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463916] · MS 2013 (수정됨) · 쪽지

2017-03-22 02: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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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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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군대를 가고나서 어머니께는 특별한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건 내가 면회할 때나 휴가를 나올 적이면 항상 어디선가 딸기 한 소쿠리를 들고오시는 것. 딸기를 적잖이 좋아하는 나이긴 하지만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두세번 입에 가고나면 언제 그랬냐는듯 그냥 외면하기 마련인게 사람이지요. 그래 면회할 때 그렇게 딸기를 들고오시면 처음에 대여섯개는 입에 갖다대는 시늉을 하다가 이내 다른 기름진 햄버거, 피자 따위를 먹고는 그저

ㅡ어휴, 뭐 다른걸 많이 먹으니까 딸기는 이제 못 먹겠다. 뭐 이래 많이 들구 오셨어요.

라는 말로 능청스레 집에 다시 가져가기를 어머니께 요구하고 부대로 복귀하곤 했습니다.


 오늘도 휴가를 나온 밤, 어머니는 퇴근하면서 또 딸기 한 소쿠리를 사오셨습니다. 면회 세번에 휴가 세번이니 이제 나는 군대 가고서는 여섯번째로 딸기를 대접받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와 간단하게 만둣국으로 술자리를 하고 어머니는 언제나 나를 보면 그랬듯 후식으로 딸기를 준비하시다가는 대뜸 딸기만 보면 나의 생각이 난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동안 어머니께서 항상 나에게 딸기를 사와주시던 것이 불현듯 생각이 나 무슨 말씀이냐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건 내가 여섯 살 때의 이야기랍니다. 여섯 살의 나는 가족과 아파트 근처 지하에 있던 마트에서 찬거리를 찾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제법 큼지막한 소쿠리에 담겨있던 딸기들이 그렇게나 가지고 싶었나봅니다. 여섯 살의 나는 딸기를 사달라고 하면 '딸기는 나중에 사줄게'하며 후일을 기약할 게 뻔한 엄마아빠 생각이라도 했던지 그 딸기 소쿠리를 들고 계산대 아주머니의 눈을 피해 집에 자랑스레 가져가 두었답니다. 갑자기 이 여섯 살짜리 떼쟁이가 어떻게 가져온건지 적잖이 당황한 어머니가 이건 도둑질이야, 다음부터는 그러면 안돼, 하며 다시금 나를 이끌고 그 마트로 가 계산대 아주머니께 저희집 아들이 이걸 계산도 안하고 가져왔다고, 당신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연신 죄송하다 하시며 딸기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때 내가 과연 그 아주머니께 사과를 했는지 안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것이 아닌데도 가게에서 함부로 물건을 들고올 정도의 성깔이었다면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내가 뭘 잘못했나, 하며 눈만 꿈뻑거리다가 다시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가기만 했었겠지요.


 그 뒤로 어머니는 어쩌면 이제 집에서 보이지 않는 큰아들, 딸기를 찾아다니며 당돌하게 현대판 딸기서리를 감히 감행하였던 큰아들의 모습을 딸기에서 찾았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입대식 날에 나를 안고는 애써 한 화장이 다 번지도록 슬프게 우셨던 어머니. 그 어릴 적의 큰아들이 그렇게 바라마지않던 딸기는 어머니께는 저멀리 떨어진 나를, 당신이 걱정하든말든 안부전화 하나 짜게 굴며 연락 한번 하지 않던 나를 당신과 이어주던 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섯 살때처럼 딸기에만 매료되지 않는, 아니 이제는 딸기에는 여섯 살의 관심을 아주 끊어버린 23살의 청년은 이제 집에 냉장고에 딸기가 있었든, 면회할 때에 준비해온 음식에 딸기가 있었든 상관을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의 주근깨 가득한 얼굴같은 그 딸기들은 나의 무관심 속에 썩어버려, 지금은 이제 어디로 갔을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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