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아저씨 [444924] · MS 2017 (수정됨) · 쪽지

2017-03-22 23:39:35
조회수 7,772

5수, 시켜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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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군인이다.



첫 번째 수능을 본지 어느덧 3년이 지났고, 두 번째 수능을 본지도 2년이 넘어버렸다.


썩 만족스럽지 못하던 결과였지만,


이제 다 지난 일이었다.


아니, 지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작년 수능날에 생활관 침상에 누워서 뉴스를 보면서도, 다 추억이라고 생각했었다.




몸이 힘들다는 핑계 속에 나는 하루하루를 그저 지나보내는 것에 급급했고


어느새 전역은 미래가 아니라 현실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전역 후에 뭐하지?


라는 생각에 할 일 목록도 만들어봤다.


핸드폰과 옷을 사고, 친구들과 여행을 가고, 복학하기 전에 운동도 좀 해야지.




소모적인 일들에 대한 것들만 가득했다.


뭔가.. 부족했다.




그러다 문득, 포기했던 수능이 생각났다.


하고싶은 걸 생각하다가 갑자기 수능이라니..


이미 잊었던 것이었고, 잊기로 했던 것이었는데.




재수를 마쳤을 때 남은 것은 '그래도 열심히 했다'라는


쓸쓸한 자기위안 뿐이었다.


그렇게 대학을 갔고, 만족을 하지 못했던 나는


부모님 몰래 세 번째 수능을 준비했었다.


그러다 갑자기 아버지가 해고에 가까운 권고사직을 당하시며


가정형편이 어려워 졌었다.


나는 바로 군대에 지원을 했고 한 번에 붙어버렸다.


그렇게.. 입대를 했다.




부모님은 가정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입대를 한 줄로 알고 계신다.


나도, 그렇게 스스로를 속이고 입대했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도망을 친 거였다.


수능으로부터의 도망.


두려움으로부터의 도망.


노력해도 내게 다가오지 않았던 수능으로부터,


또 실패했을 때의 두려움으로부터,


나는 그렇게 도망치듯 입대를 했었다.


그리고 기억에서 수능을 지웠다.


고 생각했다.




수능 생각이 한 번 난 이후로는 이게 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아니, 이유를 모르지는 않았다.


누구도 5수를 응원해주지는 않을 것이고


내가 생각해도 입시판에 다시 뛰어든다는 것은 비효율적인 짓인데


이게 미친듯이 하고 싶은 거였다.


주변의 시선과 효율 따위는 제쳐두더라도 나는 수능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가장 걱정이었던 것은 다름아닌 실패였다.


실패했을 때 다시는 일어나지 못 할까봐.


'하고 싶은 마음'과 '두려워 하는 마음' 사이에서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다 이런 글귀를 봤다.




인생에서 가장 슬픈 세가지.

할 수 있었는데,

해야 했는데,

해야만 했는데.




어디서 많이 본 글귀였는데도


한참을 쳐다 본 것 같다.







나는 5수생이다.


가슴이, 시켜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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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올리고 나서는 분명히 조회수가 얼마 안 됐는데


깜짝 놀랐네요. 이렇게 많이 보실 줄은..


일기라고 생각해서 편하게 썼는데


반말 거슬리신 분들 계시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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