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u Roman. [69422] · MS 2004 · 쪽지

2014-04-20 02:42:22
조회수 734

TV를 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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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할 것도 없던 주말 오후, 숨가쁘게 달렸던 주중의 피로를 녹이기위해 소파에 누웠다. 

  TV를 켰다. 

  지상파채널 4개(EBS제외), 종편채널 4개 중 KBS2 빼고 죄다 세월호 얘기였다. 사실, 사건 당일 빼곤 이 사건에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3일째까지 선내 진입조차 하지 못했고 크레인이니 플로팅독이니 투입된다며 슈퍼맨이 오는 것마냥 야단법석을 떨어도 그들은 그냥 배 인양하는 데 수주가 걸리는 기계에 불과하다. 이조차도 아직 다 현장에 도착하지조차 못했다.

  아무 일이 없다 보니 언론사들은 소모되기 위한 '깜'을 찾아나섰고 그 부담이 숱한 오보와 저열한 취재로 이어져 비속어 '기레기'를 보통명사로 정착시켰다.

  한없이 깊은 슬픔과 애도를 보내는 바이지만, 이렇게 모든 채널들이 맹목적으로 한 사안만 1주일 가까이 매달리는 것이 과연 국민과 유족 모두에게 득일까? 방송사들이 제대로 그리고 진심으로 추모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한 방송사는 허언증 환자를 데려다가 소설을 들은 뒤 공공재인 전파를 이용해 국민을 혼란시켰다. 한 신문사는 사망한 학생을 증인으로 둔갑시켜 생생한 목격담을 보도했다. 어느 종편은 여고생에게 친구 죽은 거 아냐고 물었다가 국민앵커의 사과까지 이끌어냈다. 내 눈에 비친 세월호는 언론에게는 그저 꽤 잘 나가는 비즈니스모델이었을 뿐이다.

  시청자 역시 과연 이렇게 오래 '강제 몰입'을 해야하는 게 국민 건강에 좋을까 싶다. 팩트와 반성보단 루머와 선동, 이용하는 자와 이용당하는 자만 남은 것 같다. 당장 페이스북만 봐도 세월호 관련 글을 올린 내 주위 열에 아홉은 '진심어린 애도'보다는 '관심어린 객기'에 더 가까웠다.

  거의 이번주는 세월호의 소식과 함께 보낸 듯 하다. 전파라는 공공재를 이용해 국민들을 세월호의 맥락에 강제로 매어두는 것은 실제 추모의 열기를 퇴색시킬 수 있다. 24시간 뉴스가 허용되는 보도채널이 왜 있겠나. 종합일간지조차 세월호는 '비중있게' 다루되 경제/문화를 포기하고 전면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데 지상파와 종편은 너무 눈치를 보는 게 아닌가 싶다. 그마저도 유족에게도 도움 안 될 뿐더러 시청자들에겐 더더욱 그렇다. 웃는 게 목적이어야 할 개그콘서트가 결방되는 건 이해되지만 모든 채널과 뉴스가 세월호로 채워지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TV를 껐다.

  얼마 전 순직하고도 국립묘지 안장이 거부된 어느 소방관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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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리롱. · 395989 · 14/04/20 02:45 · MS 2011

    와와 안녕하세요!

  • 난진화중이다 · 500830 · 14/04/20 02:45 · MS 2014

    잘봤습니다.

  • 커서 · 372989 · 14/04/20 02:50 · MS 2011

    여기서 본래 일정대로 방송을 재개하면 또 정부의 언론조작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겠죠. 아무것도 못하는 우유부단한 정부, 뭘 하든 정부욕만 해대는 선동꾼들, 허위사실 맹목적으로 퍼나르는 키보드 sns 전사들, 피해학생들한테 미안해질 정도로 민망합니다.
    그런것도 다 떠나서 이런 일까지도 정치와 연결시켜야만 직성이 풀리는 인간들이 너무 혐오스럽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