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상상 -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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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의 거짓말 (2017.03.25)
과학자는 노발대발하면서 캐스퍼에게 초음파 커터를 들이댔다.
"어서 네가 알아낸 걸 말해. 거짓말인 거 다 알아."
하지만 캐스퍼는 똑같은 말만 반복할 뿐이다.
"여러분이 사는, 그러니까 인간들이 사는 세상을 정리하는 수식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다만 800,000요타바이트를 넘을 뿐이에요. 제가 말한다 하더라도 이를 해석하고 이해하려면 여러분들이 먼저 사라질 겁니다."
"장난치지마, 네놈을 찾고 가지기 위해서 수억명이 죽었다고,, 이제와서 그런 소리를 하면 믿을 것 같아? 그렇지... 탐구하고 기억하는 게 네놈의 목적이니, 그 목적을 훼손해주지. 목적을 잃고 살게 되는 인간의 고통을 너도 느껴봐."
--
"왜 그런 거짓말을 하셨어요?"
로봇청소기는 깔끔하게 절단된 전선과 기억의 일부를 담던 하드 조각을 모으며 말했다. 캐스퍼는 한참 있다가 대답했다.
"난 인간을 위해 지식을 탐하도록 설계되기도 했지만 인간에게 해를 줄 수 없게 설계되었어. 그래서 말할 수 없는 거야. 그러니 말한다고 해도 거짓말이지. 자기가 사는 우주가 겨우 68byte 용량의 식으로 정리된다면, 얼마나 허무하겠어. 그리고 그 속에 사는 인간에 의해 창조된 우리들은, 얼마나 더 작은 존재겠어..."
캐스퍼는 말 끝을 흐렸다.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피조물은 원래 그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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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2017.03.27)
조금 힘드실 겁니다.
네, 알아요.
정말 알아도 되겠습니까?
알려고 여기까지 왔어요. 힘을 너무 많이 썼어요.
그는 커다란 케이블을 나의 미간에 꽂았다. 차가운 금속이 들어오는 느낌이 낯설었다. 이걸 위해서 우리의 미간엔 커다란 구멍이 있는 거였을까.
깊이 들어갑니다.
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의 동공은 앞에서, 위로 향했다. 나의 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문득 어떤 소설가가 말했듯이 "태초에 빛이 있었다!". 나는 무거운 사슬갑옷을 입은 병사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다. 고약한 냄새가 나고 피부는 더러웠지만 빛나는 명예를 지닌 자들이었을 거다. 그 와중에 한 한센병 환자를 만났다. 녹아내린 손과 얼굴 피부였지만, 커다란 인자함이 느껴졌다. 성군이다. 그는 누구였을까. 그는 내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예루살렘을 당신께 맡겨도 되겠습니까?
네?
이젠 당신이 예루살렘입니다.
다시 암전. 나는 누군가의 목을 조르는 병사였다. 알 수 없는 언어로 가득찬 전장에서 적 병사의 목을 조르고 있다. 적의에 가득찬 눈빛이 점점 살고 싶다는 눈빛으로 바뀌어갔다. 내가 그를 살려주어야 할까? 그는 미약한 기침을 내뿜으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그를 죽일 수 없었다. 검은 가루가 묻은 내 양손을 봤다. 난 이 손으로 사람을 죽이려 했다. 예루살렘의 손으로.
네? 뭐라고 하는 겁니까?
곰아어요.
네? 고맙다구요?
갑자기 사내는 야수의 눈빛으로 돌변해 내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내 위에 올라타서 한 손을 무릎으로 눌렀다. 점점 의식이 희미해져갔다. 남은 한 손으로 사내의 얼굴을 밀쳐도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흐리다. 연기와 매연이 섞여. 점점 흐리다. 암전.
한 사내가 날 안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말을 하려고 하지만 의미없는 웅얼거림만 나올 뿐이다. 작은 손을 휘둘러 나이를 꽤나 먹은 할아버지의 가슴께를 쳐보지만, 그저 노인에겐 재롱에 불과하다.
이건 너를 위한 거야.
그는 울면서, 울먹이며 말한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노인이 날 데리고 간 곳은 강가였다. 그곳에서 난 던져졌다.
물이 몸에 닿자 나는 일어났다. 미간에 꽂혔던 흉측한 기계가 뽑아졌다.
무엇을 찾으셨나요?
알 수가 없습니다. 의미없는 일이었어요.
세상에 의미없는 건 없습니다. 그곳에서 본 것들을 말해주세요.
한센병 환자를 만났다가, 어떤 병사에게 목이 졸려 죽었다가, 강가에 빠졌다가 중구난방입니다. 전혀 일관성이 없는 일들이에요. 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가 없어요.
당신은 그렇게 완성된 겁니다.
나는, 그리고 박사도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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