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스텀 [654172] · MS 2016 · 쪽지

2016-11-26 2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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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간의 회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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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은 건 올해 3월 경이었습니다. 먼저 준비하던 시험에서 고배를 마시고 침잠해있던 차에 갑작스럽게도 수능을 봐야겠다 하는 결심을 했습니다. 

처음 한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수능 기간은 내 이십 몇년의 인생에서 가장 치열했고 빛났던 기간이었거든요. 내리막길 같던 이십 중반의 생에서 수능을 다시 보는것은 종종 마지막 탈출구처럼 느껴지곤 했습니다. 


처음 한 일은 인강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예전 신세졌던 선생님들이 아직도 계시는 것에 놀랐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한석원 선생님 인강과 윤도영 선생님 인강을 골랐습니다. 장바구니에 담긴 인강은 술의 힘을 빌려서야 겨우 결재 할 수 있었습니다. 또 마침 운이 좋게도 학교에서 수능 공부를 하는 스터디도 구할 수 있었습니다.

1학기엔 학교를 다니며 수능 공부를 했습니다.

수학과 과탐을 중점적으로 들었고, 중간중간 ebs영어 수능특강을 봤습니다. 일단 고등학교 수학이 많이 생소해서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대학에서 배운게 있으니 생물1 화학1 정도는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큰 오산이었습니다. 고등학교 과학은 과학 시험이라고 볼 수가 없게 바뀌었더군요. 생물 화학 교수님도 수능 시험에선 30점을 넘기기 힘들다고 확신합니다. 철저한 패턴화와 기출 분석이 필요한 것을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이 기간 가장 힘들었던 것은 때때로 찾아오는 자괴감이었습니다. 자괴감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도서관에서 공부를 해서 생겼던 것인데, 중앙도서관에서 수능 책을 펴고 있으면 남들은 행시며 임고며 전공 공부며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나는 고등학교로 후퇴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이럴 때는 나는 이걸 공부로 하는게 아니라 재미로 하는 것이다 하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곤 했습니다. 실제로 고등학생 때와는 달리 공부하는게 훨씬 재미있긴 했고 그게 유일한 마음의 위안이었습니다.


학기가 끝나고 과감하게 학원에 등록했습니다. 금전적으로 큰 출혈이었지만, 배수의 진을 친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입학시험으로 영어와 수학을 봤는데, 천운이 따랐는지 합격했고, 이십대 중반에 처음으로 재수학원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탐구 개념강의를 간신히 완강하고 6월 평가원을 인쇄해 풀었습니다. 결과는 정말 처참했습니다. 언어 외국어는 다행히 많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수학은 4등급이 나왔고 탐구는 어떻게 문제에 접근할지를 몰라 시간 내에 다 풀수조차 없었습니다. 

특히 수학이 충격이 심했습니다. 29번과 30번을 거의 30분이 넘게 수박 겉만 핥다가 틀렸고, 계산 실수를 연발해 생전 처음 맞아보는 등급이 나온 것입니다. 만약 학원을 등록해놓지 않았다면 이 시험을 보고 수능을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국어는 문법에 지식이 거의 없었습니다. 제가 수능을 볼때에는 (그때는 국어가 아니라 언어영역 이었어요.) 문법 문제의 비중이 거의 없었던지라 문법 공부를 해본 적이 없어서 간단한 품사 구분이나 형태소 분석도 할 줄 몰랐습니다. 때문에 문법 문제는 제시문에 나와있는 정보를 기반으로 찍는 식으로 풀 수밖에 없었고, 모의고사마다 항상 3개씩은 틀리곤 했습니다. 

학원 교재와 수능특강 문법 인강을 들으며 해당 내용을 정리하고자 했지만 잘 되지 않았고, 다른과목 공부할 시간조차 부족해 학원 진도만 간신히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수학은 알파테크닉을 완강했지만 수능 수준 문제를 접근할 실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자명했습니다. 기초가 부족한 것이 확실했지만, 시간상 개념을 다잡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고, 학원 교재와 크리티컬 포인트 책을 독학했습니다. 크포는 그땐 정말 너무 어려워서 한시간에 3문제 정도가 평균 속력이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 무식하게 진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어는 수능특강을 구문 정리를 하며 꼼꼼히 봤습니다. 모르는 단어는 영영사전을 이용해서 외웠습니다. 상대적으로 영어는 대학에서도 공부를 했기에 큰 시간 투자는 하지 않았습니다.

탐구가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화학1과 생물1을 하고자 했지만 나이와 체력을 생각할때:: 수능 마지막 시간에 머리를 풀회전해야하는 이 두과목을 하는 것은 힘들어 보였고, 어차피 베이스가 없으니 무슨 과목을 하던 똑같으리라는 생각에 6월 말에 지학1을 시작한 것입니다. 지학1은 김지혁 선생님 인강을 선택했고 프패를 끊고 그냥 무식하게 하루에 2강씩 개념 강의를 들었습니다. 생물은 7월까지 수능특강을 8월 초까지 수능완성을  다 끝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7월 8월에 본 학원 월례고사는 전체에서 절반에 들락말락한 등수였습니다. 목표에 비해 너무나 부족한 결과였지만, 성과가 나올만한 공부량이 아니었기에 그저 속으로만 애를 태웠습니다. 대학 생활을 하며 박살이 난 생활 패턴을 이를 악물고 바꿔가며 여름을 보냈습니다. 무덥고 힘들었던 여름을 버텨내니 어느새 9월 평가원 시험이 다가왔습니다. 

모든 과목에서 개념서를 한번 기출을 한번 수능특강과 수능 완성을 한번식 끝냈으니 아무래도 조금은 기대가 되긴 되더군요. 무엇보다 최근 몇년간 이렇게 열심히 산 적이 없었던 터라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 상태였습니다. 

국어 문제지를 앞에 놓고 두근거리며 오엠알 카드에 수험번호를 적었고, 이윽고 수험 종이 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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