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의 도화선 중 하나, 4.18 고대생 습격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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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이후 한동안, 조직폭력배는 정치깡패로 활동했다. 해방 직후의 좌우 대립과 이승만 독재정권을 배경으로 이정재 등 정치깡패들은 마치 정치가 본업인 듯 정치무대를 활보하고 다녔다. 선거 유세장과 전당대회 같은 곳이 이들의 '근무지'였다. 이런 곳에서 이들은 주먹을 들고 각목을 휘두르며 조직을 유지하고 생계를 지켜나갔다.
이런 가운데 정치깡패 시대에 종막을 고하는 결정적 사건이 있었다. 1960년 4·19 혁명 와중에 벌어진 '고대생 습격 사건'이다. 이 사건은 한국 조폭이 정치깡패 시대에서 다음 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분수령이 되었다.
물론 4·19 이후로도 정치깡패들은 여전히 있었다. 1987년 용팔이 사건(통일민주당 창당방해 사건)이 그중 하나다. 하지만 주 무대는 아니었다. 4·19 및 5·16 이후의 산업화 시대에 조폭들은 주로 유흥업소를 무대로 활약했다. 용팔이 사건 같은 것은 4·19 이후에는 예외적인 모습이었다. 그래서 4·19는 한국 조폭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승만 정권이 저지른 3·15 부정선거에 대한 국민의 저항이 절정을 향해 치닫던 때였다. 때는 1960년 4월 18일 월요일이었다. 금년 2016년처럼 56년 전의 4월 18일도 월요일이었다. 1960년 4월 19일자 에 따르면, 4월 18일 오후 고려대생 천여 명이 주축이 된 시위대가 지금의 서울시청 건너편인 서울시의회 청사 앞에 모였다. 당시에는 이곳이 국회의사당이었다.
시위대 속에는 고려대생 천여 명 외에도 3천여 명이 더 있었다. 3천여 명 속에는 중고등학생들도 있고 다른 대학 학생들도 있었다. 이들은 구속자 석방과 민주화를 외쳤다. 학생들 중에는 "대통령 나오라!"고 외치는 이들도 있었다.
학생 시위대를 해산할 목적으로 여러 명의 '어른'들이 급파되었다. 이승만의 독재를 도운 장택상 전 총리가 마이크를 들었다. 그러자 학생들은 "듣지 말자!"고 고함쳤다. 그러자 사회주의자 출신의 법학자로서 친일 경력도 갖고 있어 민족문제연구소의 에 등재된 유진오 고려대 총장이 마이크를 집었다. 그러자 학생들은 "집어치워라!"라고 고함쳤다.
그런 다음, 고려대 출신인 이철승 의원이 나섰다. "나 이철승이다"라며 "가슴 아프고 눈물 난다"는 첫마디로 연설이 시작되자, 그제야 시위대의 분위기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철승은 후일의 투쟁을 기약하자면서 시위대를 돌려보내는 데 간신히 성공했다. 이때는 저녁 일곱 시가 좀 넘은 뒤였다. 해는 이미 기울어 있었다.
3만4천명의 시위대와 싸운 100명의 정치깡패들
이철승의 회유로 분위기가 가라앉은 시위대는 해산식을 가질 목적으로 애국가와 교가 등을 부르며 고려대 쪽으로 행진했다. 국회의사당 앞을 떠난 이들은 서울시청과 을지로 2가를 지났다. 시청 앞에서부터는 3만 명의 시민들이 학생 시위대에 가담했다.
시위대가 종로4가에 진입했다. 이들이 천일백화점을 지날 때였다. 오늘날 이 주변에 있는 유명 장소들 중에는 청계천, 종묘공원, 옛 세운상가, 광장시장 등이 있다. 시위대의 선두 그룹이 백화점 앞을 지나려 할 때, 어둑어둑한 속에서 갑자기 이상한 물체들이 나타났다. 100여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었다.
위의 기사에 따르면, 건장한 남자들은 부삽·갈고리·몽둥이·벽돌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른바 정치깡패들이었다. 학생과 시민을 합쳐 약 3만4천이나 되는 시위대를 향해 100여 명의 정치깡패들이 달려들었던 것이다.
소수의 정치깡패들은 시위대의 기를 꺾을 목적으로 선두에 선 학생들에게 무자비한 테러를 가했다. 흉기를 들고 학생들의 머리와 가슴을 마구 찍어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대생 습격 사건이다. 난데없이 벌어진 이 사건으로 학생 10여 명이 중상을 입고, 기자 세 명과 경찰관 여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습격을 받은 학생들은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그쪽은 100여 명이고 이쪽은 3만4천명이었으니, 손에 든 흉기가 없더라도 해볼 만한 싸움이었다.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지는 속에서, 일부 학생들은 흉기를 빼앗아 깡패들을 제압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또 다른 시위까지 촉발했다. 시위대의 본진에서 이탈한 일부 중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은 깡패들로부터 빼앗은 몽둥이를 들고 "경찰의 비호를 받는 깡패들이여 나오라!"며 새로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학생 시위대가 깡패들을 찾으러 다니는 형국으로 바뀐 것이다.
정치깡패들이 흉기를 들고 학생들에게 테러를 가한 이 사건은 이승만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한층 더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것은 다음 날인 4월 19일의 시위를 더욱더 격화시키는 촉매제가 되었다. 이승만 정권이 권력 유지를 목적으로 고용한 깡패들이 도리어 정권을 약화하는 악수로 작용한 것이다.
습격사건을 주도한 정치깡패들은 대한반공청년단 소속이었다. 3·15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자유당이 조직한 단체였다. 이 단체의 대표는 의외로 인텔리였다. 신도환이라는 인물이었다.
신도환은 유도를 잘했다. 유도 명문인 대구 계성고등학교에서 졸업반 때 3단을 땄다고 한다. 그 뒤 일본 메이지대학 및 도쿄대학과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뒤 대한청년단 단장에 취임했다. 4·19 이후에는 신민당 출신 국회의원으로 변신해서 5선의 경력까지 쌓은 인물이다.
자유당을 지지하는 정치깡패들은 4월 혁명의 열기를 잠재우고자 주먹도 쓰고 흉기도 휘둘렀지만, 국민의 혁명 열기를 잠재우기는커녕 도리어 그 열기 속에서 힘을 잃고 만다. 이승만 정권의 붕괴와 함께 자신들의 전성시대가 끝나는 것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정치깡패들의 존립 기반이 이승만과 자유당이었으니, 이승만·자유당의 몰락과 함께 그들도 몰락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오마이뉴스 기사 "시위대 잘못 건드린 '정치깡패'들의 운명"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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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월 들어 개학한 대학가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다. 긴장한 경찰은 사찰 형사들을 각 대학에 잠입시켜 학생들의 동태를 살피게 했다. 그러나 대학교들을 감시한다고 해서 시위를 예방할 단계는 이미 지나 있었다. 대학 곳곳에서 시위가 모의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고려대생들이었다. 4월16일로 예정된 신입생 환영회날 시위에 나서기로 묵계가 되었다. 낌새를 알아차린 학교에서는 환영회를 4월18일로 연기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결심은 그럴수록 더 굳어졌다.
4월18일 오후 1시 학생들은 인촌 동상 앞에 모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3000명이 모였다. 곧바로 선언문을 낭독한 학생들은 안암동 사거리로 나왔다. 경찰의 산발적인 저지망을 뚫고 고대생들은 태평로 국회의사당(지금의 서울시의회) 앞으로 나아갔다. 수천명의 중고생과 시민들이 합류해 오후 5시쯤에는 시위대가 3만명으로 불어났다. 유진오 고대 총장이 직접 나서 시위를 중단하라고 설득했다. 연행된 학생들이 모두 석방되었다는 유 총장의 말을 믿고 학생들은 학교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오후 6시40분쯤 고대생들과 수만명의 중·고교 학생들, 시민들이 함께 을지로4가 쪽에서 종로 쪽으로 방향을 틀 무렵 100여명의 정치깡패들이 시위대를 습격했다. 학생들이 그들과 맞서 집단난투극이 벌어지자 정치깡패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경찰은 이들을 한명도 잡지 못했다. 아니 잡지 않았다.
이튿날 는 “벽돌과 몽둥이, 쇠뭉치, 갈고리 등을 들고 느닷없이 우리를 습격했다”는 고대생들의 증언과 함께 이날 부상자가 41명이나 된다고 보도했다. 더구나 경찰의 보호 속에 귀교하던 고대생들이 깡패들에게 공공연히 테러를 당했는데도 경찰이 한명의 범인조차 잡지 못했다는 기사와, 폭도들에 의해 부상당해 거리에서 신음하며 쓰러져 있는 학생들의 사진을 본 시민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4월19일 아침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4·19 혁명’은 그렇게 일어났다.
(한겨레 기사 "[길을 찾아서] 1960년 4월19일 ‘피의 화요일’"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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