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 “약대 입시 통합6년제 시행 늦출 수 없어” vs 교육부 “시기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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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 “약대 입시 통합6년제 시행 늦출 수 없어” vs 교육부 “시기상조”
현 2+4년제 … 약대 대학원 진학율 50% 감소, 자연과학과 30% 이상 자퇴
개방형 6년제 최대 수혜자는 학원 … 학교수업만으론 PEET 고득점 어려워
다양성·전문성을 갖춘 제약산업 인재 양성을 목표로 도입된 2+4년 약대 입시제도가 본래 취지와 달리 약대 대학원 진학율이 급감하고 자연과학 전공자가 학과를 대거 이탈하는 사태로 이어져 약대 및 이공계 교수들이 한 목소리로 학제 개편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7월 전국 35개 약대 협의체인 한국약학교육협의회(이하 약교협)는 2년간 다른 전공을 배운 후 3학년 편입생을 모집하는 2+4년 입시제도를 통합 6년제로 대체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서울대 약대는 의·치대처럼 고졸 신입생을 1학년으로 선발하는 학제 개편안을 약교협과 공동 추진하기로 했다. 한균희 약교협 상임이사 겸 연세대 약대 학장은 “전체 약대 중 31곳(88.6%)이 편입제 폐지와 고졸 신입생 선발에 찬성했다”고 말했다.
약교협은 오는 10~11월에 2+4년 약대 입시제도로 학과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공계와 학제개선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에 개방형 2+4년제의 허점이 다시 공론화되고 있다. 2+4년 약대 입시제도의 경우 4+4년 의학전문대학원 폐지 논의와 맞물려 2010년 첫 신입생을 모집하기 전부터 통합 6년제로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교육부는 “지난해 2+4년제 약대 졸업생이 처음 배출된 만큼 학제 개편은 시기상조”라며 부정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약대 입시제도는 2009학년도부터 기존 4년제에서 미국식 개방형 6년제인 2+4년제로 변경됐다. 2+4년제는 임상실습을 강화해 미국에서 시행 중인 의무약사 제도를 실현하고 제약산업을 육성하려는 목적으로 개편됐다. 의무약사제는 의사와 약사가 환자의 진단과 처방을 각각 분담하는 체계다. 약대에 가기 위해서는 다른 학과로 입학해 대학 2년 이상의 기초소양 교육을 이수하고 8월 말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PEET)에 응시해야 한다. 합격자는 PEET점수와 학점(GPA), 공인어학성적, 교내외활동 등을 종합 평가해 익년 1~2월 최종 선발된다.
이에 약대는 2009~2010학번 신입생을 받지 않고 2011년도부터 4년간 전공과정을 이수할 3학년 학생을 모집하고 있다. PEET 시험과목은 일반화학추론, 유기화학추론, 물리추론, 생물추론 등 4과목으로 나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약대 시험준비에 유리한 관련 학과인 화학과·생물학과·물리학과·화학공학과·생명공학과 등이 약대 입학을 위한 관문으로 전락해 서울 중상위권 대학과 지방국립대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2+4년 약대 입시제도는 다양한 전공과 경험을 가진 학생을 모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약사의 전문성을 강화시킬지는 의문”이라며 “개방형 약대의 유일한 수혜자는 사설학원뿐”이라고 말했다.
한균희 교수는 “수도권 주요 대학에 입학한 이공계생의 자퇴율은 2009년까지 약 2%에 불과했으나 2011년 첫 시행된 PEET로 인해 최근 30% 이상으로 늘었다”며 “실제 약대 입학을 목적으로 자퇴를 준비했던 학생은 더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약교협이 발간한 ‘6년제 약학교육의 학제 변화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연도별 수도권 주요 11개 대학 화학과 학생의 자퇴율은 2009년 2.2%에서 2010년 32.6%로 급증했다. 이후 2011년 42.7%, 2012년 37.7%, 2013년 33.9%, 2014년 36.0%로 30~40%대를 유지하고 있다. 일부 대학의 경우 재학생의 절반 가까이가 자퇴를 해 정상적인 수업이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규혁 약교협 이사장 겸 성균관대 약대 학장은 “올해 약대 입학 경쟁률이 10대 1을 육박해 약대 입학시험을 준비하며 허송세월을 보내는 응시생도 늘고 있다”며 “기숙학원까지 생길 정도로 사교육비 부담이 증가해 사회적 병폐가 되고 있다”고 현 학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올해 PEET 접수인원 1만6272명 중 선발인원은 1693명으로 경쟁률은 9.6대 1이다. 2011년 6.7대 1에서 재응시자 수 누적으로 해마다 경쟁률이 높아지고 있다.
PEET 시험난이도는 이과 계열 입시 중에서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시험인 의학교육입문검사(MEET), 5급 기술고시, 변리사 다음으로 어렵다는 게 다수의 평이다. 화학·생물·물리 관련 대학 선수과목을 충실히 들었더라도 시험 특성 상 독학으로 고득점을 받긴 힘들다. 대부분의 수험생이 사비를 들여 학원·인강을 이용해 약대 입학을 목표로 추가 공부를 하고 있다.
PEET 강의 커리큘럼은 크게 기본·심화 이론과 문제풀이 세 단계로 나뉜다. 주요 학원·인강 업체인 M사와 P사의 강의비는 과목당 각 단계마다 약 20~40만원대를 형성하고 있다. 범위가 가장 방대한 생물추론의 경우 심화이론 강의는 약 50만~80만원대에 약 100~190시간 이상 분량으로 진행된다. 생물 심화이론 강의에서는 대학 1학년 전공기초 과정인 일반생물학 Ⅰ·Ⅱ를 넘어 생물학과 전공 2~3학년 과목인 생화학, 세포생물학, 유전학, 동물생리학, 면역학 등도 일부 다룬다. 수험생은 생물추론이 PEET 점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 심화이론 강의를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반화학추론의 경우 중등교사 임용고시 화학과목의 난이도와 비슷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성진 이화여대 나노화학과 교수 “기초과학 분야 대학생 약 1만6000명이 입학 후 정상적인 대학생활을 포기한 채 2년 이상 사설 학원을 전전하며 PEET시험에 매달리고 있다”며 “이같은 사회적 혼란과 낭비는 미국 등 선진국의 약학사 제도를 무작정 도입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미국 대학시스템은 졸업생 수보다 많은 학생이 입학한 후 자유롭게 진로를 변경하거나 졸업할 정도로 유연하다”며 “교육부가 입학·편입 정원을 엄격히 통제하는 국내 대학의 경우 약대에 입학하기 위해 자퇴해 버리면 기초과학 대학은 텅 비어 황폐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초과학에 흥미를 가지고 들어온 학생조차 쉽게 60여학점(대학 2년 수료학점)만 채워 나가려는 약대 준비생들 탓에 수업분위기가 엉망이 돼 피해받고 있다”며 “기초과학의 심화과목들이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약대 입장에서도 2+4년제로 학원에서 예상문제만 주입식으로 공부해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이 주로 입학해 약학 연구를 이끌어갈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김학원 경희대 응용과학대학 부학장은 “약대 진학에 실패하면 전공 커리큘럼이 엉망이 된다”며 “약대 준비생 대부분은 커리큘럼을 무시하고 PEET시험에 직접적으로 도움되거나 학점받기 쉬운 과목 위주로 들어 3학년이 돼도 전공과목 이수한 것만 보면 사실상 1~2학년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최찬수 대전대 응용화학과 교수는 “약대를 준비하다 포기하고 다른 대학 화학과 등으로 편입학하는 학생이 많아졌다”며 “수도권 대학에서 약대 입학으로 자퇴한 학생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편입학 모집을 늘리다보니 지방대 기초과학 전공자 이탈률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2010년 PEET 첫 시행 당시만해도 일부 지방대 화학과 교수는 개방형 약대 6년제가 화학과 입학성적과 학생 충원율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는 이유로 약대 통합 6년제 개편에 반대했다.
손기호 경성대 약대 교수는 “약대 입시를 준비하는 많은 학생들이 PEET에 들어가는 범위만 달달 외운다”며 “PEET 시험점수만으로 학생의 발전가능성을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평했다. 손 교수는 “PEET 성적 외 다양한 경력을 입시에 반영하는 게 적합하다”며 “약대 입학 조건으로 요구하는 선수과목 외 전적 대학에서 전공과목을 잘 이수했는가 등 성실성 반영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에 서울대 약대는 2+4년제 제도 첫 시행 때부터 PEET점수보다는 다른 평가요소에 중점을 두고 신입생을 선발해 왔다. 수험생들 사이에선 PEET점수로는 최상위권에 속해도 나이가 많거나 전적대학 성적 등이 불리하면 서울대 약대 지원을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학계와 대한약사회는 기존 4년제에서 6년제 교육과정으로 변경한 취지에 맞게 다양성·전문성을 갖춘 약사를 양성하려면 개방형이 아닌 통합형 6년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손의동 한국약학회 회장 겸 중앙대 약대 교수는 “2+4년 교육과정은 절름발이 6년제”라고 비판했다. 약학 전문성을 높이려면 6년 교육과정을 꽉 채우고도 부족한데 현 교육과정은 2년의 교양과정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약학교육은 4년에 그친다는 의미다.
한정환 성균관대 약대 교수는 “신약을 개발하는 연구인력과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약사 배출 등 약학 교육의 목적이 다양하므로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전문 약사를 배출하려면 6년 교육과정은 필수”라고 설명했다. 최광훈 대학약사회 부회장은 “임상약학·사회약학 등 시대 변화에 따라 학문 범위가 넓어지면서 이론교육을 확대하고 실무력을 갖춘 약사를 양성하기 위해선 6년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약대 교수에게도 개방형 6년제는 연구자 육성보다 임상약사 배출에 더 초점이 맞춰져 학문을 이끌어갈 제자를 양성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서울대 약대 측에 따르면 과거 4년 학부를 마친 졸업생 중 60% 가량이 석사 과정을 밟았으나 2+4년제가 도입된 후부터는 대학원 진학률이 그 절반인 30%대로 떨어졌다.
한정환 교수는 “약대가 6년제로 바뀌고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 수가 절반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엔 4년 학부를 마치고 석사 과정을 밟았는데 지금은 학부를 마치려면 6년이 걸린다”며 “그러다보니 대학원에 진학하기엔 나이가 많다고 생각해 약사나 제약회사 등 다른 진로를 희망하는 학생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희순 충북대 약대 교수는 지난해 5월 다른 언론 인터뷰에서 연구역량 강화를 위해 고졸자를 대상으로 학부 신입생을 모집하되 대학원 형태로 연구와 실무·실습 부문을 분리해 운영하는 4+2년제 교육과정을 제시했다. 과거 4년 학부제에서 약사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실무·실습 교육과정 2년이 필수로 추가된 형태나 다름없다. 이 교수는 “개방형 6년제는 기존 약학교육에 실무교육만 얹은 꼴”이라며 “연구역량을 키우기에는 미흡하다”고 말했다. 그는 “4+2년제로 전환하면 기존 2+4년제보다 대학원 진학을 빨리 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가 제안한 4+2년제는 일본 동경대, 도쿠시마대 등이 시행하고 있는 약대 학제와 비슷한 점이 있다. 일본의 경우 약대생 전원이 6년간 공부해서 약제사가 되는 게 아니라 4년간의 공부만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회사에 취직할 수 있다. 4년 교과과정을 이수하면 학사 학위를 받는다. 약제사 면허를 취득하려는 학생은 2년간 별도로 실무·실습 교육을 받아야 한다.
지난 7월 전국약학대학학생협회 중앙운영위원회가 약대생에 통합 6년제로의 학제 개편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63.6%(1718명)가 전문성 증가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답변했다. 찬성한다고 응답한 학생들은 △보건의료인으로서의 약사 역할이 늘어날 것 △수도권대학 이공계 붕괴현상 및 PEET 준비로 인한 사교육 증가 △약대 대학원 진학률 감소 현상 해결 △동물약, 헬스커뮤니케이션, 한약학 등 약사의 다양한 업무 영역에 대한 심도 있는 공부 가능 등을 예상했다. 이밖에 급격한 학제 변화보다는 통합 6년제로 전환하는 학교 수를 점차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반대라고 응답한 학생들은 △2+4년제가 시행된지 얼마되지 않아 유예기간이 필요하다 △전적대에서 2년 이상 이수한 학생 서로간 다양한 경험과 지식이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통합 6년제가 된다고 약대 대학원 진학률이 높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PEET시행 후 해가 갈수록 입학연령이 어려지고 있다 등을 그 이유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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