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Müller [427516] · MS 2012 · 쪽지

2016-09-26 15: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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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숲이 또.. ㅋㅋㅋㅋ.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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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2번째포효

누나, 있잖아요, 며칠 전에 우리학교 수시원서 접수가 끝났대요. 그래서 반수할 때가 문득 생각 났는데, 다시 누나가 아른거려서 큰일이에요.

누나, 작년에 다니던 학교에서 누나랑 같이 2인1조로 팀플을 했죠. 누난 재수를 해서 나보다 한 살이 많았고,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는 나를 보고 제발 말 좀 놓으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결국 놓지 못했던 것도 기억나네요. 사실 누나가 엄청 저한테 관심을 줬잖아요. 밥도 같이 먹자 하고, 옷도 골라달라 하고, 나 소개팅 나가지 말까? 라고 묻기도 하고, 오늘 길에서 누가 번호를 물어봤다며 던져놓고 내 눈치를 흘끔 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누나, 난 키가 작고 잘생기지도 않아서 그렇게 예쁘고 인기도 많은 누나를 안을 자신이 없었어요. 반수도 할 생각이었고. 그래서 계속 밀어내고 답장도 늦게 하고 약속도 잘 나가지 않은거에요. 그런데 학교 앞에서 내 손을 꼭 잡으며 그만 밀어내라는 누난 도저히 밀어낼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사람 다 지나다니는 그 곳에서 어림잡아 10분은 꽉 껴안고 있었잖아요. 그 때 내 심장이 얼마나 빨리 뛰었으면 누나가 날 놀렸겠어요.

누나, 그리고 반수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누나 덕분이기도 해요. 주말에 학원 앞에서 잠깐 보기 위해 예쁜 원피스를 입고 화장을 하는 누나에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어요. 딱 한 번, 롯데월드로 놀러간 적이 있죠. 놀이기구들의 조명과 눈부시게 아름다운 누나가 겹쳐서, 누나에게 정말 사랑한다고 말한 그 말은 아직도 석촌호수 어딘가에 남아 있어요. 고대에 합격한 후 제일 먼저 연락한 것도 누나고, 눈물을 흘려준 사람도 누난데 다 예전 일이 돼버렸네요.

누나, 올해 우리학교도 자주 놀러오고 우리 입실렌티도 같이 봤잖아요. 손을 꽉 잡은 채 가수들 공연도 보고 나한테 응원가랑 춤도 배웠잖아요. 나의 처음 입실렌티에 누나가 있어서 정말 행복했어요. 근데 왜 6월달과 우리 연애는 같이 끝난건가요. 왜 7월은 나 혼자서 맞이했던 걸까요. 우리가 같이 본 달이 너무 예뻐서 그랬던건가요. 난 사실 아직 답을 잘 모르겠어요. 그 전 주까지 날 사랑한다고 말했던 누나가 일주일만에 어떻게 마음을 정리했는지 잘 이해가 안 돼요.

누나, 그래서 나 엄청 막 살았어요. 누나랑 헤어지고 일주일 동안은 아무것도 못 먹고, 알람 대신 꿈 속의 누나 목소리를 듣고 새벽에 벌떡 깼어요. 일주일 뒤에는 술을 엄청 마시기 시작했어요. 늘 전원을 꺼두고 마셨죠, 혹시라도 누나한테 전화해 추태라도 부릴까봐. 다행히도 카톡을 보낸다거나 그런 추한 짓은 하지 않았어요. 한 달동안 살이 몇키로나 빠지고, 해외여행도 취소하고, 알바도 겨우겨우 나가다가 사장님께 혼이 나고, 친구들한테 정신 좀 차리라며 구박도 받았어요. 내 여름방학은 그렇게 누날 원망하고 사랑하며 지나갔어요.

누나, 나 지금은 꽤 괜찮아요. 미팅도 한 번 나갔고,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틈틈이 하고 그래요. 누나가 좋아하던 아메리카노 맛을 서서히 알아가기도 하고, 이제 누나랑 먹던 학교 음식점을 가도 괜찮아요. 롯데월드 사진을 봐도 그럭저럭이에요. 나 전에 다니던, 그리고 지금 누나가 다니는 학교도 몇 번 놀러갔었는데. 아 맞다, 누나가 고연전 같이 가자고 했잖아요. 자기도 응원가랑 춤 너한테 배웠으니 괜찮다고. 우리가 이번에도 이겼는데, 누난 그 소식을 들었을까요? 농구도 누나랑 봤으면 좋았을텐데 조금 아쉽긴 해요.

누나, 나 군대도 신청했어요. 내년 초에 갈 수 있게끔. 저번 학교에 있던 동기를 통해 어찌어찌 들었는데 누나는 내년에 교환학생을 간다네요. 영국 어딘가로. 누나가 원하던거라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영국에서도 누난 예쁠거에요.

누나, 나 사실 누나가 많이 보고 싶어요. 페이스북 검색으로 누날 찾아보기도 하고 차단했던 누나를 풀어서 프로필 사진을 매일 확인해요. 요새 저번 학교로 자주 놀러가는 것도 , 누날 마주칠 우연을 억지로라도 만들기 위해서에요. 누난 어쩌면 이 글을 볼지도 모르겠어요. 그럼 난 줄 단박에 알아차릴텐데. 누나가 싫어할 수도 있다는거 알지만 미안해요, 내가 이기적이어서. 누나, 이번에는 밀어내지 않을테니 그 때처럼 밥 먹자는 연락을 해주면 안될까요. 난 누날 다 지워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었나봐요. 난 아직 6월의 여름 안에서 누날 찾으며 헤메이고 있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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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창... 죽창을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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