좋게 포장해 무분별하게 맞지도 않는 우리 현실에 끼워 넣는 멍청한 가혹행위는 이제는 중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입시제도와 우리 교육현실에 관심 있으시면 아래 링크에도 방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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