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성장 [265927] · MS 2008 (수정됨) · 쪽지

2016-12-28 22:40:02
조회수 3,862

밑에 설농경사 vs 경찰대 글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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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얘기한다면 어디를 가든지 좋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더 끌리는 곳이 있다면 거기를 선택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것은 둘 중에 어디를 가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마치 지금 로또번호에 3을 고를까 7을 고를까 하는 것처럼 그 고민의 의미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지금 서로 사귀는 남녀에게 대충 만족하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답하는 커플이 많을 겁니다. 만약에 역사가 바뀌어서 지금과는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더라도 많은 경우에 같은 대답이 나올 것입니다.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 어느 정도 비슷한 조건들, 평소의 선호... 이런 기본적인 것들이 결정적으로 바뀌지 않는 경우가 많고 내가 이 사람에게 만족하냐 안하냐가 아니라 만족한다는 생각으로 상대방을 바라볼 것인가 짜증난다는 것으로 상대방을 바라볼 것인가 마음가짐이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사귀라는 뜻은 아니예요. 어느 정도 마음에 든다면 "혹시 나중에 깨지면 어떡하지?"라고 걱정하지 말고 일단 사귀어보고 사랑을 유지하려는 마음가짐으로 상대방을 바라보고 행동한다면 편안함을 느끼고 그럭저럭 지속될만하기 때문이지요.


어떤 사람들은 경찰대를 갔을 때 안정성은 있지만 딱딱한 조직생활이 나에게 맞지 않을 것 같다라고 생각하지만 어찌보면 딱딱한 조직생활은 꽤 괜찮은 메리트일 수 있어요. 딱딱하다는 것은 어떤 점에서는 나에게 큰 방패막이가 됩니다. 조직의 힘이라는 것은 무섭거든요. 혼자 상대하면 할 수 없을지라도 조직의 경험과 체계는 그것을 해결하도록 해주죠.


내가 혼자 입시학원을 한다고 해봐요. EBS 연계된 수능시스템이 바뀌어서 학생들이 급감하고 있습니다. 혼자 해결해야 됩니다. 매출은 급감하는데 임대료, 관리비는 고정으로 나가야 되고 고수입은 커녕 원금만 까먹게 되니 돌아버릴 지경입니다. 이걸 내가 스스로 해결해야 됩니다.


공조직은? 인구가 줄어서 학생이 없어지면 다른 곳에 학교 만들고 거기로 발령 내줍니다. 시키는대로 하면 됩니다. 그러면 월급 나옵니다. 학생이 줄건 말건 내가 고민할 이유가 전혀 없어요. 조직이 해결해줍니다. 진상학부모가 난리를 쳐요. 그것도 학교시스템 내에는 진상학부모를 상대하는 매뉴얼과 선후배, 동료들의 경험담이 있어요. 나 혼자 해결할 일은 없고 해결하지 못하는 과제는 없어요.


나는 정말 딱딱한 군대문화 질색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막상 자기가 해보니 그런 군대시스템이 딱 맞아서 "알고 봤더니 나는 체질이었노라!!"라고 할 수도 있고, 이런 경우가 엄청나게 많아요. 공부 잘 하던 그룹에서요. 매뉴얼화 되어있다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납득이 되고 적응하기 쉽죠.


반면에 조직생활은 나의 상상력을 발휘하기는 어려워요. 나 혼자 살아가지 않는 사회생활에서 내 뜻대로 할 수는 없어요. 이것은 조직생활이냐 자영업이냐 다를 바가 없고 친목모임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독불장군식으로 살 수는 없어요. 어차피 마찬가지 아니겠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조직생활은 조직의 논리가 있기 때문에 나의 생각으로는 이러이러했으면 좋겠다는 나의 포부와 상상력이 있더라도 그것을 구현할 수는 없어요.


나는 국어과목을 가르칠 때 이러이러하게 가르치고 싶다. 그게 수능성적에도 도움이 되고 국어에 대한 소양을 키울 수 있다라고 하더라도 교육과정을 따라야 되고 교육부 지침을 따라야 되고 이런저런 항의들을 받게 됩니다. 사교육이었다면? "내가 싫으면 학원 옮기세요"라고 하면 됩니다. 그런데 "나는 그런거 귀찮다. 그냥 속편하게 하라는 대로 하겠다. 다들 그렇게 하고 별 문제 없지 않은가?"라고 만족한다면 아무 문제 없습니다. 해피하죠.


경찰대를 나오면 아마 거의 대부분 조직생활을 하게 될 것이고 설농경사를 들어간다면 상당한 확률로 조직생활을 하게 될 것이데 경찰조직은 위에서 말한 조직적 측면들이 단적으로 발현되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과 규정의 적용을 강하게 받고 강제되지만 반면에 그대로 하면 속편하죠.


어이없겠지만 딱히 어디를 가면 대박이고 어디를 가면 쫄망이고 그런 것 없으니까 그저 지금 시점에서 "제복이 정말 멋있고 그런 내가 자랑스럽다. 나 경찰대 다닌다", "나 서울대 다닌다.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성장하는 것이 느껴진다"고 쾌락이 느껴질 것 같다는 촉이 오는 곳으로 가면 대부분 잘 풀릴 것으로 봅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고 자신이 처한 위치를 스스로 변명하면서 만족하게 되는 경향이 있어요. 더욱이 둘처럼 어느 정도 밑천이 되는 곳이라면요...


어떤 사람을 선택하기 전에 "혹시 나중에 이 일을 후회하지 않을까"라고 고민할 수도 있지만 인간은 기계덩어리가 아니고 스스로 적응하고 제어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어려움을 잘 해결하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바뀌지 않는다면 분명 대판 싸우고 후회하겠지만 부대끼고 살아가면서 서로 적응하고 변화하거든요.


ps) 개인적으로는 밑에 vs 글을 올리신 분이 경찰대로 가는 것도 좋다고 봐요. 경찰대에도 만족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리하면 설농경사 지원하는 수험생 1명이 농경사에 더 합격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경찰대 지망생은 1명 떨어지겠지만 제가 신경쓸 이유는 솔직히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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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위일체 · 709802 · 16/12/28 22:40 · MS 2016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어딜가도 되실듯 해요 그분은

  • 정시기다리는 · 702831 · 16/12/28 22:46 · MS 2016

    ㅋㅋㅋㄲ마지막문장이주제인듯
    예비후배님들 아껴주시는거봐

  • 고속성장 · 265927 · 16/12/28 22:47 · MS 2008

    저는 농경사에 간절히 오고자 하는 수험생 글에 눈길이 가니까요. 우리과에 간절히 오고 싶어하는데 왔으면 좋죠. 예전에는 오르비에 우리과 홍보하는 위주로 글을 썼었는데 그러다가 우리과 입시싸이트에서 우리과 간절히 오고싶어하는 수험생글을 보고 내가 뭘 하고 있는것인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오지 말라고 말리는 글도 많이 쓰고 있음.ㅋ

  • 정시기다리는 · 702831 · 16/12/28 22:50 · MS 2016

    ㅋㅋㅋ 농경사 멋있어보이긴해요 ㅎ

  • 티수 · 690502 · 16/12/28 23:10 · MS 2016
    회원에 의해 삭제된 댓글입니다.
  • 고속성장 · 265927 · 16/12/28 23:12 · MS 2008

    제가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 이런 문제는 나다군 원서와 맞물려서 생각해야 하고 가군에서 어떻게 입결이 나올까를 아무리 고민해본들 답 없다고 생각해요.

  • 벌벌긴트 · 713277 · 16/12/28 22:48 · MS 2016

    고속님
    글하고는 상관없지만
    혹시 쪽지 봐주실수 있나요ㅠㅠ

  • 정시충123 · 585969 · 16/12/30 00:16 · MS 2015

    정말 좋은 글이네요 감사합니다ㅎㅎ