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우리불끄자 [539506] · MS 2014 · 쪽지

2015-02-01 02:31:32
조회수 369

20년대 만주무장투쟁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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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공부했던거 올려보아요 이야기형식으로 정리했어요(몰입도높게) 10년대에 이어 20년대 만주무장투쟁 끝장내기

북간도에서 만들어진 대한독립군과 홍범도에대해 이전글에서
설명했습니다 대한독립군은 의병출신과 북간도의 한국인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군대인데요 홍범도는 3.1운동이후에 국내진공작전을 위해 북간도지역
으로 이동했는데 그때 북간도에있던 기독교계열인 대한국민회의 지원을받아
대한독립군이라는 부대를 만듬니다 (1919)

이렇게 만들어진 대한독립군은 일본군을 압록강을건너 궤멸시켰습니다 이게 3.1운동이후\
최초로 전개된 국내진공작전이고.. 여러차례 일본군을 섬멸했죠
이후에 1920년 최진동이 이끄는 군무 도독부군과 또 후엔 대한국민회의 국민회군과 연합하여
봉오동에서 큰 승리를 하게 되는거죠 이게바로 봉오동전투입니다 (1920)

이렇게 봉오동전투등.. 여러차례 일본군이 패하자 이에 일제는 중국에 마적단의두목과 내통하여
훈춘의 일본영사관을 일부러 공격하도록 했죠 이 사건을 구실로 삼아 일본은 대규모 군대를 파견하죠
하지만 이소식을 미리알았던 독립군부대들은 북로군정서군과 합류. 청산리에 도착하여 백운평부근에서 매복
하여 일본군을 궤멸시켰습니다 후에도 어랑촌등 여러차례 접전끝에 독립군 최대전과를 세웠죠 이게청산리전투입니다(1920)
이 전투에 참가하 군대로는 북로군정서와 홍범도가이끄는 대한독립군과 의민단등 여러부대들이 연합한 전투입니다

또한 훈춘사건을 구실로 봉오동.청산리전투에대한 보복으로 일본은 독립군토벌을 명목으로 그지역에
살고있던 간도하인촌에대한 일본군의 학살과 방화가 있었죠 이게 간도참변또는 경신참변이라 불리웁니다 (1920)

또하 일본은 청산리.봉오동전투에대한 보복작전을 전개하였습니다 이에 독립군은 이를 피해 소련과만주의 국경지대로
모였습니다 (1920) 총재로는 서일이 임명되었고 부총재에 홍범도.김좌진 여단장에 지청천..등이 추대되었습니다
후에 12월말 대한독립군단은 러시아령인 자유시로 이동하였습니다 여기서
러시아군의 원조로 무기를 보충하였고 때로 작전에 참여하기도 하였죠

그러나 러시아혁명후 일본의 강력한 압력에 굴복한 러시아는 일본군과의 마찰을 우려하여 독립군에게 무장해제를 강요
하였습니다 이에 저항한 독립군을 학살한 사건이 흑하사변,일명 자유시참변입니다 (1921) 결국 대한독립군단은 해산됬죠


이렇게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여러 무장투쟁들을 전개하였는데, 이때 남만주지역에 자유시참변후 흩어진 부대들을 통합한 대한통의부라는 단체가있었죠 근데
그 내부에 가치와 사상들이 다 달랐고.. 결과적으로 해체위기를 맞게됩니다 몇명요인들이 떠나가고 남은 요인들은
임시정부와 결속하여.. 이에 따라 임시정부직할부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육군 주만 참의부 즉 참의부를 설립합니다(1923)

또한 1924년에는 대한통의부를 중심으로 통합운동이 전개되어 11월에 독립운동 연합체인 정의부를 만들기도하죠(1924)

또한 1925년에는 북만주에서 자유시참변후 효과적인 투쟁을 전개하기위해 대한독립군단을 중심으로 신민부를 결성합니다

이렇게 구성된3부의 기능은 자치정부입니다 군정기관에서는 독립군의 훈련과 일본군과의전투등을 맡고. 민정기관에서는
교육과 산업등을 맡았습니다

또한 1925년에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이었던 미쓰야 미야마쓰와 만주군벌 장쭤린이 미쓰야협정을 체결하고
만주지역에서 활동하는 독립군을 탄압하여 독립군은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에따라 독립군은 이런 피해를 극복하기위함과 동시에 국내에서 민족유일당 운동이 전개됨에따라
흩어져있던 참의부 정의부 신민부를 통합하기위한 민족유일당운동을 하였으나 실패하였습니다 (1928)
그리하여 그해 11월에 정의부의 지청천계열과 신민부의 군정기관측, 그리고 참의부의 김승학계열이 모여
혁신의회를 구성합니다 (1928 개인위주통합)

이에대해 신민부의 민정기관측, 정의부의 현익철계열, 참의부의 심용준계열은 군정위원의 성격을 띤 국민부를 조직하였습니다(1929)(단체위주통합)

하지만 바로그뒤1929년 혁신의회는 활동이 부진해 해체되었고. 남은 국민부는 그해5월 중앙집행위원회를 구성하고 9월에는 선언문등을 채택한뒤 새로 개편하였습니다
그결과 국민부는 순수한 자치기관으로 활동하게되었습니다 또한 자매성격을 띤 조선혁명당도 이때 만들어졌죠(1929) 그산하에 조선혁명군이 있었구요 (양세봉)

후에 조선혁명당소속으로 흡수되어 해체됩니다 (1934)

또한 해체되있던 혁신의회계통은 김좌진이암살된후 지청천등이 한국독립당으로 개편하였습니다(1930) 산하에 한국독립군이었었죠
여기서 한국독립당은 조소앙의 한국독립당과는 다른겁니다 지청천의한국독립당은 신한독립당으로 발전하게되는겁니다 헷갈리지 마시길

또한 20년대 국내무장투쟁으로는

천마산대와 보합단과 구월산대가 있습니다

천마산대는 평안북도의주에서 결성되었고 주로 항일유격전을 전개하였습니다 후에 만주이동후 임시정부 광복군사령부밑에서 활동하게됩니다

구월산대는 황해도에서 결성된 단체로 임시정부의 지원을 받아 활동했구요 주로 군자금모금을 하였습니다

보합단은 평안북도의주지역인데 주로 군자금모금과 무장투쟁을 전개했습니다 임시정부와도 관련이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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